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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한국 보수의 ‘위기’…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최병천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21 7월 [IF Media] 한국 보수의 ‘위기’…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최병천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최병천의 레짐체인지 한국 보수의 ‘위기’…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 조선Biz

 

‘정책혁신가’로 불리길 원하는 최병천 전 국회의원 보좌관이 [최병천의 레짐체인지] 연재를 시작합니다. ‘박정희 경제체제’에서 ‘창조형 경제체제’로 이행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가 뭔가 한계에 부딪친 상황인 것은 분명한데, 보수도 진보도 모두가 공감할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정희식 성장방식, 박정희식 경제시스템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은데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체제는 막연하기만 합니다.

재벌로 대표되는 ‘세습형 부자’와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혁신형 부자’로 나눠보면 혁신형 부자가 성공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당연합니다. 이를 위해 규제체계, 교육, 노동시장, 산업-기업정책, 금융정책, 사회안전망 등의 제도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제언합니다.

최 전 보좌관은 세월호 사건, 옥시 사건, 전관예우, 낙하산 등을 초래한 근본원인을 ‘관료의 규제권력 독점’으로 봅니다. 관료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통해서만 해결되었듯, ‘규제권력의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규제권력 민영화’의 정책적 실체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디스커버리 제도 등이며, 이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편집자 주]

2011년 가을, 문득 홀연히 나타난 기업인 출신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는 ‘안철수 현상’을 통해 한국정치판 전체를 흔들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지지율 5%에 불과하던 시민운동가 박원순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총선과 대선기간 동안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을 위협했다.

그런데 2016년 4.13 총선에서 안철수 현상에 못지 않은 ‘이례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영남 지역에서 야당 성향 국회의원이 대거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야당 성향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경북 지역을 분모에서 제외하고 부산·울산·경남·대구에 국한해서 야당 성향 당선자의 비율을 살펴보면 그 비율이 무려 25.4%에 달한다. (*경남 창원의 정의당 소속 노회찬 후보, 울산 북구와 동구의 진보정당 출신의 무소속 윤종오 후보, 김종훈 후보, 대구의 홍의락 후보를 포함시켰음.)

3당 합당 구도의 균열 조짐 – ‘부·울·경·대’에서 야당 당선자 비율은 25.4%

경북을 논외로 하면, 영남지역에서 야권성향 후보의 당선자는 4명 중 1명꼴이다. 영남 지역에서 야권성향 후보의 당선 비율이 무려 25.4%라는 것은 ‘1990년 3당합당 구도’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일시적인 균열인지 구조적인 균열인지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에 대한 정당별 득표율(이하 ‘정당득표율’)도 매우 놀랍다. 역대 새누리당 계열 정당이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받았던 정당득표율이 38%였다. 그리고 자민련의 득표율이 약 2%였다. 합쳐서 40%는 새누리당 계열 정당의 ‘미니멈’으로 받아들여졌고, 동시에 범보수 정당의 미니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번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33.6%를 받았다. 즉, 새누리당 계열 정당의 미니멈으로 간주되던 40%의 정당득표 비율이 무너졌다.

이번 4.13 총선에서 정당별 득표율은 새누리당 33.6%, 국민의당 26.7%, 더불어민주당 25.5%, 정의당 7.2%이다. 이러한 정당득표율 구도는 1987년 대선 결과와 닮은 구석이 있다. 1987년 대선 득표율은 노태우 36.6%, 김영삼 28.0%, 김대중 27.1%, 김종필 8.1%였다. 이번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 33.6%는 1987년 노태우 후보의 득표율 36.6%에도 미치지 못한다.

4.13 총선 결과 – 꿈틀 꿈틀,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한때 태풍처럼 불었던 안철수 현상, 경북을 제외한 영남지역에서 야당 성향 후보가 무려 25.4%가 당선되는 현상, 3당합당 구도의 균열 혹은 해체 조짐, 새누리당 지지율의 미니멈으로 간주되던 40%의 붕괴, 1987년 노태우 후보의 득표율보다 3% 적은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 이런 현상들이 동시에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 민심의 밑바닥에서, 꿈틀 꿈틀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사회·정치·경제적인 ‘구조’의 뭔가가 뒤틀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즉, 지금 우리 사회가 ‘전환기적 상황’에 놓여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이러한 전환기적 조짐의 실체, 그리고 변화의 동력은 무엇인가. 심층(深層)에서 벌어지는 구조적 변화를 추적하는 하나의 방법은 표층(表層)의 변화를 추적해보는 것이다. ‘정치적 변화’와 ‘사회경제적 변화’의 상호관계를 추적해보는 것이다.

정치는 속성상 사회경제적 변화가 투영되거나 그 변화에 의해 압박 받는 속성을 갖고 있다. 표층의 변화를 통해 심층의 변화에 근접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보수의 위기’이다.

한국 보수의 양대 헤게모니 – 안보와 성장

새누리당 계열의 보수 정치세력이 그동안 정치적 헤게모니를 발휘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역사적 체험’에 근거한 국민적 지지기반에 있다. 바로 ‘안보’와 ‘성장’이다. ‘안보’는 한국전쟁 이후 냉전적 체제대결에서 유래한 것이며, ‘성장’은 농업경제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주도했던 박정희식 경제발전의 체험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크게 ‘안보 보수’와 ‘성장 보수’로 구분할 수 있고, 이들은 각각 헤게모니를 발휘해왔다. 한국 보수의 헤게모니는 안보 보수와 성장 보수의 ‘정치동맹’을 통한 헤게모니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4.13 총선 결과는 한국 보수를 지탱하던 안보와 성장, 두 가지 모두가 근본적인 한계 혹은 위기에 봉착했음을 암시한다.

먼저, ‘안보 보수’의 위기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해, 안보 보수가 어려워진 핵심 이유는 2014년 연말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서 해산되었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왜 안보 보수의 위기를 초래했는가.

통합진보당의 해산 – ‘냉전의 파트너’였던 안보 보수를 위협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한국의 안보 보수는 ‘미션’이 없는 정치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1990년대 중후반 군부독재 세력의 퇴진 이후 그 다음으로 몰락한 세력이 어디인지 연상해보면 자명하다.

한국에서 군부독재가 퇴진한 이후 그 다음에 몰락한 세력은 학생운동 세력이었다. 왜냐하면, 군부독재 세력의 퇴진으로 인해 학생운동 세력의 ‘미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미션이 없는’ 정치세력은 사회정치적인 ‘존재이유’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군부와 학생운동은 군부독재 시대에 존재하던 ‘모순의 대립쌍’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군부독재가 끝나면서 학생운동도 끝나게 됐다.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냉전 진보와 냉전 보수(=안보 보수) 역시 ‘모순의 대립쌍’이었다. 냉전 진보의 몰락이 냉전 보수의 몰락을 촉발하게 되는 근본이유이다. 물론 약간의 ‘시차’는 존재한다.

한국에서 군부독재세력은 1987년 6월항쟁,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하나회 해체, 1995년 5.18 특별법 제정 및 전두환·노태우 구속을 통해 결정적으로 패퇴했다. 학생운동은 바로 뒤인 1996년 연세대사건과 1997년 한양대 사건을 통해 결정적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군부독재의 몰락과 학생운동 몰락의 시차는 ‘2년 내외’에 불과했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이 났다. ‘냉전 진보’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2016년에는 4월 총선이 있었고, 2017년에는 12월 대선이 있다. ‘2년 내외’의 시차는 이번에도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최병천 전 국회의원 민병두 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