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4월 [IF Media] 불신의 수렁에 빠진 한국 관료, 회복의 길은 무엇인가 / 최지민 (더미래연구소 선임연구원)
불신의 수렁에 빠진 한국 관료, 회복의 길은 무엇인가
출처 :?열린충남
세월호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넘어, 현재 진행 중인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의 일거수일투족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정부, 그리고 관료에 대한 감정은 참담함에 가깝다. 이미 유행어가 되어버린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섞인 비판은 국가수준의 지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2017년 아델만 재단이 발표한 정부신뢰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응답자의 28%만이 정부를 신뢰하고 있다고 답했다. 28개 응답국가 중 끝에서 5번째, 작년 같은 조사결과보다 7%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비단 이 조사뿐만이 아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OECD(country at a glance report)조사,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등에서도 우리 국민은 정부, 국가기관에 대해 보이는 신뢰수준은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경제성장의 일등공신이라고 믿어져왔던 강하고 유능한 관료와 일련의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난 이들의 무능한 민낯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늘구멍보다 통과하기 어렵다는 공시와 고시를 통해 선발된 유능한 이들이 왜 그처럼 무력하게 부당하고 불법한 명령을 따르게 된 것일까? 관료의 몰락,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국민의 엄청난 불신은 관료 개개인의 무능, 비효율성, 부패성향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능한 이들의 인센티브 구조를 체계적으로 왜곡하여 잘못된 행동을 초래한 조직의 특성, 소위 ‘과잉 발달한 관료제’의 탓이 더욱 크다. 현재 노정되고 있는 관료사회의 문제는 직업공무원제도의 구성요소가 지나치게 발달하여 관료를 특권 계급화하고 이들의 보수안정성향이 극대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잉 관료제의 특징과 발생원인은 크게 다음의 세가지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견고한 급수별 채용방식이다. 우리나라 관료의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관료 개개인의 능력보다 입직급수이다. 일반적으로 5급 이상의 관료는 정부정책 결정 및 감독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반해, 6급 이하인 경우, 행정집행과 민원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직급 간 업무의 성격과 권한차이가 큰 편이다. 2013년 공무원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7급 입직자는 5급 사무관까지 평균 14.6년, 9급의 경우 25년 이상 소요되므로 5급 공채시험을 통하지 않고는 국장급으로 승진하기는 쉽지 않다. 이따금 7급에서 역량을 발휘하기보다 행시를 병행하거나 아니면 퇴직 후 행시를 응시하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직급 간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이 하위직 관료의 근로사기를 저하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7급과 9급 합격자들의 스펙향상과 실제 업무에서 5급 입직자들과 이들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관료사회 인식조사결과들은 입직급수별 선발방식의 유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둘째, 폐쇄형 승진·인사체제이다. 승진은 “결원보충”의 한 방법으로서 연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폐쇄성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는 상위와 중간직위만을 부분적으로 개방하고 있어, 서유럽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승진·인사체제를 가지고 있다. 폐쇄형 체제는 공무원의 사기와 공직에 대한 일체감을 높이고, 행정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시켜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 관료집단을 외부의 변화와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 특권집단으로 만드는 단점 역시 존재한다. 직급이동의 장벽을 높임으로써 조직의 개방성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민간에 개방된 직위임에도 관료출신이 70% 남짓을 차지하고 있으며 개방형 제도를 통해 들어온 상관에 대한 관료의 부정적 인식도 높은 수준이다(최순영·조임곤, 2014).
셋째, 관료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견제 및 통제장치의 부재이다. 관료제의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평적, 상향적 차원의 통제기제들이 미약하다. 국민들은 관료들이 ‘영혼을 가지고’ 소신껏 공무를 수행하길 바라지만, 이들은 승진여부를 결정짓는 상급자들의 의중과 인사에서 불리하게 작동할지 모르는 조직통폐합으로부터 소속 기관을 지키기 위한 방어논리 개발에 더욱 몰두한다. 이는 관료제의 통제방식이 계급제를 기반으로 하는 내부통제에 집중되기 때문이며, 상급자의 결정과 명령에 의해 부여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비로소 통제되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국정감사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피감기관의 자료제출 불응, 부실한 자료제출 행태에 대해 관료사회는 외부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소위 스스로를 지키는 ‘철밥통’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공무원의 신분보호 규정은 저성과자 뿐만 아니라 당연퇴직의 대상의 퇴출마저 어렵게 만든다. 최근 10년 간 징계처분에 대한 소청심사의 인용율은 40%에 육박하며 비위를 저지른 관료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뒤따른 복귀를 비판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보도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과잉 발달한 관료제의 요소들을 풀어줘 그 과잉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과거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식 개혁 아이디어의 실험적 적용에 그친 개혁으로는 체감할 만큼의 개혁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문제에 대한 진단과 이에 입각한 다음의 세가지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견고한 급수별 채용방식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세월호 참사이후 관피아 척결을 위해 인사혁신처 신설과 함께 행정고시 폐지가 대안으로 추진된 바 있다. 고시출신이 독식하는 관료의 카르텔 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로 풀이되지만, 채용의 공정성문제와 계층이동의 사다리 등의 저항에 부딪혀 민간경력자 채용확대로 개혁수준이 다소 후퇴하였다. 공직활력제고를 위해 현재의 5급 채용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5급과 7급을 공채를 통합하여 종전에 300명에게만 실질적으로 부여 되었던 고위직 진입통로가 7급 인원 전체에게 개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현재 30%수준으로 확대된 5급 민간경력채용제도를 7급으로 일괄 조정하거나 그 비율을 다른 직급수준으로 축소하여 입직개혁의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승진이 공직의 최우선 가치가 되지 않게끔 승진과 보수의 연계를 약화시키는 새로운 보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정직급 경과 후 승진루트와 비승진 루트 간 진입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속진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조기승진루트(fast stream development programme)를 부처별로 운영하여 실적주의를 정착화해야 한다. 2016년 도입된 특별승진활성화 지침은 속진제의 형태를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적용대상이 5급 이하 승진예정 인원의 10% 가량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므로 모든 관료의 자발적 경쟁을 촉진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관료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특정 비위(부정비리, 성범죄)발생시 당연퇴직, 무조건적 공직재진입 금지조항을 공직별로 상세히 규정한 영구퇴출을 내실화하고 국회와 시민에 의한 ‘수요자 중심의 성과평가요소’ 확립한다. 아울러 정책실명제 확대를 통해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역할과 권한 행사를 투명하게 기록하고 이에 대한 책임성 묻는 것이다. 품의제 의사결정방식에서 담보하기 힘든 책임성 소재를 문서화함으로써 해당 정책을 추진한 주도 세력과 이들이 실질적 영향력을 사후에 통제하도록 한다. 이상의 개선방안들은 통해 관료가 국민의 일상적인 삶을 살피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복(public servant)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