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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노병의 호소 외면한 박근혜의 동문서답 / 홍일표(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09 8월 [IF Media] 노병의 호소 외면한 박근혜의 동문서답 / 홍일표(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사드’와 ‘한류’의 위험한동거]

출처: 경향신문

[문화비평]‘사드’와 ‘한류’의 위험한 동거

지난주부터 한국의 연예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결정되면서 중국의 보복 조치로 중국 내 한류가 크게 위협받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관리와 통제를 담당하는 광전총국이 9월부터 자국 내 자치성 방송사에 중국 내 한류스타의 출연을 금지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소문이 국내 연예산업계에 나돌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 8월4일자 인터넷판에도 한국 드라마와 한국 스타가 중국에서 차단되는 것은 전적으로 사드 배치에 따른 한국의 책임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주부터 한류 스타들의 중국 방문과 촬영 스케줄의 취소가 잇달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영 중인 KBS 2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주연 배우 김우빈과 수지의 중국 현지 팬 미팅이 취소되었다. 중국 후난위성TV 드라마 <상애천사천년 2 : 달빛 아래의 교환>의 여주인공을 맡아 촬영 중인 배우 유인나도 중국 배우로 교체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스타를 포함해 한류 연예인들의 추가 방송 제한 소식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항의해 우리 정부에 노골적으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동아시아 정세상 불가능한 일이다. 대신 사드 배치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중국 내 한류 제재 카드를 꺼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한류 제재 조치는 정치적, 군사적 부담이 없는데다, 한국 연예산업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 압박용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류의 영역을 연예산업에서 문화콘텐츠, 뷰티, 관광, 푸드까지 확대하면 그 의존도는 막대하다. 현재 주연급 한국배우들이 출연하는 중국 자체 드라마만 50개가 넘는다. 2015년 화장품 산업의 해외 매출액은 총 2조9000억원인데 그중의 절반이 중국인이 고객이다.

동아시아 내 한류는 언제나 정치적 변화에 따라 불안한 위치를 가진다. 한국이 중국, 일본, 대만 등과 정치적 외교적 갈등을 겪을 때마다 한류는 항상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 한류가 동아시아 내 문화적 교류와 혼종화의 가교역할을 한다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갈등에 의해 쉽게 휘둘리는 후기 문화냉전의 전쟁터이다.

문제는 한류가 2000년대 후반을 지나서 확고하게 문화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향중국’(向中國)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데 있다. 과거 한류가 대규모 자본의 이동이 빈번하지 않을 때는, 정치적 외교적 분쟁이 생겨도, 일시적 철수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한류는 철저하게 문화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대규모 투자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발을 빼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방송연예, 드라마, 영화, 게임 등 개별 문화콘텐츠당 수백억원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한류 제재 조치는 그 강도에 따라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부담도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대체가능한 자원들과 여유 자본이 있는 반면,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연예인들과 문화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중국에서 투자를 받거나 중국 현지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드와 같은 국면에서 중국의 한류 제재 조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한류산업이 어느 정도 피해를 봐도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은 매우 위험하다. 한류 제재 조치를 전적으로 중국의 옹졸한 태도로 비난하는 것도 문화민족주의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순 있어도, 시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중국의 한류 제재 조치는 우리에게 국가안보 논리와 문화자본 논리의 공존의 지혜를 시험하고 있다.

이 공존의 논리는 단지 한류문화산업을 국가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단순한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이른바 사드의 국면은 동아시아 내 한류가 앞으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지속돼야 하는지를 문화적 관점에서 시험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외교와 안보의 전략은 단지 그 자체로 완결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문화의 전략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 중국의 한류 제재 조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옹졸하고 치사한 대국으로 비난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드의 외교 전략 안에 동아시아 내 한류의 문화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통합적 정책을 시급히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동아시아 신냉전체제에서 문화전략으로 풀어야 할 지혜의 순간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하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