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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원전 공사 중단과 공론화위의 함정 / 한정훈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4 7월 [IF Media] 원전 공사 중단과 공론화위의 함정 / 한정훈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원전 공사 중단과 공론화위의 함정

출처 : 문화일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신규 원전(原電)을 전면 중단하고 40년 후 ‘원전 제로(0)’ 국가를 위한 탈(脫)원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달 19일에는 고리원전 1호기를 영구 정지시켰으며, 27일에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 공사를 일시중단하고 3개월 동안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 문제와 관련된 대통령의 공약(公約)을 이행하겠다는 이 같은 정부의 조치가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내몰고 있다.

선출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약속한 정책을 이행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대강 수질 개선 사업 및 한·미 FTA 체결 등과 관련된 갈등도 대통령 공약 사항을 두고 분출됐다. 에너지·환경·대외정책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두고 야기되는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통령 공약 사안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갈등이 심각한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것은 정부가 대통령 공약을 이행한다는 목적에 매몰돼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신규 원전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화를 위해 내린 일시적인 조치라는 정부 측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우선, 3개월의 짧은 공론화 기간은 정부가 그동안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논쟁의 심각성을 무시한 조치로 간주되기 쉽다. 또한, 미리 원전 건설을 중단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신고리 5·6호기의 원자로 설치 착수 시점은 내년 12월 이후로 예정돼 있다. 따라서 이번 건설 중단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의 임시변통적인 설명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정부의 노력 부재를 드러낼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데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공론화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시기, 원전 건설 중단에 따른 사회적 손실 및 정부 결정과 관련된 절차적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는 대통령의 공약을 정부의 일방적 결정만으로는 이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에너지 대계를 수립하기 위해 이미 분출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특히 두 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우리 사회 내 원전 문제와 관련해 안철수·유승민·심상정 등 지난 대선의 주요 후보가 현 정부의 정책과 유사한 공약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후보 간 차이는 있으나 신규 원전 건설 금지부터 원전의 점진적 축소에 이르기까지 원전을 일부 또는 전부 대체하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현재 각 정당이 앞다퉈 현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대선 공약을 고려할 때 새로운 에너지 정책 수립을 위한 협조와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 있다.

다음으로,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하나의 기구에 결정 권한이 집중된 구조를 버리고, 이해집단별 복수의 논의 기구를 마련하는 방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복수의 안(案)을 두고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복수의 논의 기구는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집단이 극단적인 대결 국면을 조장하는 폐해를 방지할 수 있다.

국가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지금의 논의가 상황에 따라 번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절차와 내용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진행하기 바란다.

한정훈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