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IF Media] [세상 읽기] 대화를 두려워 말라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1 2월 [IF Media] [세상 읽기] 대화를 두려워 말라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 읽기]  대화를 두려워 말라

출처 : 한겨레

미국은 평창에서 품격을 잃었다. 만찬장에 어디 북한만 있는가?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남북 공동 입장을 감동이라고 하고, 참석자 대부분이 기립박수를 보낸 이유는,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이 올림픽 정신이기 때문이다. 박수를 치지 않은 미국은 올림픽 정신과 대북정책을 구분하지 못했다.펜스 부통령은 대북 전략의 혼돈을 드러냈다.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저우언라이(주은래)의 악수를 거부했던 덜레스 국무장관을 떠오르게 했지만, 그때는 국제회의였고, 지금은 올림픽이다. 그때는 군사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외교의 시대다. 미국이 왜 대화를 두려워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관여는 없고 압박만 있다’는 점을 전세계에 확인시켜주었다.미국은 북핵 문제에서 북한 문제로 대북정책을 전환했다. 인권 공세를 앞세우는 도덕외교는 새롭지 않다. 바로 트럼프 정부가 비판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의 핵심이다. 체제 붕괴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문제 접근이 실패한 이유를 아는가? 시간 변수를 착각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하기 전에 언제나 미국 정부가 먼저 교체되었다.북한의 핵무기가 정치적 완성에서 기술적 완성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이 왜 북핵 문제가 아니라 북한 문제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대화를 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까? 북한이라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다.북한은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선택했다. 평창에 적극 참여했고, 김여정 특사를 통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과거 남북관계의 역사를 보면, 실무회담을 통한 단계적 해결 방식이 아니라, 정상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방식이 효과적이다. 정상회담도 대화의 한 종류다. 대화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다만 3차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남북 모두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정상회담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북-미 삼각관계, 즉 남-북, 북-미, 한-미라는 세 개의 양자관계가 선순환했다. 지금은 어떤가? 북-미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의 혼돈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차이도 벌어질 것이다. 한-미 균열이라고? 한국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미국이 멀어져서 생긴 현상이다.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해결할 과제가 있다. 이산가족도 만나야 하고,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회담도 열어야 한다.물론 세 개의 양자관계에서 남북관계만 진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 문제가 아니라 북핵 문제에 집중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외교를 부정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음을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북한도 한반도 상황관리의 엄중함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평창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에 달렸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서 중국이 한반도의 정세관리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올림픽 개막식에 울려 퍼지는 정선아리랑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세월도, 우리가 사는 분단의 세월도 언제 좋은 날이 있었나. 다만 아리랑은 체념의 노래도 슬픔의 노래도 아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겨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우리 스스로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어야 한다.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