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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문화 황금기’ 1980년대 / 이동연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28 12월 [IF Media] ‘문화 황금기’ 1980년대 / 이동연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문화비평]‘문화 황금기’ 1980년대

출처 : 경향신문

지난 25일 영국의 팝스타 조지 마이클이 53세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히트곡인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이름에 어울리듯 바로 성탄절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1980년대를 풍미한 팝스타였다. 그룹 ‘왬’을 이끌었던 그는 ‘아하’ ‘컬처클럽’ ‘듀란듀란’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 사운드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였다. 조지 마이클과 함께 1980년대 팝스타 중 올해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프린스이다. 알앤비, 블루스, 록, 펑키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사운드의 이단아 프린스는 1980년대 팝의 전위에 선 인물이다. 프린스 역시 지난 4월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등 1980년대 팝의 향수를 간직한 슈퍼스타들이 하나둘씩 사망하면서 1980년대 팝문화는 서서히 전설의 기억저장소로 퇴각하는 듯하다. 내 청춘의 20대를 질주했던 1980년대 문화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1980년대 청년문화는 학생운동권 문화, 시위문화, 이념의 문화로 깊게 각인되어 있다. 소위 운동권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대학 캠퍼스에서 시위는 일상적이었고, 최루탄과 페퍼포그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시위대의 구호와 민중가요는 캠퍼스의 사운드를 지배했다. 노래패, 풍물패, 사회과학연구회, 교지편집회가 대학 동아리의 주축을 이루고, 축제 때 일반 학우들이 미팅하고 술 마시고 흥청망청 노는 것이 미워서 유명 대중가수의 학내 콘서트를 물리력으로 취소시키고,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의식으로 집회를 열었던 운동권들의 문화는 1980년대 대학문화 후일담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과연 1980년대 청년문화를 온전히 운동권문화로 일별할 수 있을까? 매우 역설적이게도 1980년대는 대학가의 운동권문화로 동일시하기에는 대중문화 환경과 문화 산업 시장의 변화가 매우 역동적인 시대였다. 특히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음악적 역량과 산업적 발전이 가장 뛰어났다. 1980년대는 조용필, 유재하, 김현식, 이문세, 변진섭, 이선희, 윤시내, 한영애 등 대형보컬형 뮤지션들뿐 아니라 ‘들국화’ ‘따로또같이’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 ‘시나위’ ‘송골매’ ‘블랙홀’ 등 포크에서 록까지 밴드들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였다. 서라벌레코드, 신촌뮤직, 동아기획 등 기업형 음반 레이블사들이 산업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2007년 8월 ‘경향신문’과 음악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가 공동으로 기획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는 1980년대에 발매된 음반이 31장이나 뽑혀 시대별로 가장 많았다. 1위는 1985년 제작된 들국화의 1집 <행진>이었다.

1980년대 한국 영화 산업에는 하이틴영화와 성애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단지 검열과 통제에 대한 반작용으로만 볼 수 없는 대중문화의 소비 욕망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5공화국은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국풍81’ 같은 통제적, 관제적 문화정책을 노골적으로 수행했지만, 한편으로 프로스포츠의 전면화, 컬러TV의 조기 보급 등 문화적 자유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단행했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신자유주의화가 역설적이게도 5공화국의 문화자유화 조치에서 비롯된 셈이다.

1980년대는 이념적으로 보자면 문화적 해방과 탄압이 충돌한 시대라고 볼 수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문화 산업의 양적인 팽창, 3저 호황에 따른 경제성장의 정점에 서 있던 시대였다. 청년세대의 소비문화를 자극시켰던 미국의 신보수주의 문화와 제국주의 문화를 경멸하던 운동권문화가 매우 내밀하게 교차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대학문화, 혹은 청년문화를 운동권문화로 대표해서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시 대중문화의 다양한 욕망과 차이들이 개인의 몸을 흔들었던 흔적들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내가 체득한 거의 모든 문화적 감수성은 1980년대 대중문화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1980년대 팝과 록 가요들을 들으면서, 에로영화와 프로스포츠를 즐기면서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왔다. 의식화된 청년 시절에는 그러한 감수성을 혁명을 위해 버려야 할 것으로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지 마이클의 사망은 1980년대 문화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내 딴에는 문화의 감수성과 정치적 의식화가 공존했던 1980년대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생뚱맞게도 지금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광장 촛불의 희망을 상상하게 한다. 1987년 민주화항쟁 30주년이 되는 내년에 듣는 조지 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회상하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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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연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