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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박원순다움’과 그의 불출마/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01 2월 [IF Media] ‘박원순다움’과 그의 불출마/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홍일표의 미래정치]’박원순다움’과 그의 불출마

출처 :?the 300

설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아침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전 중에 ‘대선 불출마’를 발표할 것이라는 기사가 ‘단독’이라는 꼭지가 붙은 채로 인터넷에 떴다. ‘설마’ 하면서도 ‘혹시’ 싶어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역시 한국 정치에서 더 이상 ‘설마’는 효용을 상실한 단어였다. 주변에서 말리는 이도 적지 않았지만 시장 본인의 결심이 굳었다고 했다. 국회 정론관에서 그간 함께 했던 의원들과 몇몇 지지자들을 곁에 두고 불출마 발표가 결국 이뤄졌다. 그간 몇 차례 ‘사실상’ 출마선언이 있었지만 출마여부에 관한 입장을 밝힌 최초이자 최후의 기자회견이 ‘불출마 선언’이 된 셈이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시청으로 돌아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사실 서울시장을 어렵지 않게 됐기 때문에 정치라는 것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밝혔고, “그동안 확인된 민심을 성찰하고 새로운 시작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서울시장’으로서 달성할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물론 ‘정권교체를 위한 당원으로서의 모든 노력’도 약속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왜 불출마를 선언했을까? 그가 내세운 이유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고?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정치를 잘 몰랐다”는 것이다. 전자가 ‘지지율’에 관한 것으로 읽히는 반면 후자의 의미는 불분명하다. 그가 몰랐다고 말한 ‘정치’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맥락상으로는 그가 비난해 왔던 ‘여의도정치’ 또는 ‘현실 정치’를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박원순 시장(측)에 대해 대선을 치루기 위해 필요한 조직과 전략, (당내) 세력, 확실한 지지기반 등 대통령 선거라는 최대의 승부를 위한 현실 정치 차원의 준비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은 계속 있어 왔다. (사실상의) 대선 캠프 내에서도 그러한 자체 평가가 없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불출마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일 테다. 그런데 이재명 시장이나 안희정 지사가 박원순 시장보다 정치적 준비가 탄탄하고 여의도 정치의 경험이 풍부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박원순 시장이 충분히 몰랐던 정치는 여의도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내걸었던 ‘시민의 정치’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여의도 정치를 모르는 게 문제였다면 나중에라도 배우면 되고, 선수들을 채우면 된다. ‘시민의 정치’는 누구한테 배울 수도 없고, 누군가를 채울 수도 없다. 그가 최선두에 있고, 최정점에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시민의 정치’를 계속 주창하는데 주저했고, 흔들렸다. 작년 9월 북미 순방 과정에서 그는 “다음 정부는 ‘시민의 정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스스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운동가였고, 김대중 정부가 ‘국민의 정부’라 불렸음을 모를 리 없기에 ‘국민’과 ‘시민’의 정치적 의미를 구분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2월 9일 탄핵안 국회 가결 직후 문재인 전 대표는 이를 ‘시민혁명’이라 명명한 반면 박원순 시장은 ‘국민명예혁명’이라 불렀다. 12월 5일부터 연말까지 여의도와 광화문 광장에서 계속되었던 토크콘서트도 ‘시민권력’이 아니라 ‘박원순과 국민권력시대’였다.

‘시민’보다 ‘국민’이라 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 출신 현직 ‘서울시’ 시장이라는 한계와 제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이 채택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일찌감치 말했던 ‘시민의 정부’는 ‘촛불’을 들고 ‘광장’을 메운 바로 ‘그 시민’에 의해 만들어 지는 ‘그 정부’였다. 막상 그가 선택하고 호명한 주체는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었다. ‘대통령감’, 다시 말해 박원순의 ‘대통령다움’에 대한 본인과 주변의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바로 그 순간 ‘박원순다움’은 이미 흔들렸다. 더욱 혼란스러워진 것은 박시장의 1월 8일 전주 발언 때문이었다. “촛불민심은 기득권 세력을 대체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갈망이다. 당의 분열을 불러온 문 전 대표는 적폐 청산의 대상이지 청산의 주체가 될 수 없다”라는 발언이 공개되었다. 많은 이들이 발언 내용을 믿기 어려워했고, 발언 이유를 궁금해 했다. “1등 때리기”를 통해 반등을 노린 전략이라면 그것은 ‘박원순다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발언의 후폭풍이 한창이던 1월 12일 지지자들의 단톡방에 박시장은 “‘박원순다움’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지켜야 하는 가치로 정면승부하는 것이 맞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은 박원순 시장이 “가장 여의도스러운 방식으로 여의도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전대표의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박원순 시장을 아끼는 이들조차 그랬다. ‘박원순다움’을 잃어 가는 모습에 안타까워했고 결과만 아니라 과정 자체를 걱정했다. 그것은 박원순 시장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촛불광장경선과 촛불공동정부라는, 어쩌면 가장 박원순다운 발칙한 상상과 기발한 제안마저 정략적으로 해석되었고, 그리고 거부되었다. 이재명 시장과 안희정 지사조차 이재명답고, 안희정다운 방식으로 말하는 것과도 비교되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둘째로 하더라도.

1월 22일 방송된 한국방송의 ‘대선 주자에게 듣는다’는 ‘박원순다움’을 환기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진행자는 박원순 시장에게 “대선 출마결심의 이유”에 대해 물었다. 박시장은 “서울시를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 서울의 국제경쟁력이 6위인데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은 26위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서울시만큼 올리고 싶다”고 대답했다. 많은 설명이 앞뒤에 있었지만 ‘국가경쟁력 순위’를 언급한 것은 우리가 기대했던 ‘박원순다움’은 아니었다. ‘시민’ 대신 ‘국민’이라 말하고, ‘청산대상으로서의 문재인’을 언급하는 것만큼 혼란스런 언어였다. ‘대통령다움’에도 부합하지도 않았다. 서울시장으로서의 성과를 시민들에게 쉽게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박원순과도, 촛불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박원순은 역시 박원순이었다. 불출마 선언은 간명했고, 메시지는 명확했다. 복잡한 감정은 가득할 테지만 ‘다시 시민 속으로’라는 결심은 확고했다. 분명 박원순다운 언어와 방식으로 서울시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고, ‘당원으로서 정권교체에 기여’도 제대로 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부터 여의도 정치를 뒤따라가며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정치’를 앞장서서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 박원순답다. 그런데 말 그대로 ‘또 다른 시작’이 필요하다. 그저 ‘박원순다움’으로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박원순 아닌 박원순’, ‘박원순을 넘어서는 박원순’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권교체가 아닌 미래교체, 시대교체’가 되도록 하는 정치다. 그러기 위해선 이미 익숙한 서울시정에 대해서도 철저한 평가와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시장실을 가득 채운 수 천 개의 파일들 가운데 몇 개만 남기고 치우는 결단을 다시 기대, 아니 요청해 본다. 그에게는 ‘불출마’가 새로운 출발이듯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책장에서 어떤 파일이 남겨지고 어떤 것들이 다른 곳으로 치워질 것인지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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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