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IF Media] 국민연금, 오해와 진실 / 김연명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03 6월 [IF Media] 국민연금, 오해와 진실 / 김연명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국민 연금 개혁이 화두입니다. 그런데 많은 시민이 ‘기금이 고갈되면 국민 연금을 혹시 못 받지 않는지’, ‘국민 연금 제도는 미래 세대를 갈취하는 제도인지’ 궁금해 합니다. 심지어 ‘국민 연금 탈퇴할 수는 없나요?’ 같은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어떤가요? 한 편에서는 국민 연금을 불신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돈에 제일 밝은 ‘강남 아줌마’들이 재테크 수단으로 ‘국민 연금 임의 가입자’로 가입합니다. 보험료 절반을 회사가 내주는 직장 가입자도 아닌 강남 아줌마가 보험료를 더 내면서까지 국민 연금에 가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국민 연금은 그 어떤 사적 연금 제도나 은행 적금보다 확실한 노후 소득 보장 제도입니다. 젊었을 때 100을 내면, 노후에 평균 150~180을 돌려줍니다. 단, 가입한 사람들에게만입니다.<프레시안>은 김연명 중앙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의 도움을 받아서 국민 연금에 대한 여러분의 궁금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드립니다. 김 교수는 공무원 연금 개혁 실무 기구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국내 최고의 공적 연금 전문가입니다.

출처: 프레시안

 

[김연명의 ‘국민 연금, 오해와 진실’ ①] 국민 연금, ‘덜 내고 더 받는’ 마술의 비밀은?

오해 1. 국민 연금은 내가 낸 돈에 이자 붙여 받는 것?

많은 시민이 국민 연금을 놓고서 ‘내가 낸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 연금은 절반은 내가 낸 보험료에서, 나머지 절반은 미래 세대가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국민 연금 제도가 후하기 때문입니다. 국민 연금은 가입자가 100을 내면 노후에 180을 돌려줍니다. 그것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서 연금액을 수령하는 시점의 ‘미래 시가’로 줍니다.?(☞관련 기사 : “국민 연금 고갈? 7일치만 적립하는 독일이 망했나?”)

그렇다면, 국민 연금은 얼마를 어떻게 받는 제도일까요? 이를 측정하는 지표로 ‘수익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 연금에 30년 가입하고 65세부터 연금을 받아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낸 보험료 총액과 받는 연금 총액이 같으면 수익비가 1입니다. 국민 연금 수익비는 소득 계층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평균 소득이 50만 원인 저소득층이 있다면, 국민 연금 수익비는 3.7입니다. 평균 소득이 150만 원이라면 수익비가 1.8이고, 평균 소득이 360만 원이라면 수익비가 1.3입니다. 모든 계층이 낸 것보다 더 받는 구조입니다. 100을 내고 낸 돈보다 80을 더 받는데, 이 ‘더 받는 부분’을 미래 세대가 부담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국민 연금 제도는 내가 낸 돈으로 이자를 붙여서 연금을 받는 구조가 아니라,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 부양을 절반 정도 책임지도록 설계됐습니다. 물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완화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바로 투자 수익금인데요. 국민연금공단이 가입자가 낸 돈을 토대로 수익을 내서 미래의 연금에 보태는 것이죠. 참고로 국민연금공단은 한 해에 보험료로 35조 원을 걷고, 투자 수익으로 25조 원을 내고 있습니다.

 

[김연명의 ‘국민 연금, 오해와 진실’ ②] 국민 연금은 미래 세대를 갈취하는 제도?

오해 2. 국민 연금은 미래 세대를 갈취하는 제도?

앞선 기사에서 국민 연금은 ‘덜 내고 더 받는’ 제도이고, 그렇기에 절반은 내가 내고 나머지 절반은 미래 세대가 부담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이처럼 국민 연금은 ‘세대 간 연대’의 원리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현행 국민 연금 제도가 미래 세대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보험료를 이대로 두면 2060년에는 국민 연금 적립금이 소진됩니다. 적립금 소진 시점 즈음에는 미래 세대의 보험료를 갑자기 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연금 제도나 연금 보험료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2060년에 국민 연금 적립금이 소진된다는 가정의 전제는 ‘보험료를 동결한다’는 것입니다. 현세대의 보험료를 수십 년간 계속 동결하면,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확 늘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국민 연금 적립금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남습니다.

김연명 교수는 “2060년까지 보험료를 동결하자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고 강조합니다.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어느 정도 짐을 나눠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 짐을 어느 정도 나눠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에 따라 곧 출범할 예정인 ‘사회적 기구’가 논의할 과제로 남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에 결정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30~40년간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합의를 해야겠죠. 사실 10년 아니 당장 5년 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어떻게 변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060년 이후 국민 연금 보험료 등을 미리 정해놓자고 하는 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난센스입니다.

