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5월 [IF Media] 야권 혁신, ‘새 인물’부터 찾아라 /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호남 민심이 새정치연합에 요구하는 것 세 가지]
출처: 프레시안
작년 지방선거 야당의 패배, 답이 나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있었던 작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은 왜 패배했을까요? 여당은 어떻게 이긴 것일까요? 이를 분석한 논문이 최근 <한국정치학회보>에 실렸습니다. 원인은 다양합니다만 또한 한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선 투표자들은 세월호 침몰의 원인에 대해 정부와 여당에게 일방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의 원인으로 적폐를 논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투표 선택에서 세월호의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 유권자 중 60%가 기존에 이미 지지하고 있던 정당을 더 강하게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세월호 사고 이후 선거 판세가 흔들린 것이 아니라, 세월호 사고 이전의 선거 구도가 더욱 고착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선거 구도 고착화의 원인은 야당의 유권자 동원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은 사고 이후의 대응에서 비단 여당뿐 아니라 야당이 어떻게 하는지도 투표의 척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야당에 대한 지지도 함께 철회했습니다. 이 논문은 이러한 경향이 특히 경기도와 인천에서 두드러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즉,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나타난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 때문에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 해당 지역의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뜻입니다.
논문에 실리지 않은 또 다른 한 원인은 새누리당과 정부가 판세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고, 대단히 적절하게 그에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청와대는 국민들이 사고의 책임을 현 정부에게 묻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하고 ‘과거’에 그 책임을 돌렸습니다. 새누리당은 선거 구도가 고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읍소전략으로 지지표의 이탈을 방지하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선거 막판 전국을 수놓은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십시오”라는 현수막은 시의적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이 결론에서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하나의 사실은,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야권을 결집할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는 데에 패배의 원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보수 우위의 구조 속에서 여당을 이기려면, 보수 유권자 중에서 중도개혁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이탈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 이제 질문이 나왔으니, 답을 해 볼 차례입니다
당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혁신위원장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임명되었습니다. 김상곤은 그러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입니까?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은 무상급식이라는 아젠다를 성공시키고, 교육 이슈에 관한 한 경기도의 중도적 유권자를 품어 안은 적이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상곤 도지사 후보는 패배했습니다. 그에게는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정부와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어 낼만한 리더십이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어떻습니까? 문 대표는 올해 초 당 대표가 되면서 약 3개월 가량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던대로 그의 지지율은 확장성에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4.30 재보선 패배로 인해, 강한 결집력을 가진 소수가 선호하는 후보라는 한계를 이번에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번 재보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치러진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 대표에게는 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를 이끌어낼 리더십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원순 시장에게 이러한 리더십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박 시장에게 그러한 잠재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이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첫 선거는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거부로 인한 주민투표 결과로 촉발되었기 때문에, 이 선거에서 박 시장이 새롭게 던진 메시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박 시장의 급속한 지지율 상승은 상당 부분 안철수의 양보로 얻어진 결과였습니다. 박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위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이미 새정치민주연합에 유리한 판세가 있었다가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박 시장이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중도층을 견인하는 리더십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물론 본인의 능력으로 재선을 이미 확보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다수의 새정치민주연합 구청장이 당선된 것으로 볼 때, 지난 지방선거는 박 시장의 개인적 리더십이 아니라 서울 유권자들의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지배적 변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4.30 재보선 직후, 위기에 처한 문재인 대표에게 사실상 원내대표 임명 권한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해 망신을 산 안철수 전 대표는 어떻습니까? 최근 친노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 계파 수장들끼리 공천권 나눠갖기를 제안한 김한길 전 대표는 어떻습니까? 아, 이 두 사람은 무엇보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의 대표들이었군요. 더는 할 말이 없겠습니다.
혁신위원회는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선거를 승리로 이끌만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마지막 희망은 혁신위원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혁신위원회는 당의 화합이 아니라 분열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이 내분에 빠진 이유는 내년 총선 공천권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공천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김상곤은 현재 어느 현역 의원에게도 “당신 그만 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의원이 그 말에 콧방귀라도 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혁신위원장의 ‘전권’ 범위에 대해서도 현역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내달 초로 예정된 의원 워크샵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反) 문재인 계파는 이 문제를 필두로 혁신위 체제를 흔들 것이고, 김상곤 위원장의 전권은 형식적인 것으로 대폭 축소되거나, 혹은 사퇴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을 제 3자가 할 수 있을리 만무합니다. 공천심사위원장 종종 당 대표로부터 독립적인 인사가 임명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 대표가 충분한 권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공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천의 결과에 왈가왈부 할 겨를 없이 곧바로 당 대표가 복귀해서 선발된 후보들과 함께 선거를 치릅니다.
