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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체코는 어떻게 MD를 철회했나? /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23 8월 [IF Media] 체코는 어떻게 MD를 철회했나? / 김연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 읽기?/ 체코는 어떻게 MD를 철회했나?]

출처: 한겨레

 

사드 배치를 이렇게 결정해도 될까? 정부는 국회를 무시하고 제1야당은 자신의 역할을 회피했다. 제도가 기능을 하지 못하니, 이성적 토론의 자리를 색깔론이 차지했다. 공론의 과정은 없고, 진영 대립만 부추긴다. 21세기의 현안을 19세기 방식으로 결정해도 될까? 미사일 방어망(MD) 논란은 처음이 아니고, 우리만 겪는 문제도 아니다. 2006년에서 2009년까지 체코와 폴란드가 겪었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때도 미국은 체코와 폴란드의 엠디가 이란의 핵미사일을 막는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체코의 중도우파 정부는 레이더 기지를 ‘안보의 오아시스’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유럽에서 전략적 균형이 깨지고 핵 군비경쟁이 재연되고 선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하며 보복을 경고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것은 국내 협상이다. 체코의 시민사회가 나섰다. 2006년 6월 60여개의 시민단체가 연대한 기지반대협의체가 출범했다. 기지가 들어설 주민들만 외로운 싸움을 한 것이 아니다. 활동가들은 단식투쟁을 시작했고, 레이더 기지를 거부하는 시장협의회가 만들어졌으며, 수십 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레이더 기지 예정지를 점거했다. 그리고 정당이 나섰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은 기지 반대를 핵심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레이더 기지는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했고, 중도우파 정부는 붕괴했다.

폴란드는 사정이 달랐다. 의회 내에서 기지 반대 세력은 소수였다. 기지 반대 여론은 높았으나 시민단체의 힘은 미약했고, 여당과 야당 모두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중시했다. 다만 폴란드 정부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폴란드 공군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요구했다.

2009년 9월 오바마 정부가 동유럽의 미사일 방어망 계획을 철회했을 때, 체코는 환영했고 폴란드는 당황했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그때 “미국은 언제나 자기 이익만 신경 쓴다. 다른 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부시 행정부의 미사일 방어망은 물 건너갔고, 대신 오바마 정부는 계획을 변경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내세우고, 해상 요격 기능을 강화하고 루마니아라는 새로운 지상 방어 국가를 찾았다. 유럽에서 미사일 방어망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각국의 다른 대응이 가져온 손익계산서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미사일 방어망을 둘러싼 강대국의 격돌이 유럽에서 시작해서 동북아시아로 번졌다. 한국에 설치할 사드는 미사일 방어망이다. 그 망에 들어가는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사드 배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동북아시아 질서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북한 핵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북방의 문을 닫고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막대한 군비경쟁을 감당할 수 있을까?

왜 대안이 없겠는가? 미국과 중국의 양자택일이라는 단순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의 눈으로 정세를 읽고 무엇이 국가이익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강대국 정치는 대결을 추구하다가도 타협한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사드를 거래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가? 국익이라는 중심이 없으면, 황당한 꼴을 당할 수 있다.

사드 배치의 근거로 내세우는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을 때다. 한국은 강대국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지역협력의 선순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한반도가 동북아시아 질서의 단층선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국익을 생각하고 야당은 미래를 걱정하며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