‘후세대 갈취론’에 대한 김연명 교수의 반론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현세대(30~50대 부모 세대)는 자신의 부모(60대 이상 노인 세대)를 사적으로 부양하는 동시에 자신의 미래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 연금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데서 오는 일시적이지만 필연적인 문제입니다.?(☞관련 기사 : “문형표 장관, 세대 간 ‘도적질’이 아니라 ‘연대’다”) 둘째, 국민연금공단이 그동안 국민 연금 적립금을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한 수익금이 막대합니다. 이 수익금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연금 지출 부담을 완화합니다. 구체적으로 국민 연금 제도가 처음 생긴 1988년부터 올해 2월까지 국민 연금 적립금은 총 595조 원이 쌓였는데, 이 가운데 투자(운용) 수익금은 221조 원(37.1%)입니다. 셋째, 우리나라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후세대 부담을 완화한 바 있습니다. 우선 1998년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소득 대체율(급여 수준)을 70%에서 60%로 낮췄고, 기금 고갈 시점을 2030년대 중반에서 2040년대 중반으로 연장했습니다. 2007년에는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춰 연금 고갈 시점을 다시 2060년으로 늦췄습니다. 넷째, 미래 세대는 지금 노인 세대와 현세대(30~50대)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모두 넓은 의미의 사회적 유산으로 받게 됩니다. 사회 간접 자본 같은 각종 사회적 자산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반면 부모 세대는 사적 노인 부양과 자식 교육비 부담, 본인 노후 준비까지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고 김 교수는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대학 등록금이 비싸고, 취업이 어렵고, 불안정 노동에 시달릴 수 있는 미래 세대의 불안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연명 교수는 “국민 연금 기금을 미래 세대에게 편익을 주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자”고 제안합니다. 가령 국민 연금 기금을 ‘공공 임대 주택’ 등에 투자해 미래 세대의 적정 주거비를 보장하면 어떨까요? 현세대가 국민 연금을 통해서 미래 세대가 값싸고 쾌적한 주택을 준비해 주자는 것이죠.대기업 등에 치중되어 있는 국민 연금 기금의 투자처를 국내의 유망한 중소기업으로 확장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국내의 중소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질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 결과적으로 미래 세대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현세대와 미래 세대의 ‘세대 간 연대’를 자극하는 이런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세대 간 도적질”을 외치는 것보다 훨씬 미래 지향적인 모습입니다.

 

[김연명의 ‘국민 연금, 오해와 진실’ ③] 미래 세대, 노인 부양비로 ‘파국’을 맞을까?

오해 3. 미래 세대는 노인 부양비로 파국을 맞을 것?

우리나라 노인은 가난합니다. 한국 노인의 상대 빈곤율(49.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인 12.6%의 3.9배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 세대는 노인 부양비로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노인 부양이 파국에 걸맞을 정도로 큰 부담으로 다가올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2050년에 국내 총생산(GDP)의 9.2%를 공적 연금(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 등)으로 지출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OECD 회원국 28개국은 지난 2010년부터 이미 그 정도(GDP의 9.3%) 규모를 공적 연금으로 지출해왔습니다. 주목할 점은 노인 인구 비중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노인 인구 비율이 13%인데, 2050년에는 노인 인구가 38.2%가 될 전망입니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인이 많아질 전망입니다. OECD 28개국은 노인 인구가 14.7%가 됐던 2010년에 연금으로 GDP의 9.3%를 지출했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가 무려 38.2%가 될 2050년에 GDP의 9.2%를 지출할 예정입니다. 비슷한 규모의 공적 연금 총액(GDP의 약 9~10%)을 한국에서는 OECD 평균보다 2.6배 많은 노인 인구가 나눠 갖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OECD 28개국은 2050년에 어떻게 될까요? 노인 인구가 26%로 늘어날 전망이고, GDP의 11.7%를 연금으로 지출할 전망입니다(유럽연합 27개국은 GDP의 13.1%). 뒤집어 보면, 고령 사회로 넘어간 2050년 이후에도 한국의 공적 연금 지출(9.2%)은 OECD 28개국 평균(11.7%)보다 2.5%포인트 더 적습니다.

