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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태양의 섬에서 나온 잉카 문명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26 5월 [IF Media] 태양의 섬에서 나온 잉카 문명 /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

(볼리비아에서 불평등을 묻다)⑧태양의 섬에서 나온 잉카 문명

출처 : 뉴스토마토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La Paz)에서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태양의 섬까지 가는 4시간 동안은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고대의 잉카문명 속으로 가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이곳에서는 현대적인 문명에서 태고의 전설을 머금고 살아있는 고대 문명의 기억을 줍게 된다. 그리고 절대적인 힘의 차이가 있는 두 문명이 충돌할 때 약자가 직면하는 ‘문명의 몰락’도 생생히 느끼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렇게 몰락한 문명이 잉카 문명이다.

공기도 불평등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수도는 라파즈다.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가난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공기마저 불평등할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라파즈는 안데스 산맥의 알티 플라노(Alti Plano) 대평원의 한가운데 위치한 해발 4000m의 고지대로, 상하로 길게 뻗어 있는 도시다. 다른 수도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도시만의 특징은 해발 3900m의 아래쪽은 다국적 기업과 대사관을 비롯해 외국인과 이 나라의 부호들이 살고, 4100m의 알토 라파즈(Alto La Paz)에는 안데스 시골에서 도시로 나온 인디오들이 슬럼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해발 200m를 사이에 두고 공기의 질이 다르다. 그리고 공기의 차이는 소득 불평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곳에서 살다 보면 해발 4000m는 인간이 숨 쉬는 공기의 느낌을 다르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4000m?아래에서 숨 쉬는 것은 고지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견딜만하지만, 그 이상에서는 호흡곤란이 느껴진다. 특히 낮시간과 달리 수면시간에 느끼는 호흡곤란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낮은 곳에서 있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고지대 인디오들과 달리 라파즈를 처음 방문했거나 저지대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특히 그렇다.

4100m의 알토 라파즈는 가난한 인디오들이 시골에서 나와 삶을 정착하는 곳이다. 안데스 인디오들에게도 산업화와 도시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70년대에 농촌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듯 지금 이곳도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디오들이 무작정 상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세대 전 한국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무허가 판자촌에 정착했듯 안데스 산록에서 라파즈로 이사 온 가난한 인디오들이 자리 잡는 곳도 소음이 심한 공항 근처의 무허가 슬럼가다. 저지대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슬럼가로 형성된 알토 라파즈에서 숨 쉬고 생활하는 것을 견디기 힘든 고역으로 생각한다. 라파즈에서는 소득 격차가 공기의 질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프란시스코 성당에서 잉카 문명으로 출발

고지대와 저지대 두 지역의 중간에는 라파즈의 프란시스코 성당이 있다. ‘라파즈’라는 말은 에스파냐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이 성당은 보통 미사 시간에만 개방되는 볼리비아의 다른 성당들과는 달리 낮 동안은 하루종일 열려 있다. 산소마저 희박한 이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는 오히려 평화의 영성을 느끼게 한다. 미사 때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디오들이고, 이들은 16세기 이래로 가톨릭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티티카카 호수에서는 가두리 송어 양식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해발 4000m에서는 물고기에 세균이 번식할 수 없어서 별도로 약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선한 송어회를 먹을 수 있다. 사진/임채원 선임연구원

그러나 라파즈에서 차량으로 4시간 정도를 가면 전혀 다른 문명을 느끼게 하는 곳이 있다. ‘티티카카 호수(Laguna Titicaca)’와 그 한가운데에 잉카 문명을 품고 홀로 떠 있는 ‘태양의 섬(Isla del Sol)’이다. 라파즈에서 출발한 차는 티티카카 호수에 닿을 때까지 넓은 평원을 달린다. 히말라야 산맥 등 다른 고지대는 험준한 산악의 높낮이 차이가 심해 차로 가기 힘들지만, 라파즈 근처는 끝도 없이 평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태고의 어느 시점에 평지가 그대로 융기해서 해발 4000m 고지대 평원을 형성했다.
차로 달리는 동안 알티 플라노의 평원은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들다. 관목도 자랄 수 없는 삭막한 사막과 같다. 더구나 저지대보다 적은 산소는 호흡곤란으로 사람들을 천천히 움직이게 만든다. 고대 중동의 구도자들이 도시를 벗어나 스스로 사막으로 들어가서 절대 고독을 선택했던 것처럼 잉카 문명을 만나러 가는 길은 순례자의 심정이다. 그 길은 엄숙한 태고의 문명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차로 달려 호수에 가까워지면 평원에서 볼 수 없었던 키 큰 나무들이 등장한다. 유칼립투스(Eucalyptus)는 해발 4000m 이상 나무가 자라기 힘든 조건 속에서도 호수의 수분과 자양분으로 소나무보다 더 큰 키로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방문객을 잉카 문명의 신비 속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처럼 보인다.

