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7월 [IF Media]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업무량과 관련 없는 ‘공무원 증가의 법칙’/정창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업무량과 관련 없는 ‘공무원 증가의 법칙’
출처 : 주간경향
한국의 2017년 예산 신규편성은 1.7%에 불과하다. 올해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매년 1% 남짓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예산이 두 배로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화는 없고 조직만 증대되었다는 증표가 된다.
안전사고가 생기면 안전 관련 공무원의 수가 늘어나고, 건축물 붕괴사고가 터지면 감독 관련 공무원의 수가 늘어난다. ‘공무원의수는 업무량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파킨슨(Parkinson)이라는 학자의 주장이다.
이런 현상을 ‘파킨슨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조직은 이런 관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가능한 한 부하직원을 늘리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공무원들이 가지는 이런 특성이 업무량에 상관없이 공무원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농어민 41% 줄고 관련 직원 68% 늘어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해군성을 든다. 1914년과 1928년을 비교해 보았다. 1914년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해로 영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국일 때이다. 1928년은 전쟁의 위험이 가장 적다고 판단되던 때이다. 1914년 영국 해군은 62척의 주력함에 14만6000명이 근무했고, 1928년은 20척의 주력함에 10만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해군의 관리직과 공무원은 5249명에서 8117명으로 64%가 증가했다. 특히 본청은 2배 가까이 늘었다.
또 하나는 영국 식민성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상징하듯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영국은 식민지성이 있다. 영국 식민지가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1935년 372명이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고 인도 등 대부분의 식민지가 독립한 1954년 식민지성의 규모는 1661명이 었다. 일의 대상인 식민지가 줄어들어도 그 부서는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결국 일의 대상은 줄어도 사람은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농림부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에 보도된 KDI 보고서에 따르면 농어민 수가 178만명(41%) 줄었는데 관련 공무원이나 준정부기관 임직원은 5만2000여명(68%) 증가했다고 한다. 10년 전에 농어민과 준공무원의 숫자가 57명당 1명이었으나 이제는 20명당 1명이라는 것이다. 예산은 17배가 증가했다.
그런데 이 통계는 1995년 기준이다. 22년이 지난 지금 농민은 또다시 절반으로 줄었다. 문제는 이후에는 이런 보고서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상상에 맡기겠다. 농업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일들이 있는데, 우선 농업이라는 말이 농촌이라는 말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농업기반공사가 농촌공사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을 ‘영역’으로 삼는 행자부가 반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지금 도시화율이 90%에 달하는데 도대체 농촌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농림부는 농업종사자의 분류를 330평의 농사를 짓거나 연간 120만원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기준을 크게 낮췄다. 텃밭 정도의 농사를 지어도 농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농민의 숫자를 지키고 싶은 농업 관련 공공부문 관료들의 이해와 농민의 범위를 넓혀 농지 거래를 좀 더 활성화시켜 부동산 부양을 하려는 정권의 이해가 맞물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충분히 살 만한 상황이다.
관료제의 본성 이해하고 변화 도모해야
예산에서도 파킨슨의 법칙이 있다. ‘점증주의 이론’이다. ‘키(Key)’라는 학자가 발견해낸 것이다. 미국 정부를 분석한 그는 미국 정부의 예산이 점증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미국 관료들은 이런 키의 주장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자신들은 매년 제로베이스에서 예산을 분석하고 편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키는 30여년의 조사 결과 거의 모든 부서의 사업들이 비슷한 추세로 증가했고, 줄어들거나 없어진 사업들은 매우 이례적인 일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해냈고 결국 관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2017년 예산 신규편성은 1.7%에 불과하다. 올해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매년 1% 남짓에 불과하다. 결국 99%는 하던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예산이 두 배로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화는 없고 조직만 증대되었다는 증표가 된다. 하지만 국민들도 국회도 공무원들도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참고로 키는 미국에서 점증주의 예산의 기준을 20%로 잡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 10%가 변화된다면 어찌 될까. 아마도 혁명적 상황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물론 예산을 빼앗기는 쪽이나 새로 확보하려는 쪽의 입장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왜 그들은 몰랐을까? 자기들의 일만 보는 것이다. 전체를 보는 사람은 결국 주인의식을 가진 국민일 수밖에 없다. 보수화되어서 1%의 변화도 크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후자이리라 생각된다. 현재 국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추경도 1만2000명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든다고 했지만 겨우 80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대부분의 사업이 예전에 하던 사업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 전에 논의가 있었던 상황에 비해 대폭 축소되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조직법도 대폭 후퇴했다. 폐지론까지 나오던 교육부나 행자부도 안심을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오히려 조직이 확대될 수도 있다고 한다. 관료들의 저항도 있지만 새로운 집권세력이 정치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결국 행정의 복잡성과 혼란만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조직과 예산의 확장은 관료제의 본성이다. 이를 인문학적으로 인정하고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국회도 국민도 정권도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에서 벗어나 큰 시야를 가지고 우리 정부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시해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여야가 아니라 관료제야, 그리고 우리의 무지와 착각이야.’
정창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