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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트럼프 네거티브에 힐러리 너덜너덜해질 것 / 김동석(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홍일표(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19 5월 [IF Media] 트럼프 네거티브에 힐러리 너덜너덜해질 것 / 김동석(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홍일표(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트럼프 네거티브에 힐러리 너덜너덜해질 것]

출처: 프레시안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트럼프 막말은 철저한 계산

설마설마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후보 확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지난 3일(현지 시각) 열린 인디애나 경선 직후 사퇴하면서 트럼프 후보는 공화당에 남은 마지막 대선후보가 됐다. 17일(현지 시각) 오리건 주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트럼프는 7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을 두고 재미 한인 민간단체 시민참여센터(KACE)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트럼프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철저하게 전략적인 캠페인의 성공”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에서 한인 풀뿌리 유권자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 이사는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 ‘소수계 전략팀’에 참여하기도 했을 정도로 미국 정가와 정치 생리에 익숙하다.

그는 이번 경선 기간 중 총 11곳의 트럼프 유세장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트럼프를 관찰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막장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실제 김 이사는 유세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트럼프의 인기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비롯된다. 백인들로 가득 찬 유세장에서 그들의 분노를 건드리는 방식이다. 김 이사는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백인들에게 ‘너희들이 직업이 없고 힘든 이유가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때문이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막말은 아니라는 것이 김 이사의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천박하게 해야 지금까지 정치에 별로 관심도 없고 조용히 있었던 공화당 내의 백인 중하층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온다”면서 “실제 이것이 백인들에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나름 계산을 해서 내뱉은 막말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과연 트럼프는 이러한 기세를 몰아 본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까? 당선 가능성에 대해 김 이사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트럼프를 꺾고) 너덜너덜하게 백악관에 입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미국 대선의 최대 화두는 트럼프고, 그가 일종의 바람을 타고 있는데도 왜 당선 가능성은 클린턴 전 장관이 더 높은 것일까? 김 이사는 “트럼프의 정치적 어젠다는 현재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최종적으로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트럼프를 중심으로 공화당의 선거 체제가 잘 짜여질지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미래연구소에서 홍일표 사무처장과 함께 대담 형식으로 진행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트럼프 유세 현장에서 유색인이라 쫓겨났다

프레시안 :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 대선 후보가 사실상 확정됐다. 그리고 이번 미국 대선의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다. 현재 미국 내 대선 분위기는 어떤가?

김동석 : 일단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번 대선 경선의 실제 내용과 언론 보도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데 있다. 특히 미국 주류 언론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흐름을 주도해 나가야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즉, 현실에 기반한 보도를 하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 이 판을 만들어나가야 할지를 함께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굴절된 보도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외신을 많이 참고한다. 미국 유력 신문에 나온 제목을 거부할 수 있는 한국 언론 데스크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 보고 듣고 알게 된 사실과 한국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오는 것 사이에 차이가 컸다.

이는 8년 전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던 현상이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한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미국 대선은 실제 ‘흐름’이 결정한다. 지금 상황이 8년 전의 재판인 것 같다. 트럼프를 보는 시각에 ‘리얼리티’가 너무 없다.

트럼프는 화제가 되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모든 뉴스에 중심에 서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은데, 트럼프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철저하게 전략적인 캠페인의 성공이라고 본다.

실제 트럼프 유세를 보면 말도 앞뒤가 맞지 않고 막장 발언도 많다. 이번에 공화당 경선을 할 때 트럼프 캠프 유세만 11곳을 쫓아다녔다. 트럼프의 유세 발언을 보면 정말 놀랄 정도다. 예쁜 여성이 있으면 “내가 이것만 하지 않았으면 너를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둥, 딸한테도 “딸만 아니었으면”이라는 둥 입에 담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 뱉어낸다.

트럼프는 유세장에 모인 백인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유세장에 온 백인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당신 힘들어 보인다. 직업은 있냐?”라고 묻는다. 그러면 그 백인이 “없다. 2년 동안 실직한 상태다”라고 한다. 그러면 트럼프가 “그럼 그동안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나? 실직 수당은 받았나?”라고 되물으면서 “그런데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쟤들 때문이야”라며 히스패닉이나 아시아인들을 지목한다. 그리고 나서 그 백인에게 고맙다며 100 달러를 준다.

