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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광복 70주년… ‘지금의 전태일들’에게 광복을 /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06 8월 [IF Media] 광복 70주년… ‘지금의 전태일들’에게 광복을 /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광복 70주년… ‘지금의 전태일들’에게 광복을]

출처: 경향신문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의 어느 날, 대학가 허름한 선술집에서였다.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전태일이 살아서 지금 한국의 노동현실을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천국’이라고 할 거야.”

천국? 그리 짐작할 수 있는 현실의 변화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분명 있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을 불살랐던 20년 전에 비하면 말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라는 어엿한 조직 재화를 보유하게 됐다.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1989년에 들어서는 노조 조직률이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20%에 육박했다. 1988년 11월13일에는 ‘전태일을 계승하자’며 그의 분신 이후 최초로 노동자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대학생과 시민들도 대회에 참가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이 다시 극심해지기도 했다. 1988~1991년 시기 노동관계법과 집회 및 시위법 등에 의해 구속된 노동자가 2000명을 넘은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는 전두환 군사독재 시기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1989년 인천의 남동공단에 위치한 어느 사업장에서는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구사대’가 염산을 뿌려대기까지 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 때는 식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런 끝에 1987~1989년 사이 1000여건에서 3000여건에 달했던 노동쟁의 발생 건수가 1990~1991년 사이에 200~300여건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국가와 자본의 노골적인 폭력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필자의 선배가 천국 운운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염원과 열망을 전태일처럼 좁다란 골목에서 홀로 외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2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는 45년이 되었다. 전태일이 살아서 지금 한국의 노동현실을 보면 뭐라고 할까? 천국에 더 가까워졌다고 할까? 민주노총이라는 전국 조직이 있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표방하는 진보정당이 국회 의석을 갖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아니, 그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옥’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63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93시간이 많아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다.

임금격차도 심각하다. ‘OECD 고용 전망 2015’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 기준으로 국내 임금소득 상위 10%의 임금이 하위 10% 임금의 5.83배나 된다. 격차가 조사대상국 중 가장 크다.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 소득을 버는 노동자 비율 역시 14.7%로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5.5%다. 노동 내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과 비노조원,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 사업장, 남성과 여성 등에 따라 나뉘어 있다. 임금격차는 정확히 그 경계를 따라 벌어져 있다. 그 경계를 따라 인간적 차별이 가해지기도 한다. 통근버스와 식당과 쉼터와 휴가 등의 사용에서조차 차별을 두는 곳이 있을 정도라 한다.

광복 70주년이 얼마 안 남은 요즘, ‘노동개혁’이 대한민국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그리 되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은 정부와 여당에 대해 비판적이다. 정부와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 야당과 노동계 모두 공방을 넘어설 ‘해법’을 찾기 위해 크게 고심할 것이다.

전태일! 노동개혁의 이유와 목표를 이러저러한 경제적 수치에서 찾기보다 ‘노동에 대한 인간적 존중’에서 찾으면 된다. 차이를 드러내고 서로를 탓하기에 앞서 노동개혁을 위한 ‘공통의 에스프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선거운동 첫 공식 일정으로 전태일동상에 꽃을 바쳤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한 노동자들, 특히 전태일과 같은 노동 약자들을 동등한 ‘국민의 이름’으로 존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 의지를 실제로 발동시켜야 한다. 혼자 그럴 것이 아니라 함께, 그래야 한다. 그래서 광복 70주년, ‘지금의 전태일들’에게 광복을 약속해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 그에게 비판적인 야당과 노동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가 ‘지금의 전태일들’을 낳고, 방관하고, 이용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