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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민적 공화주의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22 5월 [IF Media]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민적 공화주의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시론)’새로운 대한민국’의 시민적 공화주의

출처 : 뉴스토마토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렸다. 민주공화국은 언제부터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을까.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언제부터 의식했을까.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이 아닌 공화정체인 대한민국을 선언했지만, 그때는 일부 독립지사들에만 통용된 이름이었다. 시민들은 자유롭게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되고서도 ‘대한민국’은 교과서나 관공서에서나 썼지,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용어였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과 ‘우리나라’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란 말이 비로소 시민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사용된 것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조국과 공동체를 자각했고, 이때부터 ‘민주공화국’, ‘시민참여’, ‘광장’, ‘공공성’ 등의 단어가 통용됐다. 민주공화국의 시작이었다.

공화주의 연구자들은 시민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들의 민주공화정을 자각하는 것을 ‘마키아벨리적 계기(Machiavellian Moment)’라고 한다. 근대적 도시공화정의 시작으로 보는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도시공화정에서도 1399~1402년까지 4년간 마키아벨리적 계기가 폭발했다. 시민들은 북쪽 밀라노 공국의 독재에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도시의 중앙광장인 시뇨리아 광장으로 나왔고, 이때 그동안 느끼지 못한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서 공화정을 깨닫게 됐다. 이것이 근대의 가장 고전적 ‘시민적 휴머니즘’의 시작이다.

헌법상의 용어인 ‘대한민국’이 시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은 2002년 월드컵 응원에서였다. 자신들의 공화정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정이 하나로 모여 그해 12월 대선으로 이어졌고, 2002년을 기준으로 이전과는 다른 ‘대한민국’이란 말이 일상의 삶 속에 정착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광장에서 폭발해 시민들의 의식 속에 각인된 것은 2008년 촛불집회다. 그리고 2016년과 올해 사익만을 추구했던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며 다시 ‘대한민국’에 대한 자각이 급증했다. 그렇게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렸다.

흥미로운 것은 시민적 공화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재벌개혁은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계속 증가했다. 그러나 이 증가세는 2009년을 정점으로, 이후에는 하향곡선을 그린다. 2016년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촛불집회에서도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었다. 시민들의 관심은 민주주의에서 ‘시민적 공화주의’로 옮겨갔다. 2016년 촛불집회 이후 한국정치에서 가장 큰 변화는 민주주의 과제에 대한 시민적 관심이 줄어들고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은 시민적 공화주의와 크게 관련이 없었다. 2011년과 2012년 정점을 찍은 뒤 이후에는 하향세였다.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지난해에도 복지국가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재벌개혁 역시 진보학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달리 시민적 관심은 2012년 대선 때 일시적이었다. 2012년 이후 재벌개혁은 시민들에게 주요한 쟁점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관심은 시민적 공화주의에 쏠려 있었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인식에서 ‘내 삶’과 개인, 자유가 관심을 모았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 전체의 정의와 공동선이 강조됐지만, 개인과 ‘내 삶’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2008년 촛불집회 이후에 개인과 자유, ‘내 삶’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당 후보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올해 대선에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를 외치며 시민적 지지를 얻었다. 개인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유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 요구도 커졌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그리고 2016년 시민대집회 이후 국민주권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시민대집회 이후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새 정부는 인수위를 대신해서 국정기획자문위를 구성하고, 가장 중요한 과제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국민인수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국민인수위는 새 시대의 흐름이다. 2010년 이후 개헌이 이뤄진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루마니아 그리고 네덜란드는 모두 국민참여형 개헌이 이뤄졌다. 대한민국의 헌법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기로 예정돼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은 국민주권 시대의 시민참여로부터 열린다. 정치인과 학계보다도 국민인수위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흐름이 될 것이다. 새 술은 국민인수위라는 새 부대에 담자. 국민인수위에 대한 시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