아이오와에서 코커스가 열렸을 때 나는 트럼프 유세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실제 트럼프 유세장에는 백인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 히스패닉과 다른 인종들을 싸잡아 욕하면 인기가 올라간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막말은 아니다. 이렇게 천박하게 해야 지금까지 정치에 별로 관심도 없고 조용히 있었던 공화당 내의 백인 중하층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말들이 학력이 낮고 시골에 거주하는 백인들에게 먹힌다. 나름 계산을 하고 내뱉은 막말인 셈이다.

트럼프는 예비 선거용 캠프를 여러 개 만들었다. 예선에 이기지 않고 본선에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거의 ‘올인’을 했다. 맨 처음 경선 지역인 아이오와주에서 이기려면 어떤 캠프가 투입돼야 하는지 계산하고 선거 운동을 진행한 것이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숨어있는 표를 공략해 성공했는데, 당시 겉으로 드러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힐러리 클린턴 편이었다. 그런데 오바마가 침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냈고, 여기에 오바마가 흑인이다보니 비(非)백인 사람들까지 오바마를 지지하게 됐다.

프레시안 : 지금 가장 난처해진 것은 공화당 지도부 아닌가? 마지막으로 뒤집을 수 있는 기회인 ‘중재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로 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김동석 :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 공화당 지도부와 트럼프가 협상을 하고 있지만 이걸로는 해결됐다고 보지 않는, 보수의 가치를 금과 옥조로 여기는 공화당 그룹이 있다. 공화당 지도부가 이 그룹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문제다.

물론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트럼프가 만난 것 자체가 양측이 이미 절반의 합의는 봤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라는 전문가의 진단도 있는데, 보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공화당 주류는 2008년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이들은 매케인을 정통보수가 아닌 외곽에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확실하게 밀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들이 트럼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는 7월로 예정된 대선후보 출정식인 클리블랜드 전당대회는 제대로 치러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른 측면으로는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양자대결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처음에 트럼프가 공화당 내 경선을 시작할 때만해도 공화당 후보로는 어림도 없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가 공화당의 후보가 되면 힐러리가 손쉽게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월 9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 후보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26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 메릴렌드, 델라웨어,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등 동부지역 5개주 경선을 트럼프가 싹쓸이하고, 이후 라스무센이 2일(현지 시각)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41%의 지지율을 얻어 39%를 얻은 힐러리를 2% 포인트 앞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 라이언 의장을 중심으로 하는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와 협의하는 것은 순전히 트럼프의 경쟁력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 캠프는 ‘어? 트럼프도 괜찮네. 이길 수 있겠네’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가 본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공화당 주류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를 포기하고 트럼프를 지지할 거란 뜻인가?

김동석 : 그런데 트럼프의 정치적 어젠다는 현재로써는 없다고 보는게 맞다. 최종 대선 후보를 지명하는 클리블랜드 전당대회가 잘 마무리되고 트럼프가 최종 후보로 확정되면 선거운동은 당에서 접수한다. 여기서 정책이 나오는건데,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트럼프는 공화당 어젠다를 가지고 본선에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됐을 때 본 선거를 위한 체제가 트럼프를 중심으로 전략적으로 잘 짜여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는 트럼프다운 전략 때문에 이겼는데 그게 아닌 다른 전략으로 힐러리와 붙어야 한다. 일단 트럼프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문제고, 트럼프가 본인의 노선을 고집하면 선거에 숙달된 공화당 사람들이 트럼프 캠프에 결합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트럼프가 공화당 어젠다를 가지고 가면 말을 바꿨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트럼프만 말을 바꾼 건 아니니까.

 

트럼프 현상 이해하려면 민주당을 봐야

홍일표 : 트럼프가 하는 행태가 기이하지만 사실 부시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하물며 오바마도 말을 바꾸지 않았느냐며, 트럼프의 말 바꾸기가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면서 공감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보자면, 힐러리와 트럼프는 재산으로 보면 비슷하지만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극단에 서있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트럼프는 소위 말하는 주류 정치인 ‘워싱턴’ 정치에 반대한다는 비슷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세 사람이 얼키고 설켜서 공방하는 구도인데,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분노한 백인’의 특수한 상황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불만을 대변한 것으로 봐야할까?

