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3월 [IF Media] 우유니 소금사막과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우유니 소금사막과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
출처 : 뉴스토마토
지구 밖 외계의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몸으로 느끼는 공기와 호흡도, 밤하늘의 별도, 지구 같지 않은 체험을 하고 싶을 때 어디로 가면 될까. 우유니 소금사막(Salar de Uyuni·이하 우유니)이 떠오른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곳은 20~30년 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인간의 탐욕스러운 리튬 개발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중동의 폐유전 지역이나 을씨년스럽고 폐허가 된 탄광촌의 살벌한 광경을 답습할 수도 있다. 볼리비아는 16세기 스페인 제국에 은광을 약탈당했고 20세기 초입부터는 주석을 본격적으로 생산, 1·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물자의 원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제 다국적 자본은 볼리비아에서 은광과 주석에 이어 리튬의 난개발을 노린다. 우유니 아래에 있는 소금물은 리튬의 보고다. 이명박정부도 약탈의 대열에 참여하겠다며 집권 5년 내내 볼리비아에 퍼주기 외교를 했지만 헛물만 들이켰다. 지금 볼리비아 우유니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겨냥한 자원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유니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글과 사진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수도인 라 파즈(La Paz) 등 대도시에서 우유니까지 가는 전세 비행기가 가끔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수크레(Sucre), 코차밤바(Cochabamba) 등 비행장이 있는 도시에서 많게는 10시간 정도 택시나 버스를 타고 우유니까지 이동한다. 차량으로 해발 3700m 정도에 위치한 우유니로 이동하면서 고산지대 기후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해발 1000m 미만 지역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지대에서 숨 쉬는 것부터 색다른 여행을 체험하게 된다. 고산병의 초기 증세인 어지러움이 찾아오면 코카차를 마시거나 고산병 알약을 먹어야 한다. 고산지대의 희박한 산소에 적응하는 것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이곳에서 6개월 정도 살면 인간의 몸이 고산지대에 적응해 체내에서 헤모글로빈이 증가하고, 호흡 또한 쉬워진다. 볼리비아 현지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축구까지 쉽게 해낸다. 월드컵 예선전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가 약체 볼리비아에 종종 어이없이 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변의 승부가 일어나는 곳은 예외 없이 해발 4000m에 있는 라 파즈 축구장이다. 저지대에 익숙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에서 뛰다가 구토를 하며 괴로워한다.
공기에 서서히 적응해가는 동안 눈앞에서는 우유니 소금밭의 장관이 펼쳐진다. 해발 3700m에는 거제도보다 큰, 얼음처럼 생긴 소금이 호수를 덮고 있다. 선글라스가 필수일 만큼 따가운 태양의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소금사막을 볼리비아 현지인이 끄는 지프를 타고 쉼 없이 질주한다. 소금사막 한가운데 있는 ‘물고기 섬(Isla del Pescado)’까지 새하얀 소금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물고기 섬에는 멕시코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키 큰 선인장들이 즐비하다. 처음 우유니를 찾는 사람들은 이 정도가 이국 여행의 절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구 밖의 느낌을 주는 우유니의 묘미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차량이 소금밭을 벗어나 몇 시간 동안 메마른 초원을 지나면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광석을 한껏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들이 겹겹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 호수들이 아름다운 전경을 드러낸다. 하얀 호수(Laguna blaca), 푸른 호수(Laguna verde), 콜로라다 호수(Laguna colorada) 등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그 자태를 뽐낸다. 호수들 곳곳에는 선홍색 홍학(Flamencos)들이 한가롭게 먹이를 쪼고 있다. 호수의 빛깔이 물속 뻘밭에 스민 광물들 때문에 파란색, 주홍색 등 다양한 색채를 드러낸다. 홍학들은 조개나 물고기가 아닌 이 광물들을 쪼아 먹는다. 홍학이 선홍색의 자태를 띄는 것도 조개가 아닌 광물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광물이 풍부한 지역 특성상 여행객들은 온천에서 색다른 경험을 만끽하고, 여전히 연기를 내뿜는 해발 5000m의 화산지대를 찾을 수도 있다. 절정의 풍광은 화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바위들이다. 돌나무(Arbol de Piedra) 등 화성에서 옮겨놓은 것 같은 바위들에서 여행객은 잠시 지구를 탈출하는 착각에 빠져든다. 화성을 걷고 있는 환상에 젖어 들 수도 있다.
우유니의 압권은 단연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과 사막 한가운데서 보는 일출, 일몰이다. 교통이 불편한 까닭에 이곳을 둘러보는 데는 최소 이틀 이상 걸린다. 적어도 하룻밤은 우유니의 시골 여관에서 잠을 자야 한다. 남반구에서도 오염이 적다고 알려진 볼리비아 밤하늘은 어디에서나 말똥만큼 굵은 별들을 쏟아낸다. 그중에서도 우유니 밤하늘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별들의 향연이다. 하늘에 새겨진 별 밤은 일생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림 한 폭을 선사한다. 아스라한 밤하늘에 별들이 성기어 갈 때 칠레 아타카마 사막 근처에서 보는 일출은 또 한 번 화성 같은 외계적인 경험을 우리 마음속에 아로새겨 놓는다. 거꾸로 일몰 역시 또 다른 운치를 불러낸다.
