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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척결의 대상과 경쟁하는 대선 /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7 4월 [IF Media] 척결의 대상과 경쟁하는 대선 /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이관후 칼럼] 척결의 대상과 경쟁하는 대선

‘어떻게’ 대통령 뽑느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출처 : 프레시안

촛불이 언제였는가 싶게 대선 경쟁이 한창입니다. 벚꽃 대선이니 장미 대선이니 하지만,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해서 치러지는 ‘조기 대선’입니다.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실상 선거전의 대부분은 네거티브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종북, 좌파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후보가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다른 후보들 역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보다는 청산하고 개혁할 것들을 열거하는데 그칩니다. 누구는 적폐를, 누구는 상대 후보를, 누구는 기존 정당을, 누구는 종북 좌파를 척결의 대상으로 지목합니다.

선거를 통한 경쟁이 척결해야 하는 적과 싸우는 것이라면, 당연히 인정사정 볼 필요도 없고 비열한 방식을 좀 동원해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예외상황에서 벌어지는 절대 전쟁이며, 오로지 내 후보가 선이자 진리이고, 내 후보에 대한 비판자들은 적의 부역자들일 뿐입니다.

이런 선거, 우리가 촛불로 얻어낸 값진 대선의 바람직한 모습인가요?

나는 지지자를 늘리고 있는가?

한 대학에서 시민교육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총선이 있었던 작년 1학기에는 자신이 속한 지역구의 국회의원 후보 1명씩을 인터뷰 해 오라는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대학 1학년들에게 국회의원은 너무 높고 멀리 있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과제를 해 온 학생들의 생각은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머리에 뿔난 사람도 아니었고,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단 한명의 유권자가 찾아가도 성심성의껏 자기의 비전과 공약을 소개할 수 있는 그런 후보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그것 하나만으로도 과제의 의미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비밀도 하나 공개할까요? ‘누가 인터뷰를 온다고? 대학생 한 명? 그런 걸 왜 받아? 사람 많은 델 가야지. 일 똑바로 안 해?’ 이렇게 인터뷰를 거절한 후보, 다 떨어졌습니다.

‘대학생이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훌륭한 학생이네. 우리 지역 유권자인가? 그럼 당연히 만나야지.’ 30분 정도 학생을 만나서 자신의 의정활동 계획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후보, 다 붙었습니다.

올해는 대선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작년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올해는 대선 후보를 인터뷰하는 건가요?’ 합니다. 역시 그건 좀 어렵더군요.

대선 후보 중에서 지지 후보를 고르고, ‘왜 그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짧은 글’을 써 오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바탕으로 지지후보가 다른 학생들과 조를 이루어 상대를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보수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안보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가 안정감을 준다.’
‘아니다. 말로만 하는 안보보다는 특전사를 갔다 온 문재인이 오히려 안보에 더 전문가다.’
‘말이 안 된다. 공대 나온 박근혜가 산업이나 경제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었느냐?’

‘청년 실업이 심각하지 않느냐. 일자리가 중요하다. 문재인이 일자리를 많이 늘리는 공약을 제시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기업을 운영해보고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안철수가 민간 일자리를 더 잘 만들 것이다.’
‘나쁜 일자리, 한 달 150만원도 못 받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좋은 것인가? 튼튼한 복지가 21세기에 맞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직업을 가능하게 하고, 그게 국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토론이 열띠게 진행될수록 강한 어조로 상대와 그 후보를 비판하고, 발언권을 독점하고, 대화를 주도하려는 경향도 생겨났습니다. 제가 때로 개입해서 말했습니다.

‘자네 후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말게. 지금 자네의 말이 지지자를 늘이고 있는지 아니면 적을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무엇이 국민의 의견일까요?

토론만 하고 끝내면 좀 섭섭합니다. 다른 때는 늘 국회의원 선거를 상정하고 모의투표를 해 봅니다. 누가 인기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거제도에 따라 결과가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를 실제로 경험해보고,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투표라곤 1인1표에 1등만 당선되는 단순다수대표제와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이외에 상상을 못해본 친구들입니다. 결선투표제는 물론이고, 중대선거구제를 가정한 연기명 투표, 선호대체투표제, 선호이전식 투표제 등, 동일한 후보들을 놓고 5가지 이상의 선거제도를 통해 당선자를 뽑습니다.

선거방식에 따라 거의 매번 달라지는 결과를 보며, 학생들은 환호하고, 경탄하고, 박수를 칩니다. 지금까지 단 하나의 선거제도만 배워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대선을 가정하고 모의 투표를 해 보았습니다. 총 투표수 32표 중 결과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A후보 20
B후보 7
C후보 3
D후보 2

이번에는 1인 2표제로 투표방식을 바꿔보았습니다.

A후보 23
B후보 16
C후보 15
D후보+기권 10

유효 투표수 64표 중에 A 후보의 득표는 36%였습니다. 물론 1인 2표제에서는 최고득표가 어차피 50%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C 후보의 약진이 눈에 띱니다. 1표제에서는 9%에 그쳤지만, 2표제에서는 B 후보와 1표차의 23.4%였습니다.

표본이 이렇게 작고, 성별이나 지역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대학 1학년을 상대로 한 투표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가능성은 물론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1명을 뽑는 대통령 선거에서 2표를 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제가 이런 투표를 해 본 것일까요?

투표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두 투표 중 어떤 쪽이 여러분의 실제 의견에 가까운 것이냐? 어떤 투표가 더 좋으냐?

대부분의 학생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두 번째 투표가 자기들의 선호가 더 잘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투표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연립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더 잘 반영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승자 없는 대선에서 이기는 법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누구도 승자로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집권여당에게는 책임을, 야당들에게는 개혁의 비전과 수권능력에서의 경쟁을 요구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당인 새누리당은 결국 처참하게 분해되었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탄핵과정을 주도하기보다는 민심에 끌려오기 급급했고, 국민의당은 전국정당화에 관심이 없는 낡은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으며, 정의당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선에서도 국민은 누구를 승자로 만들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승자야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누가 대통령이 된 들 국민 절반은 다른 사람을 찍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누가 된 들, 국회에서 과반의 지지도 얻지 못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대통령이 어떻게, 얼마의 지지를 받아 뽑히느냐도 중요합니다. 단순히 선거제도나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제도가 못한다면, 사람이 하면 됩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려고 해야, 나중에 제도가 바뀝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감이 큰 후보일수록, 집권 이후에 정치적, 정책적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보가 선거에서 유리할 것도 틀림없습니다.

이관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