김동석 : 사실 트럼프 현상은 앞으로 바로 잡아야 할 문제다. 한 집단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리더십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을 짚어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민주당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현상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정당정치를 보면 정당이 재편성되는 일정한 주기가 있다. 정치권이 사회 구조 변화를 적절히 담아서 이를 리드해나가야 하는데, 이 변화가 더디고 느렸기 때문에 이번 대선 경선과 같은 상황이 왔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응이 달랐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진단하고 어느 정도 준비를 했다.

민주당의 변화과정을 보려면 1992년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거를 치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는 당시 아버지 부시 현직 대통령과 맞붙은 선거에서 보수적인 정책이라고 해도 표를 받을 수 있으면, 소위 인기가 있다고 생각되면 다 가져다가 썼다. 민주당 좌측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클린턴은 여기저기서 온갖 파편을 다 주워 담은 셈이었다.

여기서 민주당의 전통적인 세력과 클린턴 전 대통령 간에 간극이 생겼다. 민주당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후 8년이 지나 2000년 민주당은 앨 고어 부통령이, 공화당은 아들 부시가 후보로 맞붙었다. 당시 앨 고어 후보는 지구 온난화 같은 글로벌한 환경 이슈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민주당 내에서 봤을 때 앨 고어도 국내적인 이슈에서는 예전 사람이었다. 그래서 앨 고어로는 안 된다며 민주당 내 경선에서 치고 나온 사람이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이었다. 브래들리는 민주당이 가져가야 할 노선이 있다고 밝혔는데, 소위 ‘마이너리티’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봤다.

이때 스마트한 아시아인 2세들이 정치권에 많이 등장했다. 나도 이때 미국 대선 경선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는데, 미국의 어젠다는 당의 경선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당의 정강과 정책이 나오고, 최종 대선 후보 지명 때 앞으로 4년동안 당의 노선이 무엇인지 공표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브래들리가 치고 나갔지만 앨 고어를 이기지는 못했다. 이후 2001년 말~2002년 초에 민주당의 정리된 대중 외곽 단체를 만들자고 해서 풀뿌리 정치 조직인 ‘무브온'(Move on)이 결성됐다. 이를 주도한 하워드 딘은 2004년 대선 경선에 참여했으나 존 케리 당시 상원의원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딘은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부르짖으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국제투기자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미국사회의 보수화 경향을 비판하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는 인기영합주의로 당의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당의 강령과 정책을 파편화 시킨 클린턴식 민주당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었다.

결국 그의 이러한 노력은 4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열매를 맺었다. 민주당이 정체성 확립을 시작했던 2000년 빌 브래들리 바람이 2008년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민주당에는 일정한 주류가 형성됐다.

그래서 이들 입장에서 보면 힐러리 클린턴은 10년 전으로 후퇴하는 후보가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이 흐름을 만들어 온 민주당 주류 세력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힐러리를 막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린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 때 민주당의 전략가들은 2008년에 흑인, 2016년에는 여성 대통령이 되어야한다며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을 후보로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워렌 의원은 일찌감치 대선 경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표주자를 잃어버린 이들은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했고 이것이 결국 샌더스에게로 집중됐다. 그러니까 샌더스의 인기는 갑자기 확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이러한 큰 흐름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민주당이 이렇게 변화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을 동안 공화당은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테러 후과만 가지고 8년을 해먹었고 네오콘과 에너지 사업을 하는 텍사스의 기업들만이 득세했다.

새로운 시대에서 민주당에 대응할 수 있는 공화당 쪽 노선이 없으니 불만은 내부로 곪기 시작했다. 특히 2006년 연방의원 선거에서의 참패하면서 패인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 와중에 공화당의 젊은 소장파 출신 의원 3명이 공화당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버지니아 출신의 63년생인 에릭 캔터(3선), 위스콘신에서 올라온 71년생 폴 라이언(4선),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61년생 캐빈 맥카티(초선)였다. 겨우 세 명에 불과했지만 공화당을 재건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전국의 각 지역에서 인재를 발굴해서 진정한 공화당원으로 훈련시킨 뒤 선출직에 당선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다.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영 건스'(Young Guns Program)였다.

이들은 연방의회에서 공화당 세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결국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완승을 거뒀고 에릭 캔터는 원내대표에, 케빈 멕카시는 원내총무가 됐다. 폴 라이언은 예산위원회와 세입위원회를 틀어쥐었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같이 나온 세력이 극보수주의 시민들의 집단인 ‘티파티'(Tea Party)였다. 이들은 오바마 정책에 불만을 품었는데, 오바마의 저격수 노릇을 하던 에릭 캔터도 그들의 성미에 부족했는지, 2014년 중간선거에서 예선 탈락했다.