만약 국민 연금 소득 대체율을 50%로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민 연금 소득 대체율을 50%로 올린다고 하더라도, 노인 인구가 최대치로 늘어날 전망인 2060년이 되어도, 한국의 공적 연금 지출 비중은 GDP의 최대 10.93%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같은 기간인 2060년, OECD 28개국 평균 연금 지출 비중인 11.9%에서 오히려 약 1%포인트 모자랍니다. 김연명 교수는 “이런 비교를 염두에 두면 연금 지출이 미래 세대를 파국으로 이끌리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면서 “한국은 과도한 연금 지출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은 연금 지출로 대량 노인 빈곤이 지속할 가능성을 염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제기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세대(20~50대)가 내는 공적 연금 지출은 GDP의 0.9% 정도입니다. 현재 OECD 회원국 평균(GDP의 9.3%)보다 한참 모자랍니다. 2050년이 와야 비로소 미래 세대 부담(GDP의 10%)이 OECD 평균에 근접해지는 셈입니다. 즉, 2050년 이후 미래 세대 부담은 OECD 회원국 평균(GDP의 12%)보다 오히려 적습니다. 그러니 미래 세대 부담이 절대적으로는 크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세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커진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김연명의 ‘국민 연금, 오해와 진실’ ④] 국민 연금은 저소득층에게 유리하다?

오해 4. 국민 연금은 저소득층에게 유리하다?

국민 연금은 저소득층일수록 더 높은 소득 대체율을 보장합니다. 고소득층이나 중간소득층과 비교하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낸 돈(보험료)보다 받는 돈(노후에 받는 연금)이 많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월급이 400만 원인 고소득층 ‘갑’, 월급 200만 원인 중간소득층 ‘을’, 월급 100만 원인 저소득층 ‘병’이 있다고 합시다. 세 사람 모두 40년 동안 국민 연금에 가입했다고 가정하면, 갑은 노후에 120만 원을, 을은 80만 원을, 병은 60만 원을 연금으로 받습니다. 400만 원을 벌던 갑은 노후에 120만 원을 받았으니 소득 대체율 30%(400만 원 가운데 120만 원)를 적용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을은 40%(200만 원 가운데 80만 원)를, 병은 60%(100만 원 가운데 60만 원)를 적용받습니다(물론 가입자들의 실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평균 23년에 불과하고, 저소득층일수록 국민 연금을 오래 붓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 연금은 이득이다,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국민 연금이 저소득층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국민 연금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실제로 상당수 저소득층은 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각지대에 남아 있습니다. 국민 연금 혜택에서 제외된다는 뜻입니다. 국민 연금 가입자들은 정규직 노동자, 고소득 자영업자 등 ‘먹고살 만한 계층’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가입자들이 미래 세대의 보조금을 받아 노후에 연금을 탑니다. 그러나 정작 노후 대비가 더 필요한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는 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아, 미래 세대 보조금을 못 받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보건복지부가 낸 국민연금통계연보를 보면, 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절반은 국민 연금 제도에서 제외돼 있습니다(이 노동자들은 국민 연금뿐 아니라, 4대 보험 혜택 전체를 받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국민연금 미납 사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실직, 사업 중단, 생활 곤란 등 ‘소득 부족’을 꼽았습니다. 정리하면, 국민 연금은 가입자들 내부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소득 재분배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국민 연금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있는 계층’은 도와주고 ‘없는 계층’은 도와주지 못해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기게 됐습니다.

한국 공적 연금 소득 대체율, 세계은행 권고안 40%에 못 미쳐

해법은 공적 연금 강화입니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의 관대한 연금 제도를 비판한 보수적인 세계은행조차도 “퇴직 시 ‘최저 수준’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적 연금 제도가 ‘순소득 대체율 40%’ 수준(최고 소득 대체율로는 60%)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김연명 교수는 “국민 연금의 평균 가입 기간을 25년으로 잡을 경우, 평균 소득자(현재 200만 원)의 소득 대체율은 25%(50만 원) 수준이고, 여기에 기초연금 5%~10%(10만~20만 원)가 추가돼도 30~35% 수준이 돼 세계은행이 설정한 공적 연금의 최소 소득 대체율 40%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참고로, 박근혜 정부 기초연금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2년 미만인 소득 하위 70% 노인들은 20만 원 전액, 즉 소득 대체율 10%를 받지만, 국민 연금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이면 10만 원, 즉 소득 대체율 5%만 받습니다.)(☞관련 기사 : 정부·새누리 기초연금안, 고액 연금 수급자가 더 받아)

 

[김연명의 ‘국민 연금, 오해와 진실’ ⑤]쫄쫄 굶는데, 방구석엔 금은보화?

오해 5. 국민 연금은 재정 안정화가 목적?