남극의 진눈깨비가 범접하지 못하는 티티카카 호수

태양의 섬으로 가는 여행의 최적기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때다.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남반구에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이다. 이 시기에 볼리비아는 전형적인 우기에 들어간다. 산타 크루즈와 같은 저지대에서는 이 시기에 남극에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Surazo)의 진눈깨비를 볼 수 있다. 위도 15도의 아열대 지역에서 남극의 바람을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특이한 경험이다. 한국인들은 위도 38도에 살아서 북극에서 직접 불어오는 진눈깨비를 체감하지는 못하고 산다. 그런데 볼리비아에서는 아열대 기후에서도 남극의 진눈깨비를 한여름에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 펼쳐진 대평원인 팜파스(Pampas) 덕분이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은 바다를 지나 아르헨티나에 상륙하고 볼리비아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지형지물에도 가로 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바람은 남극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한 뒤에 그대로 한걸음에 아열대의 볼리비아까지 도착한다. 그야말로 대자연의 힘이 만든 신비로움이다.

남극에서 볼리비아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바람은 안데스 산맥에 막혀 사라진다. 라파즈에서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동안에 간간히 차창으로 비가 몰아친다. 이 우기는 오히려 태양신을 숭배한 잉카 문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한해 중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반드시 낮 시간이 가장 긴 하지 때 행해졌다. 잉카 달력으로 일년을 시작하는 날은 하지였다. 지금도 안데스 인디오들은 하지를 일년을 시작하는 생각해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인디오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는 태양신을 기리는 하지 행사에 직접 참여해 잉카 문명의 고유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서양의 가톨릭이 아니라 인디오의 잉카 문명에 있다고 자각해서다.

티티카카 호수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라는 도시에 있다. 잉카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코파카바나에서 배를 타고 태양의 섬으로 가는 뱃길은 안데스 인디오들에게는 태양신을 만나러 가는 신비의 길이었다. 한국의 여름 해변과 달리 볼리비아 여름의 티티카카 호수는 소금기를 느낄 수 없다. 동력선을 타고 30분 정도 제주도보다 더 큰 면적의 호수를 가로질러 태양의 섬에 도착하면 기원전 3000년으로 잉카의 흔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는 80여곳에 이른다. 이 섬은 아직도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인디오들에게는 이 섬은 여전히 경배와 숭상의 대상이다. 태고부터 인디오들은 이 섬에서 태양신을 숭배했다.


태양의 섬에서 내려다본 티티카카 호수의 모습. 강한 적외선의 햇볕과 담수호의 물기가 어우러져 정말 태양신이 실재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 맑은 하늘로 유명하다. 사진/임채원 선임연구원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태양의 섬

종교를 정신·철학적 산물이 아니라 몸으로부터 받는 기운과 신체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태양의 섬의 그 진가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섬의 부두를 출발해 산 언덕을 넘을 때까지 잉카 문명이 만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게 되면, 해발 4000m의 숨 가쁜 호흡에 더해져 잉카인들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잉카인들이 일년의 시작으로 본 한여름의 하지 때를 전후로 이 섬의 태양은 가장 빛나고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대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해가 지고 섬에서 보는 밤하늘의 달은 그 자체로써 신비다. 그리고 새벽에 잉카인들이 그랬듯이 일출을 기다리며 호수의 물과 그 너머에 있는 산록을 보면서 위대한 태양신을 맞이하는 장엄한 의례를 현대인들도 체험할 수 있다. 섬에서 맞는 일출을 보고 있으면, 잉카인들이 왜 그 오랜 시간 동안 줄기차게 이 섬을 태양의 섬으로 신성하게 여겼는지 깨닫게 된다.