티파티는 공화당 내의 40여 명의 하원의원을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로 단단하게 조직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티파티를 등에 업고 올라온 극성스러운 이들 때문에 결국 하원의장 자리를 던져버렸다.

이러면서 티파티에는 새라 페일런 알래스카 주지사 같은 강경 보수만 들어가게 됐고, 이들과 성향이 다른 공화당 지지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홍일표 : 헤리티지 재단이나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와 같은 보수적이고 공화당에 친화적인 싱크탱크들도 자체적인 어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김동석 :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싱크탱크에는 거품이 많다. 2008년 월스트리트가 망했을 때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들이 눈을 해외로 돌렸다. 미국 내에서 더 이상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2009년, 2010년부터 다른 나라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고 그곳의 이익에 복종해갔다. 그래서 결국 싱크탱크도 법으로 규제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반면 민주당 쪽은 좀 사정이 다르다. 힐러리의 최측근인 존 포데스타가 일찌감치 민주당 쪽의 어젠다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가 필요하다며 2003년 ‘미국 진보센터’를 만들었다. 이러한 싱크탱크로 어젠다 연구를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공화당 성향의 싱크탱크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힐러리, 너덜너덜하게 백악관 입성할 듯

프레시안 : 선거일인 11월까지 아직 6개월이나 남아있긴 하지만, 현 시점에서 보자면 힐러리와 트럼프 중에 대통령으로 누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동석 : 힐러리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백악관에 들어갈 것 같다. 트럼프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할 것이다. 트럼프의 측근인 ‘로저 스톤’이라는 로비스트가 여전히 트럼프 옆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네거티브와 공작의 달인이다.

로저 스톤과 관련한 일화가 있는데 그의 계략으로 민주당의 촉망받는 정치인인 엘리엇 스피처는 뉴욕 주지사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다.

‘월스트리트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며 뉴욕 검찰총장을 지낸 이후 뉴욕 주지사 선거에 당선된 엘리엇 스피처는 주지사 다음은 백악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물’이었다. 그런데 당시 상대 후보였던 공화당 조셉 브루노 상원의장의 선거운동 담당자가 로저 스톤이었다.

그는 주지사 선거 이후 미인계를 썼다. 워싱턴 D.C에서 엘리엇이 자주 묵는 호텔에 성매매 여성을 투입해 잠자리를 갖게 했다. 로저 스톤은 엘리엇이 성매매를 했다면서 FBI에 이를 제보했고 결국 주지사 자리에서 그를 낙마시켰다.

이런 로저 스톤이 지금 트럼프 옆에 있다. 그리고 힐러리는 개인 이메일 사용, 리비아 뱅가지에 위치한 미국 영사관 습격 사건, 클린턴 파운데이션 운영 등 상대에게 빌미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약점이 있다. 로저 스톤은 이러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홍일표 : 힐러리가 최종적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면 샌더스 지지자들이 본선에서도 힐러리를 지지할까? 아니면 워싱턴 정치를 뒤집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트럼프 지지로 돌아설까?

김동석 : 그 부분이 선거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트럼프 측에서는 힐러리가 후보가 될 경우 샌더스 지지자들이 본선에서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가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대선은 완벽한 승자독식제다. 그래서 5~6개 주의 선거 결과로 결판이 난다. 이런 주를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라고 부르는데, 이들 주에서 샌더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트럼프가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프레시안 : 그러면 반대로, 트럼프 입장에서 당선 가능성을 따져보자. 트럼프가 공화당이라는 말에 순조롭게 올라타면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나?

김동석 : 순조롭게 올라탈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실제 197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1972년 민주당 내에서는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과 휴버트 험프리 전 부통령이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맞붙었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때 반전·평화 등의 메시지를 담은 것은 맥거번 상원의원이었다.

