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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역행하는 광복절 경축사 /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6 8월 [IF Media] 역행하는 광복절 경축사 /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역행하는 광복절 경축사]

출처: 한겨레

 

어두워져야 별을 볼 수 있다고 누가 말했나? 광복 70주년을 보내며 가슴이 아팠다. 가히 ‘친일파들의 전성시대’다. 유난히 해방의 의미를 부정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막말이 난무했다. 최인훈의 소설 <총독의 소리>에 나온 “해방된 노예의 꿈은 노예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역설적 문장을 실제로 듣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가. 연일 최악의 남북관계를 갱신하는 분단의 현실은 또 어떤가?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비무장지대에서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들으며 ‘희망이 거세된 정치’의 민낯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희망의 말’이다.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찰을 담는다. 국정 전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날이지만, 그중에서도 분단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남북 자유왕래’를 제안하면서 휴전선을 열자고 북한에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철의 실크로드와 한반도 시대’를 제안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4년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노태우 정부는 이후 남북관계의 장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고 ‘평화회랑’을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도적 구실을 했다.

대통령의 말은 사전 준비부터 사후 이행까지 제안과 토론, 변경과 확정의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만들어진다. 경축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관료제 내의 민주주의 수준을 반영한다. 실현 가능성을 중시하는 직업공무원과 비전을 제시하고 싶은 정치인 대통령 사이에 밀고 당기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사전 준비 과정에서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공유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행계획으로 연결된다. 그것이 정상적인 정부에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광복 70주년의 경축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주어가 사라진 정책을 대면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북한이 대화하자고 하면 대화하고 싸우자고 하면 싸우겠다는 것이 어떻게 정책인가? 지금까지 한반도 질서를 북한이 결정한 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내가 필요하다면 나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이제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상대가 호응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그리고 다른 기회도 적지 않은데 광복절 경축사마저 국내정치적으로 허비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청와대와 해당 부처 사이에 조율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비무장지대에 평화생태공원을 만드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대통령은 말하는데, 국방부는 불을 질러 생태를 훼손하고 평화를 내쫓고 확성기 방송을 하겠다고 한다. 북한에 얼마나 타격을 줄지 모르겠다. 범죄에 대한 처벌에도 문명의 수준이 있다. 문명국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고 절실한 이유는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해결 능력이다. 바로 며칠 전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부 장관의 제안을 접수조차 거부한 북한을 상대로 대통령이 반복 제안했다. 거부 의사를 확인한 후의 제안을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본 적이 있는가? 부끄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광복 70주년에 여기저기 나부끼는 희망의 말들은 너무 상투적이다. 멋진 말들로 연결되어 있으나 서로 상충하고 구체성이 없다. 말이 신뢰를 잃었고 정치는 타락했다. 한 가지만 묻자. 70년 전 그날 우리 선배들이 상상했던 ‘독립국가’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어두워질 만큼 어두워졌는데도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는다.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