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월 [IF Media]대통령경호실, 국제표준으로 거듭나야 / 윤태범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시론] 대통령경호실, 국제표준으로 거듭나야
출처 : 중앙일보
대통령 탄핵 사태부터 최근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무산까지 요즘처럼 대통령경호실이 주목받은 때는 없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대통령경호실에서 담당한다. 경호실장의 직급도 장관급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몇 명 안 되는 고위직이다. 높은 계급만큼 그 위세와 견줄 만한 상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경호실을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는 것은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의 산물이며 민주정부를 지향하는 국가로선 매우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대통령경호실 조직을 폐지하고,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완전 재구축하자는 제안이다. 지난 연말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대통령경호실을 폐지하고 해당 업무를 경찰청에서 담당하도록 하는 ‘정부조직법’과 ‘대통령경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대통령경호실을 어떤 조직 형태로 설치할 것인가는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사실상의 국제표준이 존재한다. 대통령경호실은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찰 조직에 설치돼 있다. 일상적인 정부 조직의 틀 속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이뤄짐을 의미한다. 대통령경호실을 특별한 조직으로 만들어 운영할 경우 경호실 조직 자체가 권력화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의 경우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를 경찰 조직이 담당한다. 미국도 대통령 직속기구의 형태는 아니다. 독일의 경우 현직 대통령 및 총리에 대한 경호업무는 연방 내무부 산하 연방범죄수사청(BundesKriminalamt·BKA, Federal Criminal Police Office)에서 담당하고 있다. 연방범죄수사청은 독일 연방헌법(제87조)에 의거해 각 주의 경찰업무를 감독하며 연방정부 중앙경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이다. 연방범죄수사청의 인력은 약 4500명에 달하지만 이 중에서 실제 경호를 담당하는 인력은 550여 명이다. 일본의 현직 총리에 대한 경호는 일본 경시청 경비부 경호과에서 담당하며, 경호 과별로 내각총리대신·국무대신·외국요인 등을 각각 담당하는 구조다.
경찰청 조직에서 벗어난 별도의 경호 조직을 두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비밀경호실(The United States Secret Service·USSS)은 1865년 미국 최초 연방수사기관으로 재무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됐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엔 신설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DHS)로 소속이 변경됐다. 대통령·부통령과 전직 대통령 등의 경호를 맡고 있으며 대통령선거 기간에는 주요 정당 후보도 경호한다. 미국의 비밀경호실은 한국의 대통령경호실과 업무가 비슷하지만 국토안보부 소속이라는 점에서 대통령 직속기구인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듯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업무는 별도의 조직이 아닌 경찰 조직에서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국제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장관급의 위상을 갖고 있고, 나아가 경호 책임자가 행정부 최고의결기구인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사례는 없다. 선진국 대부분의 경호 책임자는 우리보다 직급이 낮은 치안감급 또는 경무관급이다. 미국은 차관보급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위상과 경호업무가 낮은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호실이 오랫동안 무소불위의 권력기구로 운영돼 왔다. 그 폐해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때문에 김영삼 정부 때부터 군부정권의 상징인 대통령경호실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축소해 왔다. 민간인 출신 경호실장이 나왔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경호실장을 차관급으로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호처로 축소시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다시 격상시키는 등 권력기구화했다. 그러나 경호실의 높아진 위상이나 권력과는 달리 역할은 오히려 퇴보했다.
최근 ‘보안손님’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경호실 본연의 업무는 사라지고, 청와대에 출입하는 비선 실세와 관련자들의 청와대 출입이 불편하지 않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검문도 없었고,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경호의 핵심이 무너진 것이다.
우리 대통령경호실의 구호는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다’였다. 대통령 경호의 핵심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그동안 청와대의 수많은 경호관은 이 구호를 자랑스럽게 마음속 깊이 새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이 구호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경호실의 권력은 높아졌지만 그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보이지 않음으로써 더 빛나는 직업, 절제할 때 가장 빛나는 직업이 바로 대통령경호실이고, 대통령 경호원이다. 대통령을 구중궁궐에 가두는 게 아니라 국민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한 점의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 경호. 이것이 바로 대통령경호실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윤태범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