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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아침을 열며] 개헌시대의 ‘제1장’을 넘기며 / 한정훈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30 4월 [IF Media] [아침을 열며] 개헌시대의 ‘제1장’을 넘기며 / 한정훈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아침을 열며] 개헌시대의 ‘제1장’을 넘기며

출처 : 한국일보, 사진출처: 한국여성단체연합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뜨거운 악수는 이 시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국민 다수가 염원하는 통일을 위한 새 장을 개척한 장면이었고, 많은 이들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순간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기대 이상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남북 화해 분위기와는 별도로 또 하나의 시대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은 좌초될 위기에 놓여있다. 헌법 개정이라는 국민적 요구가 여당과 야당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6월 지방선거와 개헌을 동시에 실시한다는 현 정부의 방침이 무산되면서 개헌은 이제 동력을 잃은 것으로 평가된다. 여야 정당들 역시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수립에 열중할 뿐 개헌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이루어졌던 개헌을 위한 논의와 노력이 무색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일차적 책임은 국회에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국회의 직무유기다. 현재 국회는 국민투표법의 위헌 조항에 대한 개정 시한을 2년 이상 넘긴 상태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국회는 개헌에 필요한 제도도 정비하지 않은 채 개헌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더구나 드루킹 댓글 추천 조작 사건으로 촉발된 여야의 정쟁은 국민투표법 개정에 대한 요구에는 귀를 열지 않았다. 민생법안 처리보다 정쟁이 우선이었던 구태가 개헌이라는 중차대한 이슈를 두고 재현된 것이다.

국회의 책임은 개헌안 마련 과정에서 보인 소극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민 의사를 대변해야 할 국회는 개헌과정에서 결국 어떠한 대안도 마련하지 않았다. 여당은 정부안을 찬성하는데 급급했다. 국회 헌법개정특위 활동을 통해 드러난 여당의 입장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의 정부 자문안과 동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안 홍보에 스스로를 제약한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정부의 개헌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만 늘어놓았지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한 정당이 없다. 국민적 선호가 갈리는 정부 유형에 대한 원론적 주장만을 되풀이했을 뿐 구체적인 대안은 없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 난무한 것이다.

정부도 개헌에 적극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고, 그에 따라 정부 개헌안도 마련했다. 그러나 만일 정부가 개헌에 적극적이었다면, 이 과정은 여야의 의견을 묻고 동의를 구하면서 진행되었을 것 같다. 대통령 역시 마련된 개헌안을 가지고 여야 리더들 및 다수 국회의원들과 적극적이고 개별적으로 소통하였을 것 같다. 정부 개헌안의 국회 통과를 염두에 두었다면 당연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 소통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내 할 일은 했으니 이제 나머지는 국회 책임이다는 식의 접근에 만족한 것 같다. 시대적 사명으로 간주한 개헌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에는 과도하게 투쟁적이며 일방적이었다.

정치권에서 열기가 식었다고 개헌 논의의 불씨마저 꺼진 것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 각각의 논의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두 가지 국민적 합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기본권 조항을 개정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조항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 인식과 합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개헌의 필연성에 대한 시대적 인식이며 합의이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개헌 논의를 재점화할 수 있는 불씨이다. 아마도 개헌이라는 긴 노정을 포괄하는 개헌시대라는 것이 있다면, 현재는 제1장 정도를 넘기는 순간일 것 같다. 정부와 국회 누구도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지난 과오를 심각하게 반성함으로써 더 진전된 개헌 논의의 다음 장을 기대한다.

한정훈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