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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탈스펙의 정치경제학 / 이범 (더미래연구소 후원회원)

06 8월 [IF Media] 탈스펙의 정치경제학 / 이범 (더미래연구소 후원회원)

[탈스펙의 정치경제학]

출처: 허핑턴포스트

 

스펙이라는 말은 영어로 specification의 약자입니다. 원래 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라 물건에 쓰는 말이죠. 우리집 냉장고는 용량이 몇 리터이고 전기를 몇 와트 쓰며 높이는 얼마고… 이런 게 스펙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스펙이라는 말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에게 쓰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스펙이라는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주로 입사시험을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 토익·해외연수 등이 반영되기 시작하더니 출신대학, 대학성적, 토익점수, 해외연수, 봉사활동, 입상실적 등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뽑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된 거죠. 입사시험이 잔존하더라도 삼성의 SSAT처럼 주로 최저기준을 걸러내는 용도로 한정됩니다. 스펙은 곧 대학생과 취업준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됩니다. 심지어 중고생에게도 확산되지요. 수시전형의 비중이 커지고 입학사정관제 또는 그와 유사한 제도가 대입과 고입에 도입된 것이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스펙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조짐이 역력히 보입니다. 올해 4월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SK텔레콤이 2014년 대졸자 공채시 서류심사와 면접 과정에서 출신 대학을 가린 채 절차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스펙인 출신대학을 빼버린 거죠. 그랬더니 합격자 가운데 ‘인(in)서울’이 아닌 수도권대·지방대 출신자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더랍니다. 사실 이러한 ‘열린 채용’을 단위기업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먼저 시도한 곳은 현대자동차그룹으로서 한때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며 채용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노무현정부 시절 KBS 정연주 사장이 채용방식을 혁신하여 지방대 졸업자 비율을 크게 높인 바 있구요. 삼성그룹의 경우 대졸자 공채에서 지방대 출신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26% 정도였는데 2012년 이후 이를 정책적으로 35% 이상으로 높였습니다. 최근 정부에서 직무능력표준(NCS)이라는 걸 만들고 있는데 이를 공기업에 적용하여 탈스펙 채용을 제도화할 방침이기도 합니다.

‘탈스펙’은 다양한 유형과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열린 채용, 스펙파괴 채용, 지방대 출신 우대, 직무능력표준, 고졸 채용… 등등. 이같은 탈스펙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내 굴지의 A그룹의 경우 입사할 때의 스펙과 중장기적 업무 성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명문대 출신의 스펙 좋은 사람이 몇년 뒤 별볼일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적지 않더라는 거죠. A그룹 뿐만 아니라 여러 대기업·그룹들에서 이와 유사한 조사를 실시했으며 스펙과 업무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해외의 사례이지만 구글에서 2014년 입사자의 업무능력과 과거 시험성적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밝힌 바도 있습니다.

특히 기업의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가장 경악시키는 경우는 도련님형 인재, 공주님형 인재입니다. 대학생들이 수강신청할 때 부모가 배놔라 감놔라 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는 얘기를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명문대 교수들이 하더군요. 어려서부터 부모의 전면적인 관리 하에서 성장하다 보니 스펙은 좋지만 종합적 판단력이라든가 능동적 추진력 등에서 약점을 보이는 겁니다. 부모가 아이의 삶을 철저히 관리하는 습관이 아이가 대학에 간다고 해서 갑자기 사라질까요? 상당수는 지속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수강신청에도 간섭하게 되는 것이겠구요.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사라질까요? 상당수는 지속됩니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의 소재를 제공하는 거죠. 한국 막장 드라마의 양대 소재가 바로 출생의 비밀과 부모의 간섭이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회 조직은 도련님·공주님형 인재를 그리 반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족의 경우도 그렇죠. 자녀가 장성해서 사윗감·며느릿감을 데려왔는데 자세히 보니 도련님·공주님이라면?… 제아무리 스펙이 좋다 해도 이런 사윗감·며느릿감을 반길 부모가 드물 겁니다. 기업도 똑같은 거죠. 여러분이 채용담당자인데 스펙 좋은 신입을 뽑고 나서 보니 인간형이 도련님·공주님이라는 후문이 들려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국내 대표적 재벌그룹 중 하나인 B그룹의 관계자가 말하길, 그룹 차원에서 다음 두 부류의 사람을 뽑을 때 조심하라는 지침이 있는데 놀랍게도 하나는 강남 출신이고 또하나는 명문대 출신이라는 겁니다.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주 간단한 답변이 나오더군요. 이직률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규직에 입사하면 다들 회사에 잘 다닐 것 같지만 의외로 조기이직률이 상당히 높거든요. 2012년 경총에서 392개 기업을 조사해보니 대졸 신입사원의 입사 후 1년내 퇴사율이 23.6%였고 대기업으로 한정해도 14.8%(입사 포기자 포함)에 달했다고 합니다. 1년내 퇴사율이 이 정도이니, 대기업 정규직도 3년 내로 1/3이 관두는 경우가 많다는 풍문이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닐 듯합니다.

