26 7월 [IF Comment] 성주의 ‘외부세력’과 서울의 ‘내부자들’ / 홍일표(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더미래연구소의 세번째 ?IF COMMENT??성주의 ‘외부세력’과 서울의 ‘내부자들’ 이 나왔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성주군민들에 관한 코멘트입니다.
누가 성주의 ‘외부세력’인가? 강신명 경찰청장은 “성주군에 주민등록 있는 성주군민이 아니면 외부세력이며, 성주가 고향이더라도 외지 사는 사람은 외부세력이다”고 정의했다. 이대로라면 강청장 본인도 자신이 나고 자란 합천이나 대구의 외부세력이 된다. 필자 역시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열심히 살다가 설령 대구에 가더라도 이제 외부세력 취급 받게 되었다. 이런 날벼락이 없다. 그러면 이제 필자는 서울 사람인가? 그마저도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20년 넘게 성주에서 살았지만 전라도 말투를 쓴다는 이유로 특정 주민을 외부세력이라 지목했다(그랬다가 그 언론사 취재진은 성주에서 쫓겨났다). 여전히 경상도 말투가 남아 있는 필자는 서울 사람도 아니다. 말투 기준으로 따진다면 여전히 서울의 외부세력인 셈이다. 우습다.
우습기만 하면 다행이다. 7월 21일 성주군민 2,000여명이 서울역 상경집회를 열었다. 성주군민은 파란 리본 비표를 달아 ‘외부인’과 자신을 구별했다. ‘사드 성주배치 반대’라는 구호만으로도 성주가 고립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외려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250여명의 안전요원을 세워 ‘외부인’인 서울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다. 이를 두고 어느 네티즌은 “그럴 거면 왜 서울 와서 집회를 하나? 서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성주군민이 오히려 ‘외부인’ 아닌가?”라고 외부세력에 대한 경계 세태를 꼬집었다. 성주에 안 가는 게 돕는 거란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성주군민은 잊혀지고 사드논란도 사라지게 것이다. 겁박만이 아니라 고립과 외면, 망각이 ‘외부세력’ 프레임의 효과다. 무섭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날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사드배치 결정에 반대하는 것은 “북한이 원하는 장으로 가는 것이며 불순세력이 가담하지 않도록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외부세력’은 ‘불순세력’이며 곧 ‘종북세력’이라고 못 박았다. 사드 배치 외에 북한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냐며 반박했다. 성주군민은 이제 주민등록 여부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될 것인가 묻는 대통령 질문에 답해야 하는 처지까지 몰렸다. 이보다 앞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국민이 저항해야 할 대상은 김정은의 북한이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다”라고 썼다. 이는 “사드 문제 관련해 북한을 먼저 비난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고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성주군민이 자칫 ‘비국민(非國民)’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섬뜩하다.
‘비국민’이라는 단어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황국신민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을 뜻했다. 일본 제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자, 천황을 신으로 믿는 것을 거부하는 자, 일본군 징병을 회피하는 자, 독실한 기독교신자나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을 의미했다. 그래서 현재 일본에서는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위험한 개념이다.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로 낙인찍는 것 이상의 의미다. 사드 반대 주장을 하는 국민이 ‘비국민’으로 몰려서는 결코 안 된다. 잘못하면 성주의 외부세력이 문제가 아니라 성주군민이 ‘우리 국민’의 외부세력으로 내몰릴 수 있게 된다. 4만 5천명 인구 가운데 새누리당 당원이 4,000명을 넘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가 86%(전국 3위)에 달했던 성주군민들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당혹스럽다.
사드가 성주군(민) 지키라고 성주에 배치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렇기에 사드 문제가 성주 문제가 아니라는 게 모든 논란의 핵심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오직 성주만의 문제, 성주 안의 문제로 가두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주민등록 여부와 말투로 식별해 낼 수 있는 외부세력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성주군민들을 불안과 공포로 밀어 넣는 진짜 외부세력은 성주에 없다. 아무런 설명도, 어떠한 상의도 없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결정한 그들이 결국 성주의 ‘외부세력’이고, 그들은 바로 서울의 ‘내부자들’이다. 2,000명이 넘는 성주군민들이 성주가 아닌 서울로 올라와 집회를 열고 삭발시위까지 벌인 이유다. 성주군민도 알고 있고, ‘우리 국민’들도 다 알고 있다. 명확하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백윤식이 연기했던 언론사 주필의 대사다. 나향욱 기획관은 영화대사를 인용했을 뿐이라 항변했지만 결국 파면결정이 이루어졌다. 천기를 누설한 죄다. 그는 “구의역 김군의 죽음에 아파하는 마음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 그것은 위선일 뿐이다”라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자신이 그토록 선망하는 1%의 내부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덕목을 밝힌 것이다. ‘공감하지 않는 능력’. 사드배치 저지투쟁위원회 김안수 공동위원장은 상경시위를 마친 후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우리들의 들끓는 분노를 모른다”고 안타까워 했다. 비단 대통령만 아니다. 성주 배치 결정을 내린 이들 대부분은 성주군민의 분노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 함께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선 위선이라 여길 것이다. 막막하다.
성주군민들은 ‘외부로부터 고립’을 두려워하지만 ‘외부로부터 개입’을 걱정한다. 없던 경계를 일부러라도 만들어 벽을 쌓고 담을 높인다. 하지만 내심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더욱 힘들다. 참외농사 짓던 성주군민들이 처음 겪는 일에 허둥거리고, 실체조차 알 수 없는 외부세력과 씨름하는 동안 ‘내부자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일을 풀어 가려 한다. 북한을 찬양하는 삐라가 성주에서 이미 발견되었고, 과거 통진당 소속 의원이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외부세력이다.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한 미국의 세계전략, 한중관계와 남북관계, 자기중심적 외교전략과 경제정책을 복잡하게 토론할 여유가 없다. 아니 이유가 없다. ‘북한핵’만으로 이유는 넘친다. 기가 막힌다.
성주군민들의 들끓는 분노를 쉽게 여겨선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의 분노 또한 다르지 않다. 그들이 토로하는 건 불편이나 불만 정도가 아니다. 성주군민들은 자신들이 국민 대접은커녕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음에 분개하고 있다. 1% 내부자들에 의해 개, 돼지 취급받고 있는 99% 민중들도 마찬가지다. 1%가 자행한 비리와 부패, 불법과 타락이 도를 넘고 있다. 99%의 삶과 너무 다르다. 진경준, 홍만표, 우병우에게 적용된 혐의와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추문과 추태가 끊이지 않는 재벌과 정치권은 어떤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생존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건 성주의 ‘외부세력’이 아니라 서울의 ‘내부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교육부 국장 하나 파면시키는 것으로 누그러질 ‘대중의 분노’가 아니다. 다 바꿔야 한다. 다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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