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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아재개그를 위한 변명 /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3 9월 [IF Media] 아재개그를 위한 변명 /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읽기]아재개그를 위한 변명

출처: 경향신문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전쟁은? ‘무서~워~.’ 칼 막스라는 사람은 누구? ‘칼 막 쓰는 사람.’ 허탈함이나마 웃음의 계기가 있어 다행이다. 아재개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들의 야유를 동반하고 신경질마저 돋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이없어하며 나오는 헛웃음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헬조선’ 대한민국에서는 그러하다.

‘아재개그’는 재미없는 말장난이나 유행에 뒤처진 개그를 뜻한다. 결국 아재개그는 재미있어야 할 개그가 아재가 하니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재개그에, 개그를 하는 아재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줌마개그란 말은 없고, 아재개그란 말만 있는 것일까? 주로 성인 남성들이 재미없는 개그를 아주 자랑스럽게, 뻔뻔하게 해댄다. 남들이 재미있든 없든 자신만 재미있으면 된다. 아니, 남들이 재미없어한다는 것을 아예 모른다. 자기가 하면 다 재미있어한다고 여긴다. 자신이 유행에 뒤떨어진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유행이 뭔지 잘 모른다.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과 말을 찬찬히 살펴보고 듣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사람들에게 열어야 할 지갑은 닫고 입만 연다. 혹은 자신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웃어줄 때에야 지갑을 연다.

아재개그가 그리 ‘나쁜 것’이라면, 왜 ‘칭찬조’로 글을 시작했느냐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 나는 아재개그를 변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아재개그가 그래도 개그인지라 아주 가끔씩은 재미를 선사할 때도 있는 데다가, 나를 포함한 아재는 악한 존재이기보다는 ‘약한 존재’로 측은지심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아재개그를 옹호하는 이유가 또 있다. 나는 아재개그를 어느 특정 성인 남성의 개별적 특징이 아니라,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나라의 사회적 특성이 빚어낸 현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재개그는 때때로 언어유희를 통해 사람들을 진짜 웃겨준다. 반전과 역설의 묘미를 보여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문제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줄 때가 있다. “난 걱정 안 해. 다 잘 안될 테니까”라는 말의 경우를 보자. 뭔가를 잘되게 하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부질없는 일이며, 욕심을 내려놓아 스스로를 성공의 강박에서 해방시켜준다. “익숙해지니까 익스큐즈해”라는 말장난은 우리 일상의 실상을 담고 있다. 우리 대부분이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쉽게 용서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람들의 관계를 넉넉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발화자가 먼저 망가지면서 상호 간에 긴장감을 완화시켜주고, 내면의 감정을 표출케 해주기 때문이다.

아재는 위악을 부릴 때조차 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가련한 존재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여유를 가져보지 못한 이들이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번 돈을 자신에게 투자할 여력도 없는 이들이다. 가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120%가 넘고, 가계소득의 80% 이상을 주거비와 교육비에 써야 하는 나라에서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중에 아내와 자식과 대화하면서 웃음 비슷한 소리라도 들으며 ‘사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라도 가져보려면,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젊은 시절 들어 알고 있는 우스갯소리이다. 언어유희는 그나마 하는 일이 말과 글을 주로 다루는 사람의 레퍼토리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비아냥과 조롱과 기만의 언어로 가득 찬 세상이다. 언어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을 실제 그리 대한다.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 워킹푸어, 하우스푸어라는 말 끝에 헬조선이라는 말은 그래서 등장했다. 이런 나라에서 아재개그는 삶의 처연함을 잠시나마 잊기 위한 ‘일탈의 전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