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월 [IF Media] [세상 읽기] 신성한 판결은 없다 /이관후(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 읽기] 신성한 판결은 없다
출처 : 한겨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로 징역 6년을 구형받은 조윤선 전 장관이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고 석방되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부분은 위증죄였다. 비서실장,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블랙리스트 관련자 중 김기춘 비서실장, 정무수석실의 두 비서관, 문체부 차관은 모두 유죄를 받았지만,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는 동안 정무수석과 문체부 장관을 지낸 조윤선만은 무죄였다.국방부 댓글 공작 혐의로 구속된 김관진 전 장관과 임관빈 전 정책실장이 구속되었다가 얼마 뒤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석방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 안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대법원장이 진화에 나섰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며칠 전에는 장시호와 김종에게 1심 선고가 내려졌다. 검찰의 구형은 각각 1년6개월과 3년6개월이었고, 선고는 각각 2년6개월과 3년이었다. 특검에 협조했다는 장시호는 구형보다 1년이 늘어났고, 차관을 지냈던 김종은 6개월이 줄어들었다.여기서 특정 판결에 대한 호불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호불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 호불호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것 역시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다.사법적 판단은 공적 판단에 속한다. 공적 판단에 대한 권한을 특정한 집단이 독점하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공적 권한은 위임받은 것이며, 그 권한의 근거가 법률이든지 헌법이든지 간에 그 최종적인 기반은 주권을 가진 시민이다. 시민의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권한이란 민주주의에서 존재하지 않는다.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신이 아니듯, 인간의 판결이 신성할 수는 없다. 판결은 합당한 법률적 지식을 갖춘 양심을 가진 인간이 내리는 잠정적 결론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신성함의 대상으로서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이제는 잘 알려졌지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받아야 할 것은 상이지 벌이 아니라면서, 유죄를 판결한 배심원들을 한껏 조롱하고 비판했다. 그가 아테네를 떠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을 존중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침묵하는 삶, 곧 공적 결정을 비판하지 못하는 삶이 의미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떠나기를 거부했다.대법원장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는 것은 숭고한 사명’이라고 했다. 여기서 사법부의 독립이란 부당한 권력이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여론도 부당한 권력이나 압력일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먼저 우리의 판결이 여론보다 권력과 학연과 지연과 사법연수원에서의 인연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지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대법원장은 또한 법관의 독립은 ‘동료 법관으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기서의 신뢰가 서로에 대한 무비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관 독립에는 제도적인 보완이나 동료 법관들 사이의 신뢰도 필요하겠지만, 먼저 국민의 지지가 전제돼야 한다. 판결에 대한 법관들의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될 때, 시민들은 법관의 독립을 응원할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