물론 회사를 떠난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직업선택은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인데다가, 아직 한국의 기업문화가 경직된 편이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그리고 전공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 적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관행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경영진의 입장에서 보면 조기 이직은 상당한 손해입니다. 손해가 발생하면 사장님이 누구를 질책할까요? 당연히 채용담당자를 질책하겠지요.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뽑았길래 회사가 손해를 보게 하느냐?” 그래서 통계조사를 해 보면, 조기이직률이 높은 집단이 확연하게 둘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강남 출신과 명문대 출신이라는 겁니다. 또다른 재벌그룹 C그룹의 핵심 계열사에 근무하는 한 임원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내가 속한 부서에는 강남 출신은 몇 퍼센트 이상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그 이유가 뭐냐니까 답은 역시 “이직률”이었습니다.

탈스펙을 일종의 ‘쇼’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심각합니다. ‘스펙 좋은 도련님·공주님’의 증가와 ‘높은 조기 이직률’이 이들을 심각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입니다.

탈스펙은 곧 탈학벌을 의미합니다. 스펙 중에서 최고의 스펙이 바로 학벌이니까요. 그렇다면 가히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의 학벌주의는 어떻게 구성된 것이고, 어디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의 학벌주의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대학들이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독일의 경우 사립대가 사실상 없고 정부가 대학들에 돈을 비교적 균등하게 나눠주기 때문에 대학들간에 편차가 작지요. 프랑스·독일의 대학이 평준화되어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맥락에서 평준화란 대학들의 수준이 비교적 균등하고 고르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프랑스는 대입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면 거주지 반경 일정거리 내의 대학 아무 곳에나 입학할 수 있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합니다. 대학 재학중에 중도탈락률이 높긴 합니다만.

물론 우리나라는 프랑스·독일이 아니라 미국·일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 미국·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일본·한국 대학의 공통점은 사립대 비율이 높고, 대학간 서열 격차가 크며, 등록금이 비싸다는 겁니다. 참고로 평균 대학등록금 세계 1위는 미국, 2위는 일본, 3위는 한국입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위 정도인데 말이죠.

그런데 제가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은, 미국처럼 대학이 서열화된 나라들은 꽤 많은데 왜 유독 한국의 학벌주의가 극심하냐는 것이었습니다. 학벌주의가 단순히 잘난 사람을 뽑다 보니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그 이유를 살펴보다 보면 ‘정부의 학벌주의’와 ‘민간의 학벌주의’의 원리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정부의 학벌주의, 즉 왜 정부의 요직을 서울대 중심의 SKY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하느냐는 것은 고시제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우리나라는 고려 광종 때부터 과거제도를 시행하여 관료를 시험으로 선발하는 데 지극히 익숙합니다. 지금도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각종 고시(5급 공무원), 심지어 공립학교 교사들까지 다 시험으로 선발하지요.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게 ‘당신네 나라 공무원을 시험으로 뽑느냐?’고 질문하면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들은 공무원도 대체로 일반 기업에서처럼 1단계 서류전형, 2단계 면접으로 선발하거든요. 공무원을 시험으로 선발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선진국 기준으로는 예외적인 제도인 거죠.

