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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시론]’정부 종합대책’의 허와 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19 12월 [IF Media] [시론]’정부 종합대책’의 허와 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시론]’정부 종합대책’의 허와 실

출처 : 경향일보

중요한 국정 현안이나 큰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 이른바 정부의 ‘종합대책’이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원인이 단순하지 않고, 몇 개의 정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성과를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안에 따라 원인과 처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종합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고 일리가 있다. 더구나 ‘종합대책’은 사안에 대해 신중하게 충분히 검토해서 대책을 마련했다는 인상을 준다. 속된 말로 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종합대책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인 12월1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 정부의 산업 정책 방향’ 보고는 종합대책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핵심 정책도, 정책의 구체성과 추진 계획도 없이, 부서별로 취합된 과제들을 잘 분류해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는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 상당 기간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5대 기간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 업무를 중소벤처기업부에 이관한 뒤 산업부가 마련한 종합정책안에는 이들 산업의 잠재된 구조적 위기 요인에 대한 분석과 처방은 물론 당장 보릿고개에 직면한 조선 산업에 대한 구체적 대책조차 없다.

종합대책은 각 부처나 부서가 제출한 자료를 취합하고, 이 중 이견이 있거나 민감한 사안을 부처 내 혹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조정해 마련된다. 이때 공무원들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원하는 방향에 맞추어 평소 가지고 있던 정책 목록들을 제출한다. 그렇게 마련된 종합대책의 태반은 종합대책이 아니어도 각 부처 장관이, 각 부서의 국·실장이나 과장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거나 할 일들이다. 정부의 종합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거나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공무원 업무의 반 이상이 문서를 만들고, 보고하고, 회의에 참석(배석)하는 일이라고 한다. 종합대책을 발표한다고 예고하면 관련 부처 각 부서의 전 공무원은 문서 작업에 매달린다. 종합대책에 걸맞게 구색을 맞추느라 정책의 가짓수가 늘어난다. 대통령과 장관에게 올리는 보고서에 내용을 담지 못하는 부처와 부서가 없도록 관료조직 내부의 정치도 작동한다.

보통 수십 가지의 정책이 포함된 종합대책 중 이를 보고받고, 발표한 대통령과 장관조차 나중에 기억하고 사후 점검하는 정책이 몇 개나 될까. 그 종합대책을 만든 공무원에게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정책이 몇 개나 될까. 그중에 실제로 실행되어 성과를 만들어내는 정책은 또 몇 개일까. 선택과 집중, 중요도와 우선순위가 고려되지 않은 종합대책은 그냥 보고서일 뿐이다.

종합대책 방식이 갖는 또 다른 문제는 종합대책을 만드느라 정책의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가상화폐 종합대책은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며 정책의 타이밍을 놓친 사례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시장과 참여자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정부의 정책 선택이 제약되어 버린 것이다.

수많은 부처의 수많은 공무원이 수많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 정부마다 수많은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업적으로 기억되고 시대의 흐름과 세상을 바꾼 정책은 핵심 정책 몇 가지다. 그것마저도 제대로 추진하기에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나.

새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인해 퇴행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너무나 많은 과제를 떠안고 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특히 시장 경제가 발전하여 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사회경제적 기득권 구조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조건에 5년 임기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임기 내 할 일과 이후 변화의 토대를 만드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그 전제하에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이 챙길 일을 구분해야 한다. 책임 장관제는 부처 인사권만이 아니라 정책 영역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 각 부처 장관 역시 장관과 각 국·실장이 챙길 일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과 장관은 주요 국정과제와 핵심 정책에 집중하되, 이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세부사항까지 챙겨야 한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화려한 종합대책보다 실질적 변화와 성과를 만들어내는 실효성 있는 핵심 정책을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절실하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