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11월 [IF Media] [시론]청년 창업이 능사인가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시론]청년 창업이 능사인가
출처 : 경향일보
통계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8.6%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고, 체감실업률 역시 21.7%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역대 정부마다 청년대책은 늘 중요한 정책과제가 되어 왔고, 일자리 만들기와 청년 창업 지원 정책은 그 두 축에 해당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세계 어느 나라나 직면한 과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가 청년에게 창업은 미덕이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청년 창업을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일종의 도그마가 형성되어 왔다. 과연 사회초년생인 청년에게 창업을 권유하는 것은 옳은 정책인가?
벤처기업의 창업 후 성공률은 5% 미만이라고 한다. 벤처의 천국, 실리콘밸리도 그러하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안된다. 시장은, 기업 생태계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100명 중 95명은 실패자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한 번 실패하면 영구히 낙오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사업은 실패해도 부채의 늪에 빠지지 않게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하고, 재기 지원 펀드를 만들어 지원하자는 정책이 나온다. 다 좋다.
그런데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해 사회에 나온 청년, 이른바 사회초년생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시장과 기업, 사회에 대한 경험도, 교육과 훈련의 과정도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해서 몇 년간 시도하다 실패해서 빈털터리 된 청년, 이제 나이도 30대 초반이 되어 회사에 입사 원서 내는 것도 어려워진 청년. 이들에게 재기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얼마나 있을까?
2008년 하버드 대학 연구소에서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기업가 500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개 사람들은 성공한 벤처기업가 하면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오거나 중퇴하고 성공이 보장된 기업에 취직하기보다 바로 창업한 20대 미혼 천재들’을 떠올리지만 500명의 평균적 모델은 ‘아이비리그보다 한 등급 아래 대학을 나와 직장 경험이 있는 30대 기혼자’였다고 한다.
시장과 기업에 대한 경험이 없고 훈련받지 못한 20대 새내기는 실패 확률이 높은 반면, 직장 생활을 통해 실전 훈련을 받고 시장과 기업에 대해 경험한 사람, 공동체와의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기업을 창업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청년 창업을 지원한다고 책정되는 예산이 매년 수천억원이다. 중앙정부부터 지방정부, 공공기관, 민간기업까지 각기 운영하는 창업지원센터는 그 수와 종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데 몇 개를 지원해서 실제 창업은 몇 개가 되었고, 이후 기업으로 존속된 것이 몇 개인지, 실패한 청년들은 그 뒤에 어찌 되었는지 등등은 국가적으로는 고사하고 기관별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태조차 파악이 안되니 평가가 제대로 될 리 없다.
GDP 대비 세계 1위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성과는 미미해 눈먼 돈이라는 평가를 받는 R&D 예산처럼, 창업 지원 예산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지원금 따내기는 페이퍼워크 능력에 좌우된다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청년들 사이에서 나올까.
대학(원)을 이제 막 졸업하는 청년들에게 창업은 능사가 아니다. 사회가 그들이 경험하고 배우고 훈련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창업하라고 부추기면 안된다. 사회초년생에게 예정된 95%의 실패자가 될 것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청년에게는 창업보다 일자리가 우선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에서 경험하고 배울 기회다. 그래야 그 뒤에 창업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새 정부의 일자리 우선 정책은 옳다. 그러나 지금 청년실업률은 정부가 새 일자리를 만드는 속도로는 해결이 안된다. 있는 일자리라도 나누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창업 지원 정책은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실태 파악과 성과 평가부터 해야 한다. 창업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관료적 조직에 적합한 일이 아니다. 창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민간의 창업 컨설팅과 지원,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간접적인 것이 바람직하다. 지원 대상의 선정과 지원 방식도 치밀한 분석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창업과 관련해 정부의 주된 역할은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 이후를 지원하는 것이다. 정책금융과 세무, 법률 지원, 갑질로부터의 보호, 각종 규제와 제도의 정비 등이 정부가 할 일이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