정부는 ‘기금 고갈’을 이유로 ‘재정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국민 연금 적립금 규모가 세계 1위입니다. 국민 연금 적립금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서, ‘연못 속에 고래’로 비유될 정도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자료를 볼까요?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국내 총생산(GDP) 대비 공적 연금 기금 규모가 27.6%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큽니다. 그 뒤를 2위 스웨덴(27.2%), 3위 일본(25.9%), 4위 미국(17.9%), 5위 캐나다(8.6%)가 이었습니다. 최근 자료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2월 말을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 연금 적립금은 GDP의 35%까지 쌓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모로, 한국은 이미 국민 연금 재정이 충분히 안정적인 상태라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미래에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보험료를 지금 이대로(9%) 두면 국민 연금 기금은 2060년에 소진될 전망입니다. 기금이 갑자기 소진되면 경제에 큰 충격이 오기에, 보험료를 조금씩 올려서 기금 소진 시점을 연착륙시켜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춰야 하는 것도 현실이지만, 정부가 ‘기금 고갈’을 빌미로 국민에게 국민 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야 합니다. 국민 연금을 포함한 공적 연금의 존재 이유가 뭘까요? 국민 연금의 궁극적인 목적이 뭘까요? 당연한 대답이지만 ‘재정 안정’이 아니라, ‘노후 소득 보장’, ‘노인 빈곤 완화’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적 연금 제도는 노인 빈곤을 방지하는 장치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OECD가 낸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 한국은 노인 상대 빈곤율(중위 소득 50% 미만을 버는 노인 가구의 비율)이 49.6%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입니다. 이 수치는 OECD 회원국의 평균 빈곤율 12.6%의 약 4배에 달합니다. 길을 가다가 만난 노인의 두 명 중 한 명은 가난하다는 의미입니다. 김연명 교수는 공적 연금의 목적이 ‘재정 안정’이라고 보는 시각은 본말전도라고 지적합니다. 비유하자면 “노인들은 쫄쫄 굶고 있는데, 정부는 옆방에 금은보화를 쌓아 놓은 격”이라고 말합니다. ‘기금을 위한 연금’이 아니라 ‘노후를 위한 연금’으로 돌려놓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는다는 것이죠.

 

[김연명의 ‘국민 연금, 오해와 진실’ ⑥] 국민 연금 기금은 투자 잘못해서 고갈 난다?

오해 6. 국민 연금 기금은 투자를 잘못해서 고갈 난다?

많은 국민이 국민 연금 기금은 투자를 잘못해서 손해를 많이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 연금의 투자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채권과 같은 안정 자산 위주로 투자하기 때문이죠.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때도,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았던 스웨덴, 캐나다, 미국에서는 상당한 자산 손실이 발생했지만, 국민 연금의 손실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국민 연금 기금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고갈되지 않습니다. 기금이 고갈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 연금이 모든 가입자에게 낸 것보다 더 주는 제도로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민 연금 가입자는 낸 보험료 총액보다 받아가는 연금 총액이 큽니다. 즉, 애초에 국민 연금 제도 자체는 언젠가 기금이 고갈될 것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죠. 이는 세대 간 연대의 원리를 취하기로 한 국민 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했기 때문이지, 설계 자체에 큰 결함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관련 기사 : 국민 연금, ‘덜 내고 더 받는’ 마술의 비밀은?)?기금이 고갈된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국민 연금 재정 운용 방식은 처음에는 ‘적립 방식(평생에 걸쳐 내가 낸 보험료를 쌓아놨다가 노후에 돌려받는 방식)’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다 제도가 성숙해서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는 대개 ‘부과 방식(그해 젊은 세대가 낸 보험료로 그해 노인들을 부양하는 방식)’으로 전환됩니다. 연금 역사가 오래돼 이미 기금이 고갈되고 없는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러한 길을 밟아왔습니다.

투자를 잘하면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다?

또 다른 의문이 듭니다. 투자를 잘하면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론적으로는 투자 수익률을 1% 높이면 기금 고갈 시점이 2060년에서 2067년으로 7년 연장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투자 수익률이 1% 떨어지면 2055년으로 고갈 시점이 5년 앞당겨집니다. 물론 투자 수익률이 매년 15% 수준에 이르면 ‘계산상’으로는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수익률이 높이려면 고위험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는 안전성을 우선시해야 할 공적 연금 기금이 취할 방식은 아니겠죠. 궁극적으로 국민 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첫 번째 방법은 노인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생산 가능 인구를 늘리는 것입니다. 즉, 출산율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로는 고용률을 높여 세금과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인구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 연금의 재정 건전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노인 부양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납니다. 김연명 교수는 “국민 연금은 일정한 후세대 부담을 전제로 설계된 만큼, 국민 연금 기금을 후세대의 부담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투자해야 한다”며 국민 연금 기금 투자의 예로 고용 창출 분야나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보육 환경 등을 들었습니다.

 

김연명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