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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세계평화 도시’를 서울의 비전으로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22 8월 [IF Media] ‘세계평화 도시’를 서울의 비전으로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세계평화 도시’를 서울의 비전으로

출처 : 뉴스토마토

정치권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향해 잰걸음을 시작했다. 국민의당은 지방선거가 정당의 존망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전당대회로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정당의 재통합을 모색하는 반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추구하는 중도 통합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연일 언론이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선거 당사자인 지방정부에서는 지방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개헌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도 동시에 실시된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선거지만 몇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첫째 이번 제10차 개헌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정치권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시민적 거부감이 작동할 것이다. 87년 헌법 개정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이전의 개헌들도 형식적인 명분은 차치하고라도 권력구조와 대통령 선출방식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러나 내년 개헌은 대통령 4년 중임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정치권 중심의 권력구조 개편을 그 중심에 놓을 경우 시민들의 저항을 받을 것이다. 시민들은 87년 민주화를 통해 시민적 권력을 확보했다고 믿는다. 때문에 시민들은 그들의 동의 없이 분권형 개헌 등으로 시민권력을 약화시키는 개헌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이번 개헌은 중앙의 권력구조 개편보다 지방자치형 개헌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본격화될 것이다. 1992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이미 6기의 지방정부들이 등장했고, 지방분권으로 축적된 역량들이 다음 개헌을 자치분권형 개헌으로 이끌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라는 개념 대신 헌법상의 용어로 지방정부가 도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한발 더 나아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요구도 제기될 수 있다. 개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쟁점도 중앙의 권력 개편보다는 지방분권으로 이동할 개연성이 높다.
셋째 개헌은 내용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식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600만 촛불시민에 의해 시작된 촛불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되는 국민주권적 개헌이 다음 개헌의 핵심이다. 2010년 이후 개헌을 했던 대표적인 나라들은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루마니아 등인데, 이들은 모두 시민참여형 개헌을 했다.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서 촛불혁명 이후 우리나라의 주권자 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는 시민의회 등 새로운 국민주권적 개헌에 대한 요구로 옮아갈 수 있다.
개헌 일정과 지방분권형 국정운영으로의 전환을 고려할 때 내년 지방선거 역시 초미의 관심은 서울시장 선거다. 그러나 아직 서울에 대한 비전은 두드러진 게 없다. 서울시장 선거는 중앙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통념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명박식 청계천 공사 이후 서울의 비전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거대담론은 없어 보인다. 오세훈 전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상이 신자유주의에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모색을 시작했음에도 이명박의 아류 정치만 하다가 낙마했다. 한강 르네상스와 용산 개발 등 자본의 탐욕을 쫓는 마천루만 세우려다가 주저앉았다. 시대는 고삐 풀린 자본을 통제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의 세상을 좇다 스스로 좌초됐다.
박원순 시장도 서울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작은 정치에 매몰, 시민들에게 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내년에 선출될 서울시장은 정치기능의 일부가 세종시로 이전하고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옮겨가는 정치·군사기능의 진공상태를 글로벌 비전으로 채워야 할 숙명을 안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재판소가 이미 결정한 관습헌법으로서의 ‘수도 서울’을 수정해서 세종시로 수도가 이전할 수도 있다. 정치권이 수도권 민심을 고려해 세종시로 이전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정치기능의 상당 부분이 세종시로 옮길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서울의 비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서울을 ‘세계평화 도시’로 삼아 비전을 제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미래 구상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정치와 군사기능 이전에 따른 진공상태를 글로벌 차원에서 서울의 미래전략으로 탈바꿈시키는 지혜가 요청된다. 세계평화 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은 21세기 지구상에서는 역설적으로 갈등과 긴장이 첨예한 서울과 예루살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의 핵무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서울이 다음 시대에 대한 평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역할이다.
서울을 세계평화 도시로 삼는 비전은 구체적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을 평화기념관으로 바꾸고, 9월에는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혁신, 평화 등 정치와 사회 어젠다로 ‘글로벌 혁신과 평화포럼’을 제시할 수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는 국제연합(UN) 제5사무국을 서울에 유치하는 것을 추진할 수도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담대한 비전으로 세계평화 도시가 제시되길 희망한다.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