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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사드 배치에 대한 동아시아의 중도정치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12 8월 [IF Media] 사드 배치에 대한 동아시아의 중도정치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사드 배치에 대한 동아시아의 중도정치]

출처: 뉴스토마토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순수하게 하고 오직 마음을 한결같이 해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동아시아 정치의 이상적 모델이라는 순(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선양하면서 전해 준 16자의 심법(心法)이다. <대학연의>의 저자인 진덕수는 이것을 동아시아 중도정치(中道政治)의 핵심의제로 삼았다. 서구적인 진보와 보수 사이에 낀 절충적인 중도(Middle way)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요즘 사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1000년을 넘게 정치의 정수가 되어 왔던 동아시아의 중도정치인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사드 문제에서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닐까? 동아시아 신냉전 국면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드 배치 장소를 경북 성주로 발표하기 직전에 박 대통령은 대구 공군기지 이전 등 몇 가지 당근을 그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에 던졌다. 장소 결정으로 반발할 이 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장소를 성주로 정한 것은 이미 2달 이전에 미군을 중심으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마도 그 결정은 우리 국민들의 안전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고려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군사 전문가들이 군사 작전지도를 보면서 군사목적의 기술적 합리성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들의 안중에는 대구·경북의 민심이 흉흉해지리라는 고려는 없을 것이다.

그 뒤 우리나라 정부는 미군의 결정을 통보받았을 것이다. 사드 도입과 배치 장소 결정에 우리나라가 논의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미군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사드 도입 여부에 관한 논의 단계부터 배치 후보지는 평택, 군산 등 기존의 미군기지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전시 군사작전지휘권은 미군이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미군이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볼 이유도 거의 없다.

만약에 이런 전개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무력감에 빠지지 않을까? 전작권을 회수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70년대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정책을 전환하면서 자주국방을 도모했던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까지 그런 자괴감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70년대 초반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달러에 대한 금 태환을 일방적으로 포기하고 닉슨 독트린으로 탈냉전을 선언했던 시기였다. 미국에 의지할 수만은 없다는 절박감이 경제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중화학공업으로 정책변동을 한 원동력이었다. 동아시아에서 거대한 정책 전환의 시기였다.

지금도 탈냉전기의 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혼돈의 시기이다. 동아시아 권력의 재편기에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패권다툼의 연장선에서 사드 배치문제로 한국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한국이 동아시아 정치를 권력정치(Power politics)로 보는 한, 미국과 중국의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사드 배치로 군사적 패권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하고 중국은 이를 제재할 목적으로 한국에 경제 보복 수단으로 경제적 패권 지위를 남용하려고 한다.

<대학연의> 등 동아시아적 사유가 줄 수 있는 지혜는 ‘힘(power)에 의한 패술(覇術)이 아니라, 덕(德)에 의한 왕도(王道)’가 진정한 천명(天命)과 민심(民心)을 얻는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정부가 힘으로 몰아붙이니, 평생 공화당과 그 뒤의 보수정당만 찍었던 경북 민심이 정권을 떠나고 있다. 힘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천리(天理)인 공(公)을 따르는 동아시아 중도정치에 이 문제의 해답이 있다. 권력을 바탕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사익(Private interest)을 도모하는 패도정치를 경계해 온 것이 동아시아 정치의 전통이다. 1000년 동안을 이어 온 동아시아 정치가 주는 지혜는 힘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덕에 의한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국내정치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도 우리나라의 입장은 힘에 의한 패권정치가 아니라, 덕과 상호 이해를 통한 평화에 새로운 길이 있다.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미국의 힘에 의한 패권정치가 동아시아 정치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에 대해 반발하는 중국도 미국과 정면대결이 아니라 한국을 경제적 보복으로 급박한 또 다른 패권을 휘두르고 있어 이 지역의 민심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모겐소(H. Morgenthau)의 고위정치(High Politics), 저위정치(Low Politics)의 구분이 모호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드 문제와 같은 군사적 고준위 정치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경제조치라는 저준위 정치로 협박하는 중국에 대해 대국답지 못하고 쫀쫀하다고 명분 있게 말할 수 있다.

힘이 아닌 덕에 의한 국제정치는 결국 ‘전쟁이 아닌 평화’다. 동아시아 중도정치는 군사적 권력정치가 아니라 평화에서 미래를 보는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야당 국회의원 6명이 의인(義人)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시도일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평화 패러다임의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우리나라 정치의 미래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사드 배치를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내년 12월에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안보 패러다임으로 대선 승리를 계산하고 있다. 야권이 집권하려면 지금의 수세적인 자세가 아니라 사드 배치문제를 동아시아에서 전쟁과 평화 패러다임의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그럴 때 비로소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중도정치는 권력정치를 평화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중국과 미국의 설득해 내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이 패권적인 미국, 중국과 다름을 보이면서 이 지역에서 지적·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길이 아닐까? 이것이 위태롭지만 은미한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의 중도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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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