예전에 사법·행정·외무고시는 곧 출세길이었습니다. 일례로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고시 합격했을 당시엔 사법고시 선발인원이 1년에 1백여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시는 대학입시와 비슷한 유형의 시험입니다. 대학입시 성적이 높은 사람들은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으니 당연히 SKY에 모이겠지요. 이들은 유사한 유형의 시험인 고시 합격률도 높습니다. 그래서 SKY 출신, 특히 서울대 출신이 행정부와 사법부의 요직을 독차지하게 되는 거죠. 사람이 가진 능력들 가운데 시험으로 검증되는 능력은 부분적인 건데, 우리나라 관직에서는 그 중요성이 매우 컸던 겁니다. 정부의 학벌주의는 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 특히 고시에 합격하면 고급관료로 직행하는 제도가 결정적 영향을 준 것입니다.

정부의 학벌주의는 대학서열화와 고시제도의 결합에 의한 것이었는데, 민간의 학벌주의에는 또다른 메커니즘이 작용합니다.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정부주도 모델로 경제성장을 일궈냈습니다. 그런데 ‘경제개발 계획’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나라는 어느 나라였을까요?… 답은 바로 소련입니다. 경제를 계획한다는 발상은 분명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사회주의경제에 가까운 것이지요. 20세기 후반에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한국이고, 20세기 전반에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소련입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농업국가였던 소련은 계획경제를 통해 엄청난 속도의 산업화에 성공하여 곧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G2가 되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소련의 경제성장 모델을 언제 배웠을까요? 우리는 그가 한때 남로당원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박정희의 친형인 박상희는 유명한 좌익 지도자였는데 해방 다음해인 1946년 대구 노동자봉기의 와중에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습니다. 나중에 박상희의 딸과 결혼한 사람이 바로 김종필인데 그도 일설에 의하면 서울대 재학중에 좌익 조직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오자 군대로 도피성 입대를 했다고 하지요. 어쨌든 친형이 죽은 사건 이후 박정희는 비밀리에 남로당에 입당하여 국군 내 모집책임자로 활동합니다. 이게 형의 죽음으로 인한 일탈이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워낙 위험한 일이었거든요. 분명 상당한 수준의 사상적 학습과 개인적 결단이 작용했을 겁니다. 실제로 그는 1948년 여순사건 이후 발각되어 군법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나중에 사면되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다닌 바 있는 당대의 엘리트였습니다. 그가 1940년대 후반 접한 사회주의 사상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의 자료와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상당 부분이 계획경제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 이를테면 “저 위대한 사회주의 조국 소련의 찬란한 경제성장을 봐라, 저게 사회주의가 좋다는 증거”라는 식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이상하지만 당시엔 이게 충분히 통한 거죠. 박정희는 이때 배운 모델을 10여년 뒤 집권한 뒤에 활용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당시 미국은 개방경제 모델을 전도합니다. 그런데 이 모델을 따른 남미 등의 국가들은 다들 경제가 망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달랐지요. 지금의 장년층 이상은 예전 우리나라 수퍼마켓에 수입품이라는 걸 찾아보기 어려웠던 걸 기억할 겁니다. 즉 한국은 개방경제는 커녕 폐쇄경제에 가까웠고, 정부는 폐쇄경제 하에서 민간기업들을 수입대체와 수출에 동원합니다. 특혜적인 수출금융 지원과 아울러 직접적으로 ‘짜고치는’ 방식을 병행하는데 심지어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비료공장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조선소를 만들도록 지시하고, 눈밖에 난 기업은 퇴출시키는 수준에 이릅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자유시장경제가 아니죠. 한국의 경제 성장은 그 속도에 있어 경이적이기도 했지만, 그 방식 또한 매우 독특했던 겁니다. 소련의 노멘클라투라(특권적 관료계층)에 의해 주도된 계획경제를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