이번의 경우는 세 가지가 다릅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공천심사위원장과 같은 절대권한을 애초에 누리지 못합니다. 둘째로, 혁신위가 내 놓는 안에 대해서 총선 전까지 이를 놓고 격론과 분란을 벌일 시간이 많습니다. 셋째로, 최근 최고위원회 파동 등 당 대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권한이 양도되었는데, 혁신위 임기 종료 이후에는 문 대표가 다시 복귀해서 제안된 청사진을 실제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될까요? 혁신위가 잘 되기 위해서 모두가 서로 기득권을 내려놓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선후보는 대선 출마를, 계파 수장들은 공천권을, 현역 의원들은 재출마를 포기할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단 한명도 말입니다. 그런데 말로는 다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내놓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혁신위가 제한적인 권한에 만족하고 형식적인 당 개혁 노선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혁신위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은 죽을 것입니다. 혁신위가 말 그대로 공천권에 준하는 전권을 요구하고 당의 주류 계파와 현역의원들과 맞선다면, 혁신위는 무산될 것입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구질서의 마지막 모습은 새질서의 여명
알렉시스 드 토크빌과 칼 마르크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상가들이었지만, 그들의 역사인식에서 놀랍도록 일치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구체제와 과거의 생산양식, 그에 기반한 정치구조가 하나의 변화에 의해 일소되고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중첩된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어네스트 블로흐는 이러한 현상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재의 야권을 보면 이러한 이론들이 곧잘 들어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야권에서는 아직 구질서가 아직 견고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모습이 가시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질서가 보이는 양상의 저급함과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노골적이어서 곧 새로운 질서가 출현할 것 같다는 반가움이 들기도 합니다. 2002년 민주당이 해체될 때 보였던 당내 갈등의 양상이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최고위원회에서 말로 재현되고 거기에 노래까지 곁들여 졌을 때, 실은 안타까움보다는 기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현재 당이 운영되는 모습은 분명히 그러한 변화를 가속화 하는 듯 보입니다.
새로운 질서는 새로운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얼마 전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일자리를 찾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직 20대라면 누군가를 따르세요. 가능하면 중소기업에서 일해보세요, 대기업은 프로세스를 배우기엔 좋지만 중소기업에서는 꿈과 열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30대라면 명확하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해 일하세요.” 젊은이들에게 참 좋은 충고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들은 우리 정치인들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40대라면 본인이 잘하는 일에 전념하세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니까요. 50대라면, 젊은 사람들을 밀어주세요.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의 실력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의지하고 투자해서 잘 키워내세요. 60대 이상이라면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세요. 기회를 찾기엔 조금 늦었으니까요.”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중국의 세대교체는 명확합니다. 중국 공산당 규약에 따르면,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과 부총리급 이상의 고위관료는 70세 이상일 경우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지도부가 교체됩니다.
사실상 선거가 없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집권세력이 쉽게 정체될 수 있고 독재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5월에 선거가 있었던 영국은 어떨까요? 이번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과반을 넘겨 승리하고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약진하는 가운데 노동당이 패배했습니다. 노동당 당수 에드워드 밀리반드는 선거 결과의 책임이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면서 선거 직후 사임했습니다. 그는 38살에 당수가 되어 43살에 당수에서 물러났습니다.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카메론 수상은 41살에 당수가 되었고 아직도 40대입니다. 이번에 파란을 일으킨 스코틀랜드 민족당 당수는 44살 여성입니다. 그미는 노동당 선거본부장의 지역구에 20살짜리 여대생을 공천해 당선시켰습니다. 영국 의회 사상 최연소 의원입니다. 영국의 정치가 한국보다 더 나은지는 몰라도 훨씬 파릇파릇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을 보더라도 공화당의 오랜 집권 후 민주당에게 승리를 안긴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역시 정치 신예들이 등장했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모두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을 때 유권자들은 설득당했습니다. 단순히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야 말로 상대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지금 야권의 지도부에서 나이는 많지만 마음과 생각은 젊은 사람이 있는지 자문해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비전에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아, 한말씀 빠뜨렸습니다. 이 구질서의 야권의 지도부에는 당연히 정의당과 국민모임이 포함됩니다. 보수든 진보든 고인 물에선 물고기가 살기 어렵습니다. 십수년 간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에 국민들이 식상해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