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5월 [IF Media] 문화정책의 대개혁이 필요한 이유 / 이동연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
[세상읽기]문화정책의 대개혁이 필요한 이유
출처 : 경향신문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새로운 나라,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촛불 시민혁명은 문재인을 국가통치의 수반으로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연설문에서 적폐청산과 국민통합,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자유로운 여론과 소통을 강조했다. 촛불에서 탄핵, 탄핵에서 정권교체로 이어진 시민혁명의 향후 과제들이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특히 강조했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통치 철학이 국민의 삶과 통치의 현장에서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기회도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았고, 결과도 정의롭지 않았던 문화정책의 대개혁은 문재인 정부 성공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통치자의 세치 혀에서 나온 문화융성이란 국정 철학이 돌연 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로 되돌아오는 황당한 일이 없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언행일치의 혁신적 문화정책이 구현되어야 한다. 문화정책의 대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블랙리스트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현장 예술인과의 지속적인 문화 협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통치자의 구상-청와대 참모의 작성과 전달-문체부 관료와 산하기관의 실행이라는 국가에 의한 조직적이고 방대한 예술 검열 행위라는 것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지고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꼼꼼하고, 사심 없는 조사와 기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블랙리스트의 진상규명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인들에 대한 자율적이고 투명한 국가문화정책을 만들기 위해 예술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실질적인 문화협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술인들이 작년 겨울부터 142일간 광화문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블랙리스트에 저항한 것도 ‘지원금’ 때문이 아니라 ‘창작의 자율성’ 때문이다.
둘째, 노동시간의 단축과 문화시간의 확대로 국민의 문화권리가 삶 속에서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멕시코 다음으로 많은 한국에서 문화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했던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실시한 ‘문화가 있는 날’은 어찌 보면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일 생각은 없고, 문화이벤트로 잠시 스트레스를 풀자는 일종의 문화적 ‘모르핀효과’밖에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문화주권의 실현을 국민의 일상 삶의 여유와 행복에서 찾고자 한다면 과감하게 노동시간을 줄이고, 공연관람, 여행과 독서, 다양한 예술교육 참여의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래를 향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창의적 인재 양성이다. 대권후보들이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모두 기술결정론과 경제결정론에 경도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기술과 경제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이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바뀌고 그러한 삶의 변화를 추동시키는 문화는 어떤 창의적 시장을 형성할지가 관건인 것이다. 기술과 과학이 개인 삶의 형태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서드라이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문화와 기술, 예술과 과학이 통섭하는 문화콘텐츠의 창의적 인력양성이 긴요하다. 그래서 대중음악, 게임, 가상현실 엔터테인먼트, 차세대 미디어플랫폼 등 대중예술 분야에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설립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통합과 분권의 문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의 자율성을 높이는 분권형 문화균형 전략과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문화통일 정책에 대한 장기구상이 가동되어야 한다. 국내 차원에서는 심각한 지역문화 격차를 해소하면서도, 지역문화의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문화 분권의 실질적 실현과 한반도 차원에서는 문화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언어, 생활, 창작, 문화유산, 체육, 관광 등의 남북교류 플랜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 과제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준비하고 실현하는 게 ‘문화다운 문화’를 만드는 문재인 정부 문화정책의 대개혁이 아닐까?
이동연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