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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칼럼]보수와 모리배/김형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09 1월 [IF Media] [칼럼]보수와 모리배/김형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칼럼]보수와 모리배

출처 : 주간경향

“정치를 하면 무엇부터 하시렵니까?”라는 자로(子路)의 물음에 공자는 단 한마디로 “正名(이름을 바로 잡고자 한다)”이라고 답한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엉클어지게 마련이고, 말이 엉클어져 소통이 안 되니 정치가 제대로 될 리 없으며, 결국 형벌(刑罰)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해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바르지 못한 이름(不正名)이기에, 불의(不義)라고 바로 잡겠다고 한 것이다. 불의한 것에는 불의를, 정의로운 것에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정명이고, 이것이 곧 정치의 기본사명이라는 말이겠다. 논어 자로편 제3장의 내용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 부정명(不正名)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보수’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공화파와 왕당파, 이후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이 각각 좌우에 착석한 이래 서구에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민주공화주의를 함께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런 전통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만큼은 찾아볼 수 없다. 진보는 물론이고, 보수 역시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하 독립운동 시기만 하더라도 좌우의 대립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선대들은 ‘좌우의 양 날개’로 함께 민족 해방을 도모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 친일부역자들이 대거 권력의 핵심에 복귀하면서, 자신들의 과거를 세탁할 방편으로 반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이 경험하게 한 모든 악덕까지 반공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반공이 이념과 노선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기보다 친일부역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신분세탁의 도구이자 ‘공포의 재생공장’으로 호출된 것이다. 한국 사회 보수에게 반공은 모든 부정명을 집어삼키는 신성불가침의 ‘절대반지’이자 수호신이 되었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정작 자유를 외치던 국민을 향해 총질을 해댔고,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은 쿠데타와 유신독재로 민주공화정을 능멸했으며,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은 광주 학살을 통해 민주와 정의를 시궁창에 처박아버렸다. 반공으로 친일부역을 가리고, 안보를 팔아 공익을 사유화하며, 보수를 내세워 기득권을 수호하는 집단, 이것이 우리 사회의 이른바 자칭 보수의 민낯이다. 이게 무슨 보수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국민적 애도를 ‘시체팔이’라고 비아냥거린 이들을 과연 보수라 할 수 있을까? 국정농단으로 헌법에 의해 탄핵당한 박근혜를 칭송하며 국정원의 기획과 지원에 의해 조직된 이들을 보수라고 일컫는 게 합당한 일일까? 막말과 돼지발정제로 연상되는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은 그렇다 쳐도, 보수 재건의 기치를 내건 유승민의 바른정당조차도 보수를 참칭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혈통, 그들의 사대주의적 노선, 그들의 호전적 안보관, 공동체 파괴적 엘리트주의, 그 어디에서도 보수의 가치와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 보수도 아닌 것들이 무시로 보수를 매명하는데, 정작 정명을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언론과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이들을 여전히 보수로 칭하고 있다. 부정명도 이런 부정명이 없다. 보수의 아버지 에드먼트 버크가 웃을 일이고, 공자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나는 이들을 모리배로 정명할 것을 제안한다. 모리배의 사전적 의미는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다.

김형완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