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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세상 읽기] 악마의 탓만은 아니다 /이관후(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4 11월 [IF Media] [세상 읽기] 악마의 탓만은 아니다 /이관후(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 읽기] 악마의 탓만은 아니다

출처 : 한겨레

박현준. 2014년 5월29일생. 엄마는 19살, 아빠는 20살. 그해가 가기 전에 아빠는 다른 여자를 만났고 이듬해 부모는 헤어졌다. 9개월간 외할머니가 키우던 현준이를 재혼한 친부가 데려갔다. 그리고 2017년 7월12일, 현준이는 ‘경추압박 질식사’로 숨졌다. 목이 졸려서 죽은 것이다. 부모는 현준이의 목에 개 목줄을 채워 침대에 묶어놓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3살 아이가 스스로 목이 졸려 죽은 것일까?숨질 당시 현준이의 몸무게는 돌을 갓 지난 10킬로그램 수준이었고, 음식과 물을 먹지 못해서 항문이 괴사하고 내장이 내려앉은 상황이었다. 아이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 굶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어차피 목숨이 한계에 다다른 아이는 목이 졸려오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발버둥 쳤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 숨이 끊어졌다.유명인을 둘러싼 확정되지 않은 사실들은 언론의 열렬한 관심을 받지만, 현준이의 죽음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친부와 새엄마에 대한 1심 판결이 있고 나서야, 현준이는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두 사람은 각각 15년형을 받았다. 언론은 형량이 너무 적다며 앞다투어 보도했다. 상상할 수 없는 학대를 통해 아이를 죽인 어른에게 중형이 선고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뿐인가?2007년, 영국에서 만 2살 아이가 학대를 받아 숨진 ‘베이비 피’(baby P) 사건이 있었다. 피터라는 이름을 가진 만 1살 아이의 엄마는 새 남자친구를 만나 살게 되었고, 1년 뒤 피터는 척추와 갈비뼈가 부러진 채 사망했다. 친모는 5년, 남자친구는 12년형을 받았다. 재판이 진행된 2년에 걸쳐서 언론은 집요하게 이 문제를 추적했다. 그러나 영국 사회의 초점은 학대의 잔인성과 형량의 경중에만 있지는 않았다.영국인들이 물은 것은 ‘이 아이가 학대를 받아 죽음에 이르는 동안 사회가 무엇을 했는가? 학대를 발견하고 조치할 수 있는 순간들을 국가가 몇번이나 놓쳤는가? 담당자들의 책임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에 있었다. 해당 구청의 아동청소년 부서, 다친 아이가 종종 실려 왔던 관할 병원, 아동 학대를 신고받은 경찰, 관련 사회복지 기관은 혹독한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담당 장관은 해당 구청에 대한 특별감사를 지시했고, 의회는 정부를 매섭게 추궁했다.2009년, 의회는 100쪽이 넘는 ‘영국에서의 아동 보호: 발전 방안 보고서’(The Protection of Children in England: A Progress Report)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지난 2년 동안 55명의 어린이가 부모 또는 가까운 지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내용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정부는 이 의회보고서를 기초로 약 60쪽에 달하는 ‘실천계획’(The Protection of Children in England: action plan)을 발표했다.연민과 분노를 넘어서 대안을 살피는 것, 이것이 문명이라고 생각한다. 현준이의 외할머니는 ‘악마에게 15년형이라니…’라며 절규했다. 나 역시 분노한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악마는 있다. 악마에게서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도리어 아이를 악마에게 건넨 자는 누구인가?국무총리와 장관이 순직한 소방관과 공직자들의 장례식장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처럼, 국가의 책임 있는 사람이 현준이의 영혼을 위로하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전에 먼저,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현준아 미안하다. 우리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