당시 주류는 험프리 전 부통령이었다. 민주당은 맥거번 의원이 흐름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데, 지금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를 대하는 것처럼 맥거번을 계속 누르기만 했다. 경선이 막상막하로 펼쳐지는 가운데 시카고에서 최종 후보 지명 전당대회를 열었는데 이 때 충돌이 생겨서 실제 사람이 죽는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후보는 맥거번이 됐지만 본선에서 리처드 닉슨 현 대통령에게 완패했다. 민주당에서는 공화당의 클리블랜드 전당대회에서 예전에 자신들이 겪었던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예측를 하는 사람도 있다.

홍일표 : 그동안 미국 대선 결과를 봤을 때 중요한 변수는 비(非)백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히스패닉을 포함한 이민자 그룹의 지지를 얼마나 얻어내느냐가 중요한 변수였다. 특히 최근 미국의 인구 구성 비율이 백인이 70% 이하로 낮아졌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백인의 지지에만 기대를 걸고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이 선거 전략 상 맞지 않는 측면이 있지 않나?

김동석 : 사실 미국 유권자 전체로 보면 민주당으로 등록돼 있는 유권자가 더 많다. 대신 공화당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좀 높다. 그래서 선거를 치르면 박빙이 되는 것이다.

백인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가지고 있는 당적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당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양측 후보가 박빙이고 부동층에서 비백인들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는 그동안 카운트가 되지 않던 공화당 내 침묵의 다수를 이끌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계의 캐스팅보트는 그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아무리 히스패닉이 늘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절대다수는 백인이다.

홍일표 : 실제 공화당 기축세력이 걱정하는 것은 11월에 있을 연방 의회선거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권력의 핵심은 의회인데 현재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인 상황에서 트럼프가 계속 저렇게 나가면 의회 권력을 뺏길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지금 공화당 의회 의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공화당 일부에서는 미국 정치의 구조로 봤을 때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면 백악관을 차지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김동석 : 대선이랑 의회선거는 같이 간다. 아무리 대통령을 인물을 보고 뽑는다고 하더라도 유권자의 대부분은 정당 투표를 한다.

게다가 연방의원 후보로 나온 사람들은 결국 자기 지역구에 있는 유권자들의 뜻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편이라고 여겼던 이른바 ‘슈퍼 대의원’들이 결국 대세를 따라 오바마 지지로 돌아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A라는 지역구에서 오바마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고 치자. 그런데 이 지역의 연방 상원의원 후보가 오바마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 이 사람은 영락없이 떨어진다. 2008년 경우 오바마 바람이 불었는데, 이때 슈퍼 대의원에 속하는 상원의원들은 처음에는 힐러리를 지지했지만 결국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다. 본인의 선거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누가 바람을 일으키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연방 의원선거는 이런 바람, 흐름과 같이 간다. 따라서 트럼프 현상이 연방의원들 때문에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트럼프 때문에 연방의회가 바뀔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고립주의? 돈 되는 일이면 물불 안 가릴 것

프레시안 :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주장이 버니 샌더스의 노선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군사력을 앞세운 외교정책보다 당장 미국인들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고충에 주목한다는 측면에서다. 샌더스를 비롯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성정치가 트럼프 현상에서 목격한 미국 사회의 변화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동석 : 트럼프의 말에 대해 꿈보다 해몽을 더 좋게 해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웃음) 트럼프는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다. 그는 특정한 나라에 돈벌이가 된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이다.

트럼프는 돈벌이가 중심인 사람이다. ‘미국의 힘을 가지고 돈을 벌자’는 것이다. 학자들 입장에서는 이걸 보고 개입주의냐 고립주의냐 따질 수는 있겠지만.

홍일표 : 그런데 트럼프의 대외 정책이 널뛰기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IS(이슬람 국가)는 격퇴하겠다고 하면서 기존 동맹국가들에게는 방위비를 내놓으라고 하며 미국이 왜 제국으로서 부담을 가져야 하느냐고 말한다.

이러한 정책에 일본이 굉장히 놀라고 있고 우리는 돈을 더 내라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또 트럼프가 중국 관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전체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트럼프의 등장을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동석 : 트럼프는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유지를 비롯해서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군들이 쓰는 돈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대외관계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지켜주는 나라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일본이 안정된 것은 미국이 태평양을 지켜줬기 때문인데 상황이 바뀌면 일본에게는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개인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제일 증오스러운 국가일 것이다. 이건 정책적인 측면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사업 문제, 즉 맨해튼 개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맨해튼은 부자들에겐 살기 참 좋은 곳이었다. 허드슨강이 있고 대서양 쪽 경치도 좋고. 그런데 이런 곳에 부자들만 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해서 아파트를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을 입주시켰다.

