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월 [IF Media] [김기식칼럼]국정운영의 책임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김기식칼럼]국정운영의 책임
출처 : 경향일보
역대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공통된 주문이 있다.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운영하라는 것이다. 배경은 여러 가지다. 내각을 헌법과 법률에 맞게 운영하라는 원칙적 요구이기도 하고, 청와대로의 권한 집중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해도 국정의 수많은 구체적 현안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와대 역시 총리실의 절반이 조금 넘는, 일개 부처 수준의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명백하다. 각 부처의 일을 점검하는 것 외에는 주요 국정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정운영에서 ‘책임’이란 말에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권한을 줄 테니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라는 의미와 잘못하면 책임지라는 의미다.
최근 GM대우 처리 문제가 현안이다. 한국 경제가 상시적 구조조정 국면에 진입한 이후 산업 및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처리는 늘 경제의 현안이었다. 건설산업과 저축은행이 그러했고, 과거 부실화된 해운, 조선 산업과 금호타이어, 대우건설 등은 현재도 현안이다. 문제는 이 현안들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이 책임지고 일을 처리하지 않아 부실을 오히려 키워왔고,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임의 양 측면에서 최악의 케이스다.
현재는 어떠한가. 새 정부가 출범하고 해를 넘겼지만 구조조정의 마스터플랜과 구체적 실행방안은 아직도 오리무중이고, 기재부, 산업부, 금융위 등 관련 부처를 총괄하는 책임 주체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고통과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 구조조정은 없다. 속된 말로 누군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 전임 정부가 남긴 잘못된 유산이라고 탓할 시기도 지났다. 손수건 돌리기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연말, 연초 대통령의 4차 산업혁명과 청년일자리 문제에 대한 독려와 질타가 화제가 되었다. 정부 출범 후 1년이 되지 않아 평가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까지는 아니어도 구체적 성과가 기대되는 정책들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이 지적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도, 규제개혁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효과를 발휘할 영역을 선택해 집중해야 한다. 이런 선택과 집중의 결단은 장관이 자기 책임의식을 가져야 가능하다. 공정위의 업무 중 갑을 관계의 정상화에 우선 집중하고, 재벌개혁은 단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김상조 위원장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잘못하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한 듯 들린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을 물을 사안인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그 시기와 방식은 어찌할지 어려운 문제다. 지나치게 엄격한 책임 추궁은 관료조직의 보신주의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신상필벌은 국정운영에서도 필수다. 책임지고 한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 추궁은 관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은 벌여 놓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무능함, 미리 제대로 챙겼으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를 만든 무사안일, 책임질 일을 이런저런 이유로 피하는 무책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우건설 매각 무산 과정은 금호타이어의 경우와 닮은꼴이다. 경영실적이 확정되지 않은 연말, 연초에 매각을 진행한 것이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직후에 전년도의 부실이 확인되어 결국 매각이 무산된 것이 같다. 부실 파악과 관리는 관리책임자의 의무다. 거듭된 매각 실패에 대한 원인 진단과 함께 실무적 차원의 문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재부는 최근 입법예고한 외국인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확대 방안을 담은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반발은 예상했던 일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본시장과 외국인 투자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초래된 희극이다. 미리 제대로 챙기지 않아 한국 정부가 국제 자본시장에서 현실도 모르는 우스운 꼴이 된 것이다.
기득권이 고착된 사회에서 개혁에 대한 반발은 당연하다. 대통령이 공약한 새로운 대한민국은 국정을 무난하게 관리해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논란의 무풍지대인 부처가 더 엄정한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다. 정치적 오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새 정부의 공과에 대한 첫 평가가 이루어질 정부 출범 1주년이 이제 세 달 남았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사진출처: 연합뉴스(2017.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