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IF Media] [김기식칼럼]가장 큰 적폐는 기득권이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30 1월 [IF Media] [김기식칼럼]가장 큰 적폐는 기득권이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김기식칼럼]가장 큰 적폐는 기득권이다

출처 : 경향일보

새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권력기관의 적폐청산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의 적폐청산만으로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진정한 적폐, 과거 민주정부까지를 포함해 역대 정부를 거쳐서도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우리 사회 최대 적폐는 각 분야에, 모든 영역에 존재하는 기득권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자영업자 대책으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가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조찬 후 위챗 결제가 화제가 되었다. 일종의 모바일 직불카드다. 직불카드가 보편화되면 자영업자의 카드 수수료 부담이 자동적으로 대폭 경감된다. 그런데 인터넷 강국이라면서 국내에서는 왜 아직도 안될까.

김대중 정부는 소비 진작과 함께, 거래투명성을 높여 공평과세를 실현하기 위한 세정개혁방안으로 신용카드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2단계로 직불카드 보편화를 계획한 바 있다. 그러나 직불카드 확대 계획은 이후 흐지부지되었다. 재벌 계열의 전업 신용카드사는 물론이고, 은행계열 금융지주사조차 계열사인 신한카드, 국민카드 등 신용카드회사를 통해 매년 수천억원씩 영업이익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직불카드 확대는 이들의 이익에 반한다. 정부당국은 업계의 반발과 당장의 경영수지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책추진을 주저해왔다. 업계의 기득권 때문에 혁신이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재계는 늘 규제개혁을 요구하지만 기존 규제를 통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은 포기하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어렵게 하는 ‘갑질’은 재벌 등 ‘갑’의 기득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겔포스 등 편의점에서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을 일부 확대하는 문제로 약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안전성 문제를 거론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해외에서 경험했듯이 선진국에서는 일반의약품의 상당 품목을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들 선진국이 안전성을 무시한다는 말인가. 약사회의 기득권에 국민 편익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산업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성장산업이다. 국내 의약품시장만 2016년 20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판매관리비 비중이 30%가 넘는 비정상적인 영업행태로 1000개가 넘는 제약회사가 복제약을 생산하며 난립해 있는 상황에서 신약 하나당 수천억원의 R&D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해 의약품 유통구조를 개혁해야 하지만 기득권 앞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육아와 관련해 가장 어려운 시기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라고 한다. 오후 5~6시까지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가 오후 1시면 하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OECD 평균보다 적다. 그래서 최근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교육부가 교사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국공립 어린이집 및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확대, 사회서비스공단 신설 공약이 흔들리고 있다. 민간보육시설과 유치원들의 반발 때문이라 한다,

규제개혁이 화두다. 그러나 관료들은 자신들의 사전규제 권한을 일시적으로 유보할지언정 포기할 의사가 없다. 개방직의 확대 등 관료조직의 혁신은 행시 출신들의 기득권 앞에 늘 무력화되어왔다. 지역주의 정치구조의 기득권, 현역의원의 기득권 등 정치영역에서의 기득권은 철옹성 같다.

무엇보다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기득권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강력하다. 40대 중반의 안희정, 송영길 등이 시·도지사에 당선된 때가 2010년이다. 8년이 지난 지금 후보군을 보면 세월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기관장 인선이 한창일 때 ‘언제 적 장관이냐’는 탄식이 관료들 사이에서 나오고, 참여정부 시절 30대 비서관, 40대 수석이 한때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역들이 이제 정년을 앞두고 정년 연장을 위해 싸우면서도 자식세대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일자리 나누기에는 소극적이다.

기득권의 혁파 없이 변화와 혁신이 성공한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없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기득권 혁파는 매우 위험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득권 혁파로 인해 잃을 이익은 직접적이고 분명해서 반대는 세력화되고 격렬한 반면, 이로 인해 새로운 기회와 이익을 얻을 국민은 잠재적이고, 지지는 심정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기득권 혁파의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일부터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대한민국은 기득권 혁파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