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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주역으로 본 대통령실 권력의 계절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29 8월 [IF Media] 주역으로 본 대통령실 권력의 계절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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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대통령실 권력의 계절]

출처: 뉴스토마토

참 소란스러운 정권이다. 대통령 비서실은 행정부처와 달리 국정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민정수석의 거취가 모든 정치적 쟁점을 무력화시키는 블랙홀의 위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은 권력 누수를 두려워하는 걸까. 민정수석은 4년차 정부의 권력을 방패로 정말 자신의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권력에 대한 동아시아의 사유는 64개 경우의 수로 전형(prototype)을 만들어 놓은 주역(周易)에서 권력의 계절과 추이에 대한 일단을 찾을 수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 제도는 변화의 속도 덕분에 조선 500년 왕조와 거의 같은 흥망성쇠를 보이고 있다. 주역은 계절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권력에도 계절의 추이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주역 이론의 큰 줄기였던 전한(前漢) 시대의 경방(京房)은 권력의 계절 변화를 12벽괘설로 설명하고 있다. 이 벽괘설은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역학의 기초 중의 하나가 됐다.

경방의 벽괘설에 의하면 지금 4년째 대통령은 권력의 초겨울에 접어들었다. 권력의 계절로 본 대통령의 괘사는 권력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는다는 박괘(剝卦)다. 이 학설은 군주를 정점으로 권력지도에서 여당 지도부는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는 곤괘(困卦)와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정무직 공무원들은 그만 그쳐야 한다는 간괘(艮卦)를 권력의 추이에 따라 한묶음으로 엮었다. 같은 묶음 안에는 집권당의 다양한 정파들과 야당은 밝은 것이 상처입고 어렵다는 명이괘(明夷卦)가 있고,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직업공무원들은 허망할 것이 없다는 무망괘(无妄卦)도 이 초겨울의 권력 지형에서 자리잡고 있다.

주역의 벽괘설이 주는 통찰은 권력 스스로가 경계하고 자기 절제를 하라는 동아시아적 사유다. 권력의 핵심에 가까울수록 자신들은 계절 변화에 예외라고 생각한다. 뜨거운 여름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고 겨울을 힘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박괘는 모든 것이 생겨나면 크게 이뤄지고, 이뤄지면 소멸해간다는 것이며, 대통령이나 군주가 높다고 하지만 백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니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모두 끝난다는 의미다. 그리고 산이 무너짐은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아래가 무너지면 권력이 위태로워진다는 경계를 준다.

대통령을 만든 여당 지도부는 말을 하면 불신을 불러온다는 곤괘에 해당한다. 곤궁한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사사로운 지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명정대한 대인의 길이다. 권력의 힘이 빠져갈 때 사욕을 부리고 새로운 아젠다로 민심을 혼란하게 하기보다는, 조용하게 말없이 정권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가르침이다.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 등 정무직 관료들은 이제 그만 그친다는 간괘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때가 행하게 생겼으면 행하고, 그치게 생겼으면 그치는 것이 현명하고, 무엇보다 때를 잘 알아야 한다고 이 괘사는 지적하고 있다. 그칠 곳에 그쳐 있으라는 의미며, 독실하게 현재 하는 일만 하고 있어야 하며 생각이 위치나 분수를 넘어서지 않게 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반면 새로운 권력은 다른 곳에서 준비되고 있다. 여당의 다양한 정파와 야당은 밝은 것이 상하여 어렵고 괴롭지만 스스로를 맑게 하는 명이괘에 해당한다. 명이를 당한 대표적인 군주는 주 문왕(周 文王)이다. 그는 밝은 지혜와 두터운 덕을 감추고 ‘유리’라는 감옥에 7년을 갇혀 있었다. 문왕은 새로운 질서 수립이라는 꿈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밝음을 거두어 스스로 어둡게 했다. 지금이야 봉건제와 같은 역성혁명의 시기가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권력들은 여전히 새로운 권력의 싹들에게 서리를 내리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전히 눈여겨 볼 지점이다.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직업공무원은 권력의 계절과 무관하게 생동하는 무망괘에 해당된다. 권력의 추이는 겨울에 접어들고 있지만 무망은 만물이 막 태어나려는 찰나이기 때문에 천둥과 번개가 허망함이 없다는 의미다. 이는 혼연하여 사념 없이 정신이 초롱초롱한 것으로, 사념이 들면 이미 유망한 것이 된다. 정무직에 의한 권력 줄대기가 공무원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어 지금 직업공무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권력의 계절에 무망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천하에 우레가 행하니 만물이 시생하고 하늘의 시간에 순응하여 만물을 육성하게 되는 것은 정치적 선거에 의한 변동과 무관하게 직업공무원제가 작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권력의 무상함은 기원전 1세기 전한 시대의 주역학자들에 의해 봉건적 전제군주에게도 경계의 초석이 되었다. 주역학자였던 경방은 군주인 벽(壁)과 함께 공(公), 후(侯), 경(卿) 그리고 대부(大夫)로 5개의 범주를 하나로 묶어 국정운영에서 권력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권력 12개월의 추이에 따라 순환함은 인력으로 조작할 수 없는 하늘의 섭리로 보았다. 하물며 선거에 의해 가변적인 민주정치에서 권력은 자기절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력의 초겨울에는 이제 그만 그치고 내려놓을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 비서실의 무절제한 권력 남용에 대해 주역은 ‘그칠 간(艮)’라는 한 글자를 드러낸다. 그들이 후(侯)인지, 경(卿)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 그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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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