이런 시대에 여러분이 회사의 사장이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우리 업종, 우리 회사를 관리하는 정부의 관료들이 있고, 이 관료들에 의해 우리 회사가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관료가 갑이고 나는 을인 거죠.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을 자기 주변에 배치하려고 노력하겠습니까? 정답은 바로 ‘갑과 친한 사람’입니다. 이때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작용하여 동문 관계가 활용됩니다. 사실 우리나라 동문은 굉장히 유별나지요. 오늘 난생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후배임이 확인되면 밥을 사주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밥값과 술값을 내는… 이런 각별한 관계가 갑-을 관계에 활용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정부-기업간 갑-을 관계는 학벌주의를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킵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 자리잡고 있는 SKY 출신들이 정부에 있는 갑을 만나러 갑니다. 어디서 만날까요? 초기엔 요정, 나중엔 룸살롱이었습니다. 갑을 제일 상석에 앉혀놓고 을이 비싼 양주를 갑에게 따라드리면서 뭐라고 불렀을까요? “선배님” 입니다! “선배님”에서 시작하면 “형님”으로 바뀌는 데 30분도 안 걸리지요. 현재 중년층 이상 남성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문화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정경유착을 나쁜 짓이라고 여기지만 정부주도 성장 시대에 기업의 입장에서 정경유착은 필수였습니다. 쟤들(관료)이 ‘갑’이니까요. 이때 동문 관계는 정경유착의 통로로 활용됩니다. 경쟁 회사가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우리 회사도 SKY 출신을 기용해서 정경유착에 나서야 합니다.

한국의 학벌주의에는 대학서열화가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정부의 학벌주의는 대학서열화에 고시제도가 결합한 산물입니다. 민간기업의 학벌주의는 여기에 정부주도 성장이 덧붙어서 나타난 것이구요. 이렇게 정부의 요직을 SKY 출신이 독식할 뿐만 아니라 주요 민간기업의 경영진 또한 SKY 출신이 차지합니다. 대학서열화, 고시제도, 정부주도성장 등 세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의 학벌주의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운 겁니다.

학벌주의에 대해 이처럼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진보 지식인들은 학벌의 폐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했을 뿐 학벌에 대한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설명을 별로 시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제도적 설명이 전제되지 않으면 최근의 변화를 정확히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 세계 최고 수준의 학벌주의가 뿌리내리도록 만든 대학서열화, 고시제도, 정부주도성장 등의 세가지 가운데 이미 없어진 게 하나 있지요. 바로 정부주도 경제 성장입니다. 이로 인해 학벌 구조에 변화가 초래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주요 산업 가운데 정부가 ‘주도’를 하는 분야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하고, ‘간섭’을 많이 하는 분야가 금융업 정도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주력 기간산업은 뭐니뭐니해도 제조업인데, 수출 중심의 제조업이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상당 기간 그럴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제조업체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정부가 더이상 ‘갑’일 수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특정 기업을 키우기 위해 정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특혜를 줄 수 있었지만 이젠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간 누군가 교도소를 가야 합니다. 요새 언론에 보도되는 갑-을 관계는 민간 내에서의 갑-을 관계이지, 정부-기업간 갑-을 관계는 거의 해체된 겁니다.