그런데 공화당 쪽으로 권력이 바뀌면서 이런 프로젝트 아파트를 없앴고 개발 수요가 나오기 시작했다. 맨해튼에서 비즈니스를 하던 트럼프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이때 일본의 자금이 맨해튼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일본이 돈으로 맨해튼을 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트럼프 입장에서는 자기 돈벌이를 일본이 가져간 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유세장을 다녀본 결과 트럼프는 실제로 보면 언론에 비춰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막장이다. 현장에서 트럼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트럼프가 뭘 준비해서 하는 이야기들이 전혀 아니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도 많고, 과대 포장된 측면도 있다.

실제 트럼프 캠프에서 외교정책과 대외관계, 국제정책 등을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해 살펴보고 싶어도, 그렇게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정리돼서 제대로 나와있는 자료가 없다. 트럼프 옆에서 외교·군사·안보 문제와 관련해 자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할 때, 가능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홍일표 : 힐러리가 당선되면 오바마의 대외 정책을 유지·계승하는 것이냐는 부분도 관심거리다. 만약에 오바마의 대(對)아시아 외교나 한미관계 등의 현안이 그대로 가면 우리에게 별로 좋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동석 :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오바마를 욕하는 것은 기대를 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때가 아니냐는 시각이라면 힐러리가 되는 것이 좀 더 긍정적일 수 있다.

힐러리는 오바마가 가지고 있던 대외정책을 그대로 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힐러리의 정책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임 마지막 해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남북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힐러리가 되면 지금처럼 꽉 막힌 북미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또 힐러리는 전공이 대외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경험으로 훈련이 잘 돼 있다. 안목도 있고 추진력도 있어서 자신만의 대외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힐러리에게 더 기대할 게 있다.

실제 북한과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도 있다. 한국전쟁 참전군인 출신인 찰스 랭글 하원의원(민주당, 뉴욕, 23선)이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은퇴 이후 전쟁을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에서 평양에 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종전 결의안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여기에 민주당 정권이 4년 더 이어질 조짐이 있다 보니 오바마 정부가 대외정책을 좀 더 의욕적으로 가져가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본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막판이라고 일을 안 하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든 속도가 날 것이라는 생각도 좀 든다. 위기일 때 극적으로 돌파구가 생기는 것 아닌가? 물론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미국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해온 것으로 안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이 조속한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밀어붙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인데,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도 채택해놓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건 잘 이해가 안 된다.

김동석 : 미국 의회의 외교위원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미국이 언제 위안부 협상하라고 했냐”라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일본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그게 그말인데, 2015년이 가기 전에 일본과 잘 지내려면 위안부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결의안을 채택한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본이 있는 상황에서 연방 하원의원들이 만장일치의 결의안을 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사건이었다.

나는 위안부 문제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기보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 미국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슈라고 생각했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서 결국 결의안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집권했고 결국 2015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의회에 와서 위안부를 부인하는 사람이 연설을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했는데 지난해 국무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의 정서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2014년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를 모시고 백악관을 찾았다. 백악관에서는 면담을 잘 끝내고 나왔는데 국무부가 문제였다.

국무부 담당자가 저랑 만나서 하는 말이 위안부가 왜 인권 이슈냐고 따졌다. 또 당신이 미국 시민이냐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한인들 부추기는 것 아니냐며, 서울에서 하지 왜 여기서 이러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일본이 이런 식으로 치고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이기기 위한 전략을 좀 더 진지하고 치밀하게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위안부 문제 역시 확실한 시민사회의 인권 이슈로 못박아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위안부 합의가 저렇게 나온 것도 사실 미국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부차관이 과거를 덮고 가자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2~3년 동안의 꾸준한 프로젝트 결과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평화공원 방문 역시 3년 프로젝트였다.

프레시안 :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범 국가인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동석 : 미국의 대통령이 핵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히로시마에 방문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현재 아베 총리가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초에 핵 없는 세상을 외쳤을 때, 역사 왜곡 시도를 벌이는 아베 총리가 집권하지 않았을 때 갔어야 했다.

어쨌든 우리로서는 이런 부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단기적인 핵 협상 외에도 대미 관계에서 3, 5, 7, 10년짜리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세련된 전략으로, 디테일하게 계획해서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