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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19대 대선의 소중한 낯섦 /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10 5월 [IF Media] 19대 대선의 소중한 낯섦 /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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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9대 대선의 소중한 낯섦

출처 : 경향신문

19대 대통령 선거는 낯선 선거였다. 혹자는 19대 대선이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중대선거’가 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새 정부가 ‘부와 권력의 독점체제’이자 ‘기득권층의 사익추구 체제’인 대한민국 정치·사회·경제질서를 바꾸는 데 성공할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체제변혁은 정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면 19대 대선은 중대선거의 위상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우선 19대 대선이 ‘촛불혁명’이 가져온 선거였다는 점이 낯설다. 이 사건은 해외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촛불혁명은 한국 민주주의 체제, 혹은 헌정체제를 만든 ‘87항쟁’과도 달랐다. 대학생을 위시한 사회운동과 야당세력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고, 저항폭력을 포함해 어떤 폭력적 사태도 없었다. 시종일관 ‘보통 시민’이 주도했다. 박근혜 정권이, 박정희 정권과 달리 물리적 억압과 폭력을 동원하는 독재정권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개월에 걸쳐 연인원 1000만명이 전국의 광장에 결집해 한목소리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요구한 것을 볼 때, 독재정권이었다 해도 보통 시민의 주도성을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87항쟁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낮아진 사회운동 및 야당세력에 대한 보통 시민의 신뢰도를 감안할 때에도 주도성을 발휘할 유일한 주체는 시민 자신뿐이었다. 19대 대선은 바로 그런 촛불혁명이 가져온 선거였고,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운동권 민주주의’ 혹은 ‘정당 민주주의’라기보다 ‘시민·유권자 민주주의’임을 확인시켜준 낯선 선거였다.

‘보수의 분화’, 즉 홍준표·유승민 후보가 각기 출마한 것도 낯설다. 노태우와 김종필이 각기 민주정의당과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13대 대선 이후 처음이다. 더구나 홍준표·유승민 후보가 모두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유력 정치인이었다가 각기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후보로 출마했다는 점, 특히 유승민 후보가 ‘합리적·개혁적 보수’를 외치며 ‘새로운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을 창당해 출마했다는 점은 한국 보수정치의 역사에서도 낯선 현상이다. 이 때문에 19대 대선은 냉전 반공주의와 분배 없는 성장주의에 기댄 사이비 보수가 아닌 ‘진짜 보수’의 등장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유 후보가 완주했을 뿐만 아니라, 막판에 지지율을 소폭이나마 끌어올린 것은 19대 대선이 향후 한국 보수정치의 재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준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과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을 거치면서 내내 ‘위기론’에 시달려온 진보정당. 그 대표 격인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선전한 것도 낯설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열성지지자들이 진보유권자층의 사표심리를 자극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은 성과라 더욱 그렇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층 유권자를 보듬어 안고 함께 눈물 흘린 ‘공감의 힘’ 덕분이다. 19대 대선은 진보가 이념·정책만이 아닌 ‘감성의 역량’도 갖추었음을 보여준 선거인 것이다. 그래서 19대 대선은 진보정당이 ‘유효정당’으로 다자구도에서 홀로서기가 가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선거이기도 하다. 또 ‘80년대 운동권’ 세대가 아닌 2030 젊은 세대에서의 지지층 형성 가능성과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변신의 필요성을 발견한 선거이기도 하다.

19대 대선은 한국의 정치지형이 민주화 이후 30년간 지속해온 지역주의 양당체제에서 ‘이념·정책적 다당체제’로 전환할 단초를 마련한 선거라고 할 수 있다. 19대 대선을 낯설게 만든 또 다른 이유, 즉 통합정부론 혹은 공동정부론의 등장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전환이 이루어지면 향후 한국정치의 추세가 될 통합정부 구성과 운영의 이유와 역할 분담의 기준이 분명해지면서, 주류 보수언론이 주도한 허구적인 보수(새누리당)-진보(더불어민주당)의 경계와 구분도 허물어지고, 그에 기댄 사이비 보수의 ‘종북좌파 레퍼토리’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리 되려면 대선 과정에서 다시금 목도한 한국정치의 익숙한 부분들을 버려야만 한다. 선거와 정권교체를 정치의 전부인 양 몰아가는 정치, 분단모순을 이용해 색깔론을 동원하고 과거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 공작의 정치, 묻지마 지지를 요구하는 지역구도에 기댄 정치, 맹목적 지지자를 동원해 경쟁자를 조롱하고 힐난하는 정치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과의 결별은 이번 대선에서 발견한 낯섦을 한국정치의 발전, 즉 체제변혁의 역량을 강화할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고, 19대 대선을 명실상부한 중대선거로 자리매김해 줄 것이다.

김윤철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