정부-기업간 갑-을 관계의 해체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일단 기업의 경영진 가운데 이공계 비율이 높아집니다. 예전에는 제아무리 제조업체라 할지라도 경영진들은 대체로 문과였습니다. 갑이 문과니까 을도 문과인 게 유리했던 것이죠. 동문 중에서도 같은 단과대나 같은 학과 출신 사이가 가장 관계가 끈끈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젠 사장 등 경영진이 이과인 경우가 대폭 늘었습니다. 2014년 우리나라 100대 기업 대표이사들 가운데 대학 전공이 이공계인 경우가 51%로 과반을 넘겼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전이던 1994년 28%였는데 꾸준히 늘어나서 20년간 거의 두배 가까이 증가한 겁니다.(월간 <현대경영> 조사 결과)

참고로 언급하자면 주요 기업의 경영진만이 아니라 신입사원 중에서도 이공계 비율이 높아졌지요. 현재 고등학생 중 문과:이과 비율은 6:4 정도이고 대학 정원은 문과:이과 비율이 5:5 정도입니다. 그런데 30대 그룹의 채용 비율을 보면 문과:이과가 3:7이고, 4대그룹(삼성·현대차·LG·SK)으로 한정하면 2:8입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그리고 좋은 일자리가 제조업체에 몰려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죠.

기업 경영진 가운데 이공계 비율은 높아지는 반면, SKY 비율은 낮아집니다. 국내 1천대 상장기업 대표이사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2007년 대표이사의 60%가 SKY 출신이었는데 불과 6년만인 2013년 40%가 됩니다.(유니코써어치 조사 결과)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락이죠. 제가 작년에 대표적 재벌그룹인 D그룹 내에서 인사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직전에 이뤄진 인사에서 임원 승진자 중 SKY 비율을 계산해 보니 10% 미만이더랍니다.

이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2014년 삼성그룹 사장 승진자 8명의 명단입니다. 출신대학을 보면 서울대, 성균관대(2명), 서강대, 중앙대, 외국어대, 숭실대, 그리고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스쿨(이건희 회장의 둘째딸인 이서현). SKY 출신이 단 한 명에 불과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정부가 더이상 갑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관료들과 동문 관계라는 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죠. (참고로 다음해인 2015년 삼성그룹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이어서 그런지 규모가 작았고 사장 승진자가 3명에 그쳤는데 출신대학은 서울대 1명 한양대 2명이었습니다.)

참고로 일본도 한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학벌주의가 발전했습니다. 고시제도 하에서 명문대 출신이 고급 관료를 독차지했지요.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주요 경영진이 명문대 출신 위주였습니다. 한국만큼은 아니었지만 일본에서도 정부가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므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죠. 그런데 최근 일본도 주요 기업의 대표이사나 이사진 가운데 명문대 출신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정치경제 모델이 우리와 유사한 변화를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여기서 ‘학벌’이 두가지 의미로 통용됨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등주의자들에게 학벌이란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권력관계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불평등의 원천인 대학서열화를 비판하는 데 주력합니다. 대표적으로 ‘학벌없는 사회’가 이런 입장이지요. 반면 자유주의자들에게 학벌이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때 정상적인 개별적 가치 이상의 프리미엄/디스카운트를 주는 것, 즉 인적 네트워크로 인한 가치교란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대학서열화 비판보다는 진정한 능력주의가 자리잡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학벌없는 사회 만들기'(단체 이름이 살짝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가 이런 입장에 가깝지요. 즉 최근 나타나는 탈스펙 현상은 근본적인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등주의자들에게는 그리 인상적인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능력에 따른 채용·인사를 향한 진전이자 노동시장에서 공정한 시장질서가 성립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진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혼란스러워 합니다. 과도기이거든요. 옛 것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새 것이 나타나고 있으니,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거죠. 하지만 과거에 기업이 입사시험을 통해 선발하던 데에서 벗어나 스펙으로 선발하는 제도로 진화했던 것처럼, 앞으로 스펙의 시대가 저물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방향이 뭘까요? “너에게 달린 간판을 떼고 개인의 능력(역량과 전문성)을 보자”는 겁니다.

