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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세상읽기]알쓸신잡의 매력 /이동연(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03 8월 [IF Media] [세상읽기]알쓸신잡의 매력 /이동연(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읽기]알쓸신잡의 매력

출처 : 경향신문

<알쓸신잡>의 마지막 회에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타임머신이 가능한가’라는 시청자의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분명 정재승을 향한 것이었다. 유시민은 정재승의 설명을 듣기에 앞서 자신은 타임머신이 가능해도 타고 가지는 않을 거라고 선수를 친다. 그때 정재승은 이렇게 그에게 질문한다. 만일 타임머신이 있어 그걸 타고 내가 꼭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토론의 화두를 전환한 것이다. 유시민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재승은 아인슈타인, 유시민은 세종대왕, 김영하는 태조를 거명했다. 그때 나 역시 그 질문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유재하를 떠올렸다. 1987년 11월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5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싱어송라이터인 그에게 당신은 조금 있다 교통사고를 당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죽음은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때 유희열이 유재하를 말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출연진 중의 한 명이. 그가 죽었기에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유재하가요제 대상 출신 유희열의 반전의 상상은 서로 대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알쓸신잡>은 서로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여행 중 벌이는 잡다한 지식 수다를 통해 서로 다름과 같음을 이해하는 아재들의 자기발견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잘나가는 아재들의 지적 나르시시즘의 향연 같다”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꼰대들의 탁상공론이다” “먹방 프로그램인지, 여행 프로그램인지, 인문학 프로그램인지 애매하다”라는 지적들 말이다.

이런 비판적 지적들에 아랑곳없이 <알쓸신잡>은 시작부터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첫 회 시청률 5.4%로 시작해 7회차 춘천여행편은 7.2%나 나왔다. 요즘 지상파 방송의 주말드라마도 시청률 7%를 넘기기 힘든데, 아재들의 지식 수다가 전부인 <알쓸신잡>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인기를 끈 것은 분명 하나의 미디어 현상으로 볼만하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이들이 여행 간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종방에 소개된 책들이 곧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현상은 마치 <무한도전>의 미디어 효과를 보는 듯하다.

이런 프로그램이 왜 인기를 얻게 된 걸까? 혹자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나영석 PD 사단의 뛰어난 연출 역량을 꼽는다. 어떤 사람은 현존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 공공연하게 자극적이고 표피적이어서 시청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5명의 출연진을 등장시킨 캐스팅의 승리라고 말한다.

이런 지적들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느낀 <알쓸신잡>의 미덕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같음과 다름의 감각을 발견하는 데 있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드러내는 태도, 그러다가도 특정한 상황이 오면 서로 공감하는 순간의 발견, 이런 것들이 <알쓸신잡>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최종회 방송 마지막에 황교익이 김영하를 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의 숨은 감성을 발견하여 좋았고, 그의 머릿속 감성이 내 머릿속으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이 말에 정재승은 곧바로 김영하의 머리가 커서 그의 뇌가 황교익의 뇌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평한다. ‘남성적’ ‘꼰대 같은’ ‘잘난 척’ ‘위험한 미디어 효과’라는 <알쓸신잡>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아재들의 수많은 지적 수다 속에서 발견된 ‘같음과 다름’의 미덕은 칭찬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지식 수다 그 자체가 아니라 지적 대화를 통한 자기발견과 타자에 대한 이해이다. 유시민이 말미에 모두 다 각자 자신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힌 것도 타인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한 그만의 통찰이 아닐까 싶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은 수컷 아재들이 타자와의 ‘대화적 상상력’을 통해 풋풋한 자기애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매우 쓸데 있는 지식 수다 이벤트였다.

이동연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