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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국회 잔디밭을 ‘또 다른 광장’으로 /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01 12월 [IF Media] 국회 잔디밭을 ‘또 다른 광장’으로 /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홍일표의 미래정치]국회 잔디밭을 ‘또 다른 광장’으로

출처 :?the 300

지난 주말 232만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촛불의 숫자를 세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촛불바다의 장엄함은 서울만의 것도 아니다. 수천, 수 만 개의 촛불들이 대구, 부산, 광주, 춘천, 순천 등 전국 각지에서 함께 타올랐다. 지난 주말 촛불과 횃불을 든 시민들은 청와대 앞 100미터 지점까지 다가갔다. 청와대 담벼락과의 거리는 1300미터, 900미터, 200미터, 100미터로 좁혀 졌다. 행진의 선두를 이끌었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기까지 오는데 1년 7개월이 걸렸다”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중국 관광객들은 자유로이 다닐 수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 행사는 불가능한 곳이 청와대 앞이고, 당연히 안이다. 2016년 12월까지 청와대는 여전히 구중궁궐(九重宮闕)이고, “잠들지 않으면 일하는 것”으로 알아야 하는 대통령의 관저 집무실은 더더욱 멀다. 세상을 밝히는 수 백 만개의 촛불, 지축을 흔드는 수 백 만의 함성을 대통령이 과연 보고 있고, 듣고 있는 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2014년 4월 16일 그랬던 것처럼, “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있고, 엄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 전언만 있다. 그곳은 지금도 멀고, 깊다.

구중궁궐은 여의도에도 있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은 ‘국회 담벼락 100미터’ 앞까지만 보장된다. 정문 앞에서 이뤄지는 ‘집회 비슷한 모습’들은 기자회견과 문화제란 이름으로 신고된 것들이다. 국회 잔디밭에서 집회나 시위는 불허된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당직자들이 본청 앞 계단에서 ‘집회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고, 당원들을 동원해 벌이는 ‘집회 비슷한 행사’가 가끔씩 열린다. 2014년 7월 참사 100일을 맞아,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회 경내를 행진했다. 하지만 이때조차 구호는 외치지 못했다. 집시법과 국회사무처의 경내관리가 이유였다. 2015년 10월 6일, 그런 국회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개편논의가 한창일 때였다. 국회 ‘농어촌·지방 주권 지키기 의원 모임’ 소속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민들이 집단으로 상경했다. 이들은 의원들의 안내를 받아 국회로 들어와 잔디밭에서 마음껏 구호를 외쳤다. 물론 영등포 경찰서 소속 경찰들의 제지는 없었다. “국회사무처와 의원실 사이?사전협의가 되었고, 사무처로부터 경비병력 투입요청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헌법도, 집시법도 아닌 국회사무처와 의원실간 협의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도, 보장할 수도 있는 그런 나라고, 그런 국회다. 의원들은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밤샘농성을 자주 한다. 물론 편치 않고,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 대부분은 자신의 SNS 계정으로 중계되는 수준의 ‘갇힌 농성’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19일 동안 계속되었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본청 앞 농성은 그나마 대단히 예외적 경우다. 이조차 세월호 유가족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보통의 시민들은 국회 정문 바깥에서 겨우 연대를 표할 수 있었다. ‘사무처와 의원실간 협의’라는 것조차 구색과 명분에 불과했던 것이다(당시 야당 의원과 보좌진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유가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국회 안으로 들일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회’가 결국 누구에게’나’ 열린 게 아니라 누구에게’만’ 열려 있고, 누구에게’는’ 아예 닫힌 공간임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책무이고, 그것을 돕기 위해 국회사무처가 있다. 당연히 국회는 국민을 밖으로 내모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여야 한다.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사무처는 의원을 앞세워, 의원들은 국회사무처를 내세워 여의도 구중궁궐에 스스로를 가뒀다.

지난주 금요일 171명 국회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참담하고 부끄러운 이유들이 탄핵사유로 열거되었다. 그야 말로 국가적 위기이고, 국제적 망신이다. “당장 퇴진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기에 야당 의원들에게 탄핵은 피할 수 없는 법적·정치적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탄핵에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한 국민압력지수는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지난 주말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촛불시민들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고, 월요일부터 국회로 매일 몰려온다. 하지만 그들은 국회 앞에서 삭풍한설의 기자회견, 풍찬노숙의 문화제 형식을 빌려 촛불을 들 수밖에 없다. 텐트도 제대로 치지 못한 채 ‘비박’을 해야 하니 정말 ‘비박’이 문제가 된다. 국회 본청은커녕 잔디밭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의결이 이뤄질 때까지(부결된다면 더욱 오래) 국회 정문 앞 기자회견과 문화제는 끊이질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도 탄핵가결 때까지 본청 로텐더홀에서 ‘대국민 릴레이 연설’을 한다. 매일 저녁 국회 잔디밭에서 의원과 당직자, 보좌진이 참석하는 탄핵 촛불집회가 열린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광장에 모인 수백만 촛불의 놀라운 상상력과 뛰어난 기획력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들은 법적 수단을 적절히 활용했고, 법적 제약은 가볍게 뛰어 넘었다. 폭력과 혼란은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얘기였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뛰어난 연설실력과 훌륭한 토론능력은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만 가능한가? 당연히 아니다. ‘평일 국회 잔디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를 이유가 없다. 국민이 국회를 믿지 못할 수는 있지만 국회가 국민을 믿지 않아서는 안 된다. 국회 잔디밭은 법원 판결이 아니라 ‘국회 사무처와 의원실 협의’로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
국회의원들도 로텐더홀 농성 대신 국회 잔디밭에 텐트를 치자. 그리고 촛불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모여 ‘탄핵’과 ‘탄핵 이후’,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해 연설하고 토론하자. 야3당만이 아니라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탄핵 가결여부가 중요하지만 촛불이 타 오른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을 잔디밭으로 들이지도 못하는 국회가 ‘새로운 대한민국’에 걸맞을 수는 없다. 결국 ‘국민의 격’에 맞추지 못한 대통령은 탄핵과 퇴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국민들은 자신에 맞는 ‘국회의 격’을 또한 열망한다. ‘국회’가 아니라 ‘민회’나 ‘시민평의회’를 따로 만들자는 논의조차 벌써 시작되었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 우리는 어떤 ‘설마’도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의회민주주의와 광장민주주의는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진화한다. 그것은 국회 잔디밭이 ‘또 다른 광장’이 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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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