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11월 [IF Media]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재난 예방 없이 언제까지 복구만 할 것인가 /정창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재난 예방 없이 언제까지 복구만 할 것인가
출처 : 주간경향
재난안전 특별교부세는 재해복구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난 예방을 위한 예산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재해 목적 교부가 아닌 장관 인센티브 예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사태를 불러온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15일 포항에서도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각종 시설물의 내진 보강 문제가 관심을 받고 있다. 지자체들은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붓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지자체들은 자체 예산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재난안전특별교부세만 쳐다보고 있다.
재난 대비 못한 한국 사회
가장 민감한 지자체는 당연히 사고가 난 경북도일 것이다. 경북도가 경주 지진 이후 세운 2017년도 재난 대비 예산은 106억3800만원이다. 본예산에 79억4400만원을, 추경에 26억9400만원을 각각 세우고 집행했다. 내년 예산도 올해와 비슷하게 수립했다. 내년 본예산에 79억7000만원을 세웠고, 추경 때 재난안전특별교부세 등을 포함해 추가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문제는 이제 지진이 일상화되기 시작한 경북도의 공공시설물 내진율은 지난해 말 기준 36.3%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초·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평균 내진율이 고작 18.7%다. 관공서조차도 읍·면·동사무소 300여곳 상당수가 지진에 취약하거나 내진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심지어 지진이 발생하면 시민 안전을 위해 출동해야 하는 소방서 17곳 중에서도 7곳만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한다. 민간건축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경북도는 34% 정도만 지진에 견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지진 때 위험하다는 얘기다.
경북도는 경주 지진 이후 지진방재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우선 공공시설물 내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국비 확보 등 예산이 부족해 최근 목표를 45.2%로 낮췄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중앙정부도 지진 관련 2018년 예산에 5029억원을 세웠지만 턱없이 모자라기는 마찬가지다. 이 중 4330억원이 내진 보강 예산이지만 현재 내진율 43.7%에서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특히 올해 12월 말부터 내진설계 대상이 확대되면 대상 시설물은 더 늘어난다. 실제 정부의 내진설계 기준은 올해 2월 층수가 3층 이상에서 2층 이상으로 강화됐고, 다음달에는 면적이 500㎡ 이상에서 200㎡ 이상으로 강화된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들이 보유한 재난안전관리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재난 예방 예산, 없다
우리나라 예산에서 공공질서·안전 분야의 2018년도 예산안 규모는 18.9조원이다. 전년도 본예산 대비 0.8조원(4.2%) 증가했다. 이 중 재난관리 예산은 1조2000억원이다. 나머지는 경찰과 검찰, 법원 등 행정조직 예산이다. 재난관리 예산에서도 홍수 등에 대비한 재해위험 정비사업이 3743억원으로 가장 크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홍수를 가장 큰 재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재난안전 통신망 구축에 1218억원을 편성했다. 이번 재난안전 문자의 효과를 생각해보면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라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으로 판명났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 사업의 필요성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지자체들이 바라만 보고 있는 재난안전 특별교부세는 무엇인가. 정확히 말하면 행안부의 특별교부세와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이다. 특별교부세(금)는 내국세분 교부세(금)의 4%를 재원으로 주로 회계연도 중에 발생한 특별한 재정수요나 재정수입이 감소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재원이다. 국가시책사업, 지역교육현안수요, 재해대책수요로 구분하여 교부하고 있다. 둘을 합쳐 3조원 정도다. 그 중에서 재난 관련해서 3000억원 정도가 배정되어 있다.
문제는 이 돈이 재해복구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난 예방을 위한 예산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재해 목적 교부가 아닌 장관 인센티브 예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현재 재해복구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재해대책 특별교부금을 재해 예방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법률안을 발의(현재 5건 교문위 법안소위 계류 중)했지만 통과시킬 의지가 분명하지 않다. 오래된 교사 등은 지진이나 재해에도 취약한데, 안전예방 차원에서 예산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인센티브를 바라겠지만 재해 예방 용도로 특정해서 쓸 수 있도록 하여 특별교부금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시급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
연도별 집행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의 경우 재해대책 집행액은 566억2300만원(37.2%)이나 인센티브 지원액은 955억3600만원(62.8%)으로, 본래 목적인 재해대책보다는 인센티브 용도로 집행되는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데는 재해 미발생 시 잔액 소진을 위해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행안부의 지방교부세 중 재난안전관리특별교부세의 경우를 보면, 재해대책뿐만 아니라 재해 예방 용도로도 집행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어, 보다 넓은 범위에서 재난안전관리 예산으로 집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용내역을 보면 교육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이외에도 재해복구 국고채 부담액의 한도액이 1조3000억원이나, 목적예비비 1조8000억원의 일부를 활용할 수 있다.
특별한 사업으로는 KBS 지역(총)국 재난재해 자막속보시스템 개선사업(13억5000만원 순증)은 재난재해 긴급 자막 속보를 한국방송공사(KBS)의 13개 지역(총)국에 송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4년째 흑자인 KBS는 자체 재원으로 수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회에서는 매년 재해대책특별교부금을 재해복구에서 재해 예방으로 확대할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 돈을 지역의 특혜성 예산으로 주는 관행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행안부가 이야기하는 지자체의 재난관리기금도 문제가 있다. 2조5645억원이 모여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상당수의 지자체는 이미 통합관리기금이나 보전재원으로 돌려쓰고 있다. 감사원은 몇 년 전 한푼도 적립하지 않고 있는 인천시와 광주시에 대해 시정조처를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재난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그 예산은 복구에만 쓰여진다는 것이다. 예방을 하면 복구예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정창수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