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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칼럼]가치투쟁과 인권의 정치/김형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2 12월 [IF Media] [칼럼]가치투쟁과 인권의 정치/김형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칼럼]가치투쟁과 인권의 정치

출처 : 주간경향

칼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세상은 이익투쟁의 장이라는 말이겠다. 이익(권리)투쟁은 반드시 가치(이념)투쟁을 낳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가치투쟁의 결과가 세력(헤게모니)투쟁의 판세를 결정하고, 세력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집단이 정책의 주도권을 쥔다. 권리-이념-세력-정책이라는 정치(과정)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과정에서 지배집단은 정책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빙자해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한다. 그래서 종종 가치전도의 정당화가 이뤄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것과 같은 계급배반의 행태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가 선거제도 개혁이나 정책정당, 이념정당을 그토록 바라는 까닭도 이런 왜곡을 막기 위해서다. 정치가 가치투쟁의 사명을 저버리면 세속주의 정치가 활개를 친다. 세속주의 정치의 특징은 당선을 지상목표로 삼아서 표만 좇는 것이다. 정치를 왜 하려는지, 정치의 본질적 사명이 무엇인지는 안중에도 없다. 흔히들 정치는 곧 ‘표’이기 때문에 정치인은 다수의 의사를 좇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 언술은 틀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고르게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행위는 가치투쟁이면서 동시에 이익투쟁이라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낫다’고 한 J S 밀의 말처럼, 인간은 이해충족만으로는 행복할 수가 없는 존재다. 배부름도 도덕적 정당화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민주화’로, ‘경제성장’이 ‘인간존엄성’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면, 그게 ‘물신화’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서생적 문제의식이 없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그냥 상인인 것이다. 정치인의 확장성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 요컨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집요하게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풀어낼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법이다.

인권의 획득, 확장, 심화의 과정 역시 항상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주의적 정치’의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인권이 현실정치에서 표가 안 된다고 해서(이 점도 사실은 검증된 바 없다),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하고 숨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인권을 상인적 감각을 통해 설득하고 확산시켜 표로 연결시키는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역량이 없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자격미달인 것이다. (자칭) 진보적 정치인들조차 정체성과 확장성을 대립항으로 전제하고 마치 정체성을 포기해야만 확장성이 담보되는 양 처신하지만, 이는 아주 심각한 착각이다. 정체성을 해체하면 확장성도 없다. 오히려 그 틈을 비집고 냉소와 혐오에 기반한 상인정치가 세력화하게 마련이다.

최근 온갖 사이비, 가짜 정치인들이 중도확장, 중간지대 공략, 외연확장, 전국정당 운운하면서 오로지 세 불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천박한 상인정치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국가인권위법을 개정해서 인간에 대한 차별을 합법화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까지 나오고 있다. 나는 ‘뜨거운 아이스커피’가 형용모순이 아니라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실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가치지향 없는 정치인’, ‘당파성 없는 운동가’, ‘중립적인 지식인’ 따위로 표상되는, 그야말로 형용모순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가치투쟁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가 여전히 사막의 신기루처럼 아롱거릴 뿐이다.

김형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