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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시론]한국 금융산업의 미래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07 11월 [IF Media] [시론]한국 금융산업의 미래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시론]한국 금융산업의 미래

출처 : 경향일보

올해 금융기관의 실적이 눈부시다.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올해 영업이익은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국내 어떤 제조업 기업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도 이 실적이 제조업의 국제경쟁력과 비견될 수 있는 경쟁력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산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 국가 5대 기간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제조업 분야에 비해 우리 금융산업은 국제경쟁력을 논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사실 금융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나 특별한 기술력을 요하지 않는 산업분야다. 자본과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인적 자원만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대한민국에서 왜 금융산업은 발전하지 못한 것일까? 필자는 오랜 관치와 함께, 재벌과 은행 중심의 금융산업구조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은 이윤 동기와 시장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높은 인허가 장벽에서부터 세세한 영업행위 규제, 감독까지 금융산업은 다른 그 어떤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국의 권한이 크다. 이는 IMF 경제위기처럼 산업 위기가 국가경제 위기로 직결되는 금융산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일상화된 과도한 ‘관치’는 시장의 경쟁을 억제하고, 산업 전반에 걸쳐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을 만들어 온 것이 사실이다. 왜곡된 관치의 혁파가 금융산업 발전의 전제가 되는 이유다. 한국 금융산업의 후진성은 자본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은행업은 국가적으로 시스템 안정성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산업의 발전은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인 금융기업에서 확인되듯이 주로 투자와 자본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제2금융권은 은행업에 비해서도 후진적이다.

지금 제2금융권은 은행과 재벌의 계열 회사가 중심이다. 금융지주회사체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은행업과 은행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다. 재벌 계열 금융회사는 계열사가 몰아주는 자금의 운용 수수료만으로도 수익이 보장된다. 속된 말로 등 따뜻하고 배부르니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성장과 발전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이다.

투자은행을 활성화하겠다고 2013년 통합자본시장법을 개정한 바 있다. 그러나 그해 삼성증권은 ‘2020년 글로벌 톱 10 진입’을 목표로 투자은행으로 나아가기 위해 투자했던 홍콩법인을 철수시켰다. 당시 삼성그룹 최고경영진은 “돈은 전자에서 벌 터이니 금융은 사고만 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규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기업의 체질이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은행업이 국제경쟁력을 갖거나 해외에 진출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 결국 한국 금융산업의 발전은 자본시장, 특히 자산운용업을 육성하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금융산업의 성장요소는 자본, 전문인력, 네트워크, 실적이다. 자본은 충분하다.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돈은 쌓여가고 있다. 쌓여가는 자산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어떻게 운용하여 자본이득을 얻어내느냐는 고령화 사회 노후 생활을 위해서나, 소득주도성장의 한 축인 중산층의 소득 증대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경제의 일상적 과제가 되어 버린 기업구조조정도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M&A 시장에서의 사모펀드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

예대마진과 수수료에 의존한 한국의 금융산업을 투자와 자본시장 중개 기능, 자산운용 수익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시장의 진입장벽과 구시대적 규제를 없애 독립계 자산운용사를 육성하는 것은 은행과 재벌 중심의 금융산업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다양한 투자와 자산운용 경험(실적)을 통해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자와 자산운용을 위탁하는 글로벌 금융기업에 국내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요구해야 한다. 이미 국제금융시장의 큰손이 된 국민연금의 요구를 거절할 기업은 없다. 우선 산업은행의 국내외 투자 부문을 육성해서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의 파트너가 되게 하고, 나아가 국내 민간 금융회사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한국투자공사 사장에 이런 적극적 역할을 할 능력과 식견을 가진 인사가 등용되기를 기대한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