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2월 [IF Media]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막대한 국가배상금 지급, 구로농지사건 /정창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막대한 국가배상금 지급, 구로농지사건
출처 : 주간경향
구로동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피해자인 국민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연된 재판으로 인한 세금 낭비는 온국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2018년 예산안의 국회 의결은 원칙적으로 12월 2일이다. 헌법상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 예결위와 여야 지도부는 국회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앞두고 현재 막판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예산심의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 11월 30일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윤후덕 의원 사무실에 법무부 관계자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예산 증액을 급히 요청한다는 것이다. 바로 전날 구로농지사건의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역대 최대 배상사건
지금 구로디지털단지는 구로공단 지역이었다. 1950년께 이 땅은 농민들에게 분배되었다. 6·25 즉 한국전쟁 직전 있었던 농지개혁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960년대 이 땅을 구로공단으로 개발하면서 정부에서 소유권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2008년 과거사위원회는 ‘국가의 소유권 포기 강요행위’를 인정했다.
당시 농민들의 후손들인 상속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토지소유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진행된 재판이 바로 전날 11월 29일 끝난 것이다. 재판 결과 6건에 대해서 국가는 이자를 포함하여 3000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더군다나 현재 진행 중인 26건도 같은 재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여 약 1조원 정도를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재 2018년 예산안에서 국가배상금으로 편성돼 있는 예산은 1000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배상을 미룰 경우 지연이자가 추가되기 때문에 예산 증액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권성동 법사위원장도 “이번에 국가가 패소했고 내년에도 패소사건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며 “오늘 법사위원장 명의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2018년도 예산 1000억원을 증액해달라고 공문을 발송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십 년간 진행된 재판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 개월마다 법원에 가서 ‘소송 수행인 가운데 누가 사망했다’고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재판이 끝나는 순간 한 맺힌 눈물을 흘린 피해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대를 이어 진행된 재판에서 피해자의 직계자손마저도 살아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된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는 이런 판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1960년대의 얼룩진 과거사가 매듭지어지기까지 50년이 넘게 걸린 데에는 뒤늦은 진실 발견 외에도 첨예한 소송 대립이 한몫 했다. 국가는 상소를 거듭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구로 분배농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액을 낮추려 했다. 국가는 피해자들의 ‘권리찾기’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일에서 6개월이 지난 뒤에 이뤄졌기 때문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는 막대한 이자부담으로 돌아왔다.
‘국가배상금 지급’은 공무원의 불법행위나 공공영조물의 설치·관리상의 하자로 인한 국가의 손해(단, 특별회계·국방부 소관 제외)에 대하여 법원의 판결 또는 국가배상심의회의 결정에 따라 배상금 및 소송비용을 지급하는 사업으로, 2018년도 예산안은 1000억원으로 2017년도 본예산과 동일하게 편성되었다.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
최근 국가배상금 지급 실정을 보면, 예비비에서 상당 부분을 집행해 왔음을 알 수 있다. 2014년에는 당초 책정된 236억원보다 9배나 많은 1800억원을 예비비에서 끌어다 쓰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국가 배상사건 현황을 보면 2007년 179건에서 2016년 371건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처럼 국가배상금이 늘어날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담당부처와 기재부의 소극적 예산편성과 무리한 소송 대응으로 피해자의 고통만 늘고 지연이자 등 예산 손실만 커졌다. 국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2018년 예산안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9월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인 3억원 이상 고액 국가배상금 현황을 보면 구로농지사건 및 과거사 등 11건으로 원금 1500억원과 지연손해금 2500억원 등 총 4100억원에 달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샘이다. 따라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전예측이 어렵다는 법무부의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피해자인 국민의 고통과 함께 소중한 혈세를 낭비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형사보상 사업이 있다. ‘형사보상’은 법원의 무죄판결 또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받은 구속 피고인·피의자에게 형사보상금을 지급하고 무죄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이었던 자 또는 그 변호인이었던 자가 공판 준비 및 공판기일에 출석하는 데 소요된 경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8년도 예산안은 275억원으로 2017년도 본예산과 동일하게 편성되었다.
최근 들어 줄어들기는 했으나 형사보상에서도 당초 편성된 예산의 몇 배를 예비비로 끌어다 쓰기도 했다. 2014년에만 당초 140억원을 편성했다가 예비비로 741억원을 끌어다 썼다.
구로동 사건은 이 외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 논리로 진행되었던 폭력적인 강제수용과 책임지지 않으려는 행정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피해자인 국민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연된 재판으로 인한 세금 낭비는 온국민을 피해자로 만든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것처럼 피해는 국민이 보고 변호사나 기업, 공무원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인가.
적폐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 불필요한 악이 있었다면 지금에라도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관료적인 귀차니즘이 문제를 더욱 키우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소송 중 사실상 결론이 난 사건은 빨리 해결하는 것이 피해자인 국민의 고통을 줄이고 세금을 아끼는 것이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생각은 혹시 내가 있는 동안만 피해보자는 발상은 아닐까. 새 정부만큼은 달라야 한다.
정창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