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8월 [IF Media] 소득 불평등과 미국 대선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소득 불평등과 미국 대선]
출처: 뉴스토마토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선거결과 예측으로 명성을 얻은 네이트 실버(Nate Silver)가 운영하는 대선 예측 사이트 ‘538’에 의하면 클린턴의 승리 가능성은 63.3%, 트럼프의 가능성은 36.7%다. 두 후보 간에 좁혀지던 격차는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다시 급격하게 차이가 벌어지는 반전 양상이다. 538은 미국 대선 총 선거인단을 상징하는 숫자로 상원의원 100명, 하원의원 435명, 수도인 워싱턴DC를 대표하는 3명을 더한 것과 같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클린턴의 대선 승리 확률은 76%, 트럼프는 24%로 예상했다. 당선을 위해서는 최소 270명의 선거인단 확보가 필요한데, 클린턴은 15개 주에서 186명을 확보했고 경합주 가운데 우세를 보이는 8개 주를 합치면 275명의 선거인단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클린턴의 승리가 무난해 보인다.
그러나 클린턴의 승리가 예상되는 대선 결과는 대중적인 감동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미국을 비롯해?세계정치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됐던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어서다. 월가(街)로부터 한 번 강연에 수십만 달러를 받는 클린턴이 월가를 개혁하고, 상위 1%가 아닌 99%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 이번 대선 초반에 신선한 감동을 불러왔던 버니 샌더스의 공약 중에서 많은 것이 클린턴 공약에 포함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클린턴의 집권 때 실천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클린턴의 화려한 연설이 빈 말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 투성이다.
소득 불평등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적 수준에서 촉발되었고, 자본의 관점이 우세한 다포스 포럼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가장 보수적인 국제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안들은 2012년 무렵 다양하게 표출됐다. 노동을 대변하는 국제노동기구(ILO)는 소득주도 성장을 제기했고, 사회적책임을 강조하는 기업들도 공유가치 성장을,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는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토마 피케티(T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돼 지난 100년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상위 1%, 10%의 소득점유율(Income shares rate)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는 것을 경험적인 실증자료를 토대로 보여줬다. 특히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 이후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급격히 증가해 거의 50%에 이른 것을 지표로 입증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중산층이 붕괴하면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2015년 1월, 클린턴에 가까운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포용적 번영위원회(Commission on Inclusive Prosperity)’ 보고서를 발간, 소득 불평등이 다음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대안들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클린턴 캠페인에서는 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지 않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눈에 띄는 공약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샌더스가 소득 불평등 해결에 대한 흐름을 주도했고, 클린턴은 마지못해 뒤쫓는 무기력함을 보였다. 이런 후보에 20~30대의 밀레니얼스가 감동할 리 만무하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가 양극화돼 저소득층이 증가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미국 민주당을 지지할까. 미국 중부를 중심으로 한 백인 농업 노동자, 삼림 벌크공, 석탄 광부, 도시 저임금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전향적인 정책에 감동해서 공화당 지지에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정당 일체감(Party identity)으로 지지 정당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소득 불평등으로 소외된 백인 노동자들의 불만을 파고드는 것은 트럼프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흥미롭게도 더 보수적이고 선동적인 후보가 불평등으로 소외된 저소득층 지지를 확보하는 게 오래된 정치적 아이러니다. 아마도 트럼프의 반전 카드가 남아 있다면 이 계층에 대한 선동이 전염병처럼 번져 나갈 때다. 클린턴에게는 이를 제어할 소득 불평등 문제 해결에 대한 시민적 믿음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루하고 상투적인 동어 반복만이 되풀이될 뿐이다.
우리도 대선을 1년여 남겨놓고 있다. 소득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화두지만, 이에 대한 제도 정치권의 진지한 대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상위 1%, 10%에 대한 과세 등 전향적인 정책들을 찾기 힘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사회에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 후보가 내년 대선에서 시민적 관심을 모을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도 불과 1년 전에는 샌더스와 트럼프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사회는 미국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지금까지 대선후보 지지율은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지금은 미미한 지지율이나 아직 후보 물망에 오르지 않았더라도 소득 불평등에 대해 몰입하는 후보가 내년 대선을 주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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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