우유니에서의 2박3일은 지구의 신비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 건장한 어른 키보다 더 큰 두께의 소금층으로 형성된 어마어마한 소금사막의 신비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먼 옛날 고생대나 중생대 즈음에 바다가 융기해서 그대로 평지로 굳어졌고, 그 바다의 소금이 우유니를 형성했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물고기 섬(Isla del pescado)’은 우유니 소금사막 한가운데 있다. 키가 큰 멕시코 선인장이 장관이지만 강력한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려면 여행객들에게 선글라스는 필수다. 사진/임채원 선임연구원
냉정한 현실은 이곳마저 노린다. 화성에서나 있을 법한 아름다운 풍광이 인간의 탐욕과 약탈에 노출되고 있다. 우유니의 두꺼운 소금층 아래에는 태곳적부터 품고 있는 염분 짙은 바닷물이 있다. 바닷물 속에는 세상 그 어디보다 풍부한 리튬이 저장돼 있다. 리튬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원료다. 앞으로 2030년까지 독일 등 생태 선진국들은 도로에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솔린이나 경유차 대신 전기차가 상용화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리튬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우유니 소금층 아래 염수에는 리튬을 세계의 다국적기업들이 노리는 이유다.
볼리비아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자원약탈의 역사를 반복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가 1540년대 포토시(Potoci)의 은광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1492년 지리상의 발견이 시작된 후 대항해시대를 촉진시킨 기폭제가 됐다. 세계는 ‘은 본위제’로 뒤덮였고, 스페인은 포토시에서 생산된 은을 대서양과 태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도자기와 비단, 생사 등 값비싼 수입품을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혜택은 스페인 제국이 독점했지만, 볼리비아는 끊임없이 은을 수탈당했다.
두 번째 약탈은 주석이 군수산업에 대량으로 사용되면서 진행됐다. 은과 주석, 아연, 구리 등은 같은 광맥에서 추출되지만 주석은 볼리비아에서 흔한 광물이었고, 오랫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은광의 매장량이 고갈될 무렵 볼리비아 오루로 출신의 파티뇨(Pati?o)가 주석의 가치를 깨닫고 개발을 시작했다. 그는 이 분야를 특화해서 캐나다와 말레이시아 주석까지 개발, 20세기 중반에는 세계 10대 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그가 말년을 보내려고 했던 코차밤바에는 포르탈레스 궁(Portales Palace)이 남아 있다. 그러나 주석 생산의 수혜는 볼리비아 국부로 쌓이지 않고 유럽으로 유출됐다.
두 차례의 악몽을 경험한 볼리비아는 마지막 국운 상승의 기회를 활용하려고 벼른다. 은광 시대, 주석 시대는 제국주의에 약탈당하는 수동적인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리튬을 통해 국부를 제대로 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실 리튬 개발이라는 것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유니 소금사막 밑바닥에 있는 염수를 끌어올려 태양광이 내리쬐는 소금밭에 그대로 염전처럼 말려서 물을 증발시키고 남은 재료들을 끌어모으면 리튬 원자재가 된다. 염수를 퍼다가 햇볕에 말려서 남는 화합물들을 모으면 그 자체가 리튬 시대의 국부가 되는 셈이다. 수세기 동안 자원을 약탈당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볼리비아 정부는 이번만큼은 단순한 원료 공급지가 아니라 전기차 생산공장까지 다국적기업과 합자회사 형태로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리튬 개발이 본격화되면 우유니 소금사막이 지금 같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소금층 아래 염수를 퍼내는 작업이 본격화될수록 염수를 퍼 올린 만큼 공간이 생기고, 어느 시점에 가서는 소금층이 더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게 뻔하다. 지금의 개발방식을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세계 청년들이 가보고 싶은 로망 중 하나인 우유니가 더 이상 지금 형태로 유지되기 어렵다.
대안은 없을까. 의외로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리튬이 매장된 곳은 볼리비아, 칠레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쪽 국경을 연결하는 삼각벨트다.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의 리튬은 양이 적은 대신 질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볼리비아는 질보다는 양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우유니 소금사막 바로 옆에는 코이파사(Coipasa) 호수가 있다. 이곳은 소금호수가 아니라 수면이 드러나는 일반 호수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도 역시 리튬을 가득 머금고 있다. 우유니보다 함량은 다소 적지만 개발과 보존을 적절히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국제환경기구가 볼리비아에 일방적으로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금지하라고 강요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대안으로 우유니는 보존하면서 코이파사 등 다른 호수에서 리튬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국제적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 이미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맞추면서 국제협력을 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과 보존을 병행하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약탈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나라가 나타났다. 2008년 등장해 리튬 자원외교로 볼리비아를 들쑤셔놓은 이명박정부다. 기존의 자원외교 문법과 관행을 송두리째 무시한 채 일방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리튬 합자 개발을 미끼로 볼리비아 정부에 노골적으로 접근했다. 16세기부터 500년 동안 자원 수탈을 겪은 볼리비아 입장에서 독자적인 자원전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이명박정부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우리 정부는 공짜나 다름없는 개발차관(EDCF)과 해외원조(ODA) 자금을 무모하게 투입하고 ‘대통령의 형님’은 수시로 이 나라를 오갔다.
2010년 8월26일 이명박 대통령과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볼리비아 리튬 자원개발과 산업화 연구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데 합의했다. 사진/뉴시스
미국 언론은 우리나라의 리튬 자원외교를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고 있다’며 우려와 함께 비웃었다. 무엇보다 이명박정부는 상대 국가를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천박하며 초보적인 자원외교 수법을 구사해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했다. 그 결과 개발차관이나 해외원조의 순수한 목적은 사라지고, 한국은 국제적인 호구로 전락했다. 이명박정부의 볼리비아 자원외교는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했다. 다음 정부는 천박한 자원외교가 아니라 우유니 소금사막의 생태적 보존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국제적 협력을 주도하는 공유가치 성장에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이 한국 자원외교의 미래다.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