태양의 섬에서 잉카인들은 태양과 달을 통해 대자연의 신비와 그를 넘어선 영성을 체험했다. 그들의 내면세계를 예술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화가가 볼리비아의 국민화가 로베르토 마마니마마니(Roberto Mamani Mamani)다. 코차밤바(Cochabamba) 출신의 이 화가는 프랑스와 제네바 등 유럽 예술계에서 잉카의 원색적인 태양과 달을 형상화한 그림으로 주목받았다. 한국 화가 중에서 이응로 화백이 프랑스 화단에서 명성을 날렸던 것 못지않게 마마니마마니는 잉카 문명을 보여주는 화풍으로 공감을 얻고 있다.

마마니마마니의 주제기도 한 ‘태양과 달’은 잉카 문명에 고유한 주제 의식이다. 잉카의 신화에서는 태양과 달이 태양의 섬에서 결혼, 티티카카 호수 속으로 밀월여행을 떠나면서 인류를 창조했다고 한다. 태고의 신비를 머금은 섬에서 태양과 달은 인간에게 대자연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 존재를 느끼게 하고, 인디오들은 그 초월성 속에서 인간이 탄생했다고 믿는다. 잉카 문명의 천지창조와 인류의 탄생은 신화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기원까지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시작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추픽추의 잉카제국으로 발전했다.

한때 캐나다 업체가 티티카카 호수와 태양의 섬에서 자원개발을 시작했다가 인디오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신성한 영산(靈山)을 훼손할 수 없다는 인디오들의 신앙이 개발을 저지한 것이다. 비록 이들은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 당했지만 그들의 정신 속에는 여전히 잉카의 기억이 남아 있다. 가톨릭에서도 예수보다도 성모가 더 크게 인디오 신앙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잉카 문명의 지모신 신앙 덕분이다.


태양과 달 등 대자연의 원색적인 느낌을 살린 로베르토 마마니마마니(Roberto Mamani Mamani)의 그림. 프랑스 등 유럽 화단에서 잘 알려진 이 볼리비아 화가는 잉카 문명의 생명력을 강렬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임채원 선임연구원

에콰도르 헌법에 나타난 자연의 권리

잉카 문명은 역사 속으로 퇴장했지만, 안데스 국가들의 헌법 속에서는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 2008년에 에콰도르는 개헌을 하면서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켰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생존하는 권리를 부여했지만 자연의 권리로까지 확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에콰도르 헌법은 인간을 넘어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서 선언한 것이다. 이 조항을 권유한 것은 인디오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는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였다. 에콰도르의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가 이 권유를 받아들인 것 역시 안데스 인디오의 고유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코파카바나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가 있다. 에스파냐 식민당국은 잉카 문명의 발생지인 티티카카 호수와 태양의 섬으로 가는 길목에다가 성당을 세워 잉카의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이 성당에는 인디오의 형상으로 표현된 ‘검은 성모(Black Maria)’가 있다. 백인의 형상을 한 전형적인 성모상에 반발한 인디오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라파즈에서 태양의 섬까지 가는 동안 문명의 충돌과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디오의 문화를 만나게 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빠진 현대인들이 일상을 벗어나 대자연과 다른 문명으로 여행을 꿈꿀 때 태양의 섬으로 가 보길 권한다. 태양의 섬까지 가는 몇 시간과 그곳에서의 하룻밤은 인류와 문명에 대해 성찰해보는 값진 시간이다.


‘검은 성모’가 있는 코파카바나의 성당. 에스파냐 식민당국은 인디오들은 성지 근처에 가톨릭 성당을 만들었지만 인디오들은 성모상을 백인이 아닌 인디오의 모습으로 형상화해 표현했다. 사진/임채원 선임연구원

임채원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