‘개인의 능력(역량과 전문성)’을 중심으로 선발한다는 게 말은 쉬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뽑는다는 뜻일까요? 우선 신입 채용이 줄고 경력직 채용을 늘리는 경향이 지속될 겁니다. 기업이 스펙 좋은 신입을 뽑았다가 배신(?)당하는 경험 때문에 대안을 모색하게 된 탓이기도 하고, 기업의 사업 영역이 예전에 비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데 그때마다 내부에서 새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영입하는 게 손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력직 채용에서는 함께 일해본 사람들이 작성한 추천서·평가서의 영향력이 큽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른 회사에 입사하려고 면접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면접관이 주인공의 옛 상관이 작성한 평가서를 꺼내드는데, 뜻밖에도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적혀있어 무사히 채용됩니다. 여러분이 경력직 채용 면접관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자료들 가운데 ‘내가 이 사람과 몇년간 일해보니 이런 사람이더라’는 자료가 있다면, 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이를 능가할 자료는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또 신입을 뽑아도 인턴을 통한 선발이 늘어날 겁니다. 장그래 얘기에서처럼 인턴이 악용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인턴 제도는 ‘네가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보고서 뽑을지 말지 결정하자’는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제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회사의 과장쯤 되는데 부서에 들어온 인턴들 가운데 몇개월 뒤 몇명을 채용해야 한다면, 누구를 채용하게 될까요? 시험성적이 제일 높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했던 사람일까요?… 하루이틀이면 태도를 속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몇 개월간 태도를 속이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흔히 기업에서 인성이나 사회성을 중시한다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듣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업이 중용하고 싶은 사람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하는 로봇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적극성과 포용성을 겸비한, 즉 앞으로 나서야 할 때와 뒤에서 조력해야 할 때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지요.

마지막으로 면접이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한번 보는 면접이 아니라 여러번 보는 다면면접이 점차 늘어날 겁니다. 한 차례 20-30분간 치르는 면접은 면접대비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잘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면접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차례 치르는 다면면접은 그 사람의 맨바닥을 다 드러낸다고 합니다. 구글은 채용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원칙적으로 5회 이상 면접하는 게 규칙이라고 하죠. 심지어 무려 17회 면접 본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정부의 학벌주의는 대학서열화와 고시제도가 존재하는 한 여전할 겁니다. 하지만 민간의 학벌주의는 정부주도 경제의 종결과 시장기제의 작동으로 인해 이미 완화되기 시작했고, 구체적으로 주요 기업의 경영진 중에 이공계 비율이 높아지고 SKY 비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최근 나타나는 ‘탈스펙 현상’의 근본적인 토대입니다. 도련님·공주님형 인재의 증가와 높은 조기 이직률은 탈스펙 현상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는 요인이구요.

기업의 사원 선발은 과거에 입사시험의 시대에서 스펙의 시대로 진화했었고, 지금은 스펙의 시대에서 ‘개인의 능력(역량과 전문성)’을 보는 시대로 다시 진화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경력직 채용 및 인턴을 통한 채용이 늘고 추천서·평가서와 다면면접의 비중이 높아질 겁니다. 지금은 과도기라서 혼란스럽겠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탈스펙 현상은 대세로 자리잡을 겁니다.

일각에서는 탈스펙이 개인의 정당한 노력의 결과(스펙)을 폄하하는 불공정한 현상이라고 여기더군요. 하지만 이건 전형적인 주객전도 논리입니다. 뽑는 쪽은 기업이거든요. 그러니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탈스펙을 추구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상당수의 취업 준비자들은 더욱 가열차게 스펙 준비를 할 겁니다. 아직 스펙 중심으로 뽑는 기업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어서이기도 하지요. 내면의 잠재력을 축적하기보다 타인의 평가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도록 하는 게 우리 교육의 습성이니까요. 한국 교육이 만들어낸 ‘웃픈’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스펙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전망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탈스펙을 통해 보다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지만, 이를 통해 청년들의 전체적인 처지가 나아진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대기업 정규직 채용방식은 분명 탈스펙 경향을 보이지만, 보다 거시적인 불평등인 대기업/중소기업간, 정규직/비정규직간, 원청업체/하청업체간 격차가 어마무시하게 커졌기 때문입니다.

다음엔 이러한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고 청년고용을 늘리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범 더미래연구소 후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