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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일에 치인 한국인,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01 6월 [IF Media] 일에 치인 한국인,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일에 치인 한국인,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출처: 한겨레

 

앞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네 삶의 지표들은 회복되고 있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더 나은 정책’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2011년부터 매년 5월 ‘더 나은 삶 지수’(The Better Life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도 3일부터 이틀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각료회의를 앞두고 영역별 점수와 국가 순위가 최근 공개됐다.

이 지수는 대표적인 거시경제 지표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경제적 요인만을 반영하고 정치사회적 요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해 ‘경제적 실적과 사회적 진보의 측정에 관한 위원회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문제의 초점은 ‘국내총생산은 증가하는데 왜 사람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는가’라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경제적 지표의 측정 방식이 우리의 신념과 상상력을 결정한다. 사회적 진보를 평가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지수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좀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진보와 행복을 측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소득 이외에 10개의 다층적 영역을 포함한 ‘더 나은 삶 지수’가 개발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더 나은 삶 지수’는 어떨까? 올해도 예년과 비슷하게 교육·안전 등의 분야에서 상위권에 오른 반면 공동체, 건강, 일과 삶의 균형 등에선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세부 항목을 보면, 교육 분야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자의 학업 능력에서 1위를, 일과 삶의 균형 분야 중 장기간 근로에서 33위를 나타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시간의 대부분을 학업과 노동으로 보내고 있음을 방증한다. 반면 개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공동체)은 꼴찌인 36위다. 장시간 학업과 노동에 시달리는 반면 공동체로부터는 최악의 보호를 받는 국가임을 이 지수는 보여주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나타낸 것은 고등학교 졸업자의 읽기, 수학·과학의 학업 성취도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 교육을 포함한 교육 성취 분야에서는 16위로 급격히 순위가 하락한다.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세계 1위 수준을 유지하지만, 대학 등 취업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고등교육에서는 중간 정도의 순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대학 교육의 질이 한국 교육 문제에서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임을 보여주는 성적표다.

공동체의 붕괴는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회적 네트워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응답이 73%로, 조사 대상국 평균인 88%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학력자들은 83%가 공동체의 보호를 느끼는 반면, 의무교육만을 받은 저학력자들은 53%만이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건강 분야도 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세부 지표 중 기대수명은 81살로 14위에 해당하지만, ‘당신은 건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자기진단 건강’은 35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좋다’ 또는 ‘아주 좋다’는 긍정적인 응답은 35%로 오이시디 평균인 68%에 크게 못 미쳤다. 문화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건강하다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장기간 노동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붕괴(33위)된 것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은 삶 지수’는 각 나라의 제도와 현실을 나타내는 데 일정한 한계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게 주거 분야다. 세부 지표인 ‘주거 관련 지출’에서 우리나라는 2위(낮은 순)를 나타냈다. 주거 관련 지출에는 임대료, 가스, 전기, 물, 가구, 수리비 등이 포함되는데, 전세금 등 우리나라 특유의 주거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자가주택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계대출을 통해 금융 비용을 지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주거 관련 비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월세 방식의 임대료만 반영하는 탓에 주거 비용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소득 분야의 가구당 금융자산에는 임대 수입 등 부동산 수입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자리 분야에서도 16위를 나타냈는데, 사람들이 느끼는 고용 불안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세부 항목인 직업 안정성에서 4위를, 장기 실업률에서는 1위를 나타냈다. 직업 안정성은 2013년에 지표가 변경되면서 최하위권인 35위에서 2014년 4위로 수직상승해 지수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11개 분야별 지수들은 ‘삶의 만족도’라는 주관적 평가에 포괄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건강, 교육, 소득, 개인적 충만감, 사회적 상태 등의 체감도를 반영하는 지수다. 삶의 만족도는 지난해 25위에서 올해는 29위로 더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특징은 상위권 지수와 하위권 지수가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분야별 점수가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는 다른 국가와 대조적이다. 교육·시민참여·안전 등 몇몇 분야는 수위권에 있는 반면, 사회적 요인을 반영하는 공동체, 건강, 일과 삶의 균형, 환경, 삶의 만족도 등에서는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득 불평등과 같은 경제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안정감을 주는 공동체의 복원이 절실하며 일과 삶의 균형, 환경, 삶의 만족도 등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분야에 정책의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