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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Media] [IF MEDIA] [시론]금호타이어 처리에 주목한다/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19 9월 [IF Media] [IF MEDIA] [시론]금호타이어 처리에 주목한다/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

 [시론]‘관료의 함정’ 빠진 규제 샌드박스

출처 : 경향일보

거의 ‘막장드라마’ 수준으로 전개되어 온 금호타이어 처리가 임박했다. 파장이 큰 기업구조조정은 명목상 채권단이 결정하지만 사실상 정부가 결정하는 일이다.

처리를 지연해서 10조원이 넘는 추가 손실을 발생시킨 저축은행 구조조정, 부도날 것을 알고도 방치해 4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던 동양증권 사태, 진즉에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아 결국 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린 해운 구조조정,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실은커녕 분식회계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고도 여전히 독자 생존이 불투명한 대우조선해양, 산은과 수은의 거듭된 지원에도 불구하고 생존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 등등.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기업구조조정은 한마디로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였다.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당국과 산은은 법적 권한도 없으면서 금호산업으로부터 법적 담보도 받지 않고 상표권 사용 조건을 제시해 박삼구 회장 측이 매각을 무산시킬 빌미를 주었다. 또 적자로 전환될 것이 예상되는 조건에서 단기 경영성과에 따라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 조항을 두어 더블스타의 터무니없는 가격 인하 요구의 빌미도 주었다. 둘 다 숱한 구조조정 사례를 경험한 금융당국과 산은이 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일이다.

최근 박 회장 측이 제출한 자구계획안에 포함된 유상증자안은 명분은 자금조달이지만 실제는 채권단 지분의 가치를 떨어뜨려 매각 가격을 낮추는 한편, 계열사 자금 동원, 컨소시엄 구성 등 그동안 박 회장이 요구해 온 것을 모두 수용해달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채무자인 박 회장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금호타이어는 당장 월급도 지급하기 어려운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고, 9월 말 만기 도래하는 채권의 상환을 유예해주지 않으면 부도가 난다. 그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채무자 박 회장에게 채권단이 끌려다닌 이번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은 우리의 기업구조조정사에 기록될 희대의 사건이다.

그동안 박 회장이 보여 온 행태는 지역정서와 인맥을 동원한 정치게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금호타이어 처리는 새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과 책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새 정부에 인맥과 정치논리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 재계는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기업과 산업이 부실해지면 정부에 정책적 지원을 하라고 하면서, 정책적으로 지원한 기업의 부실 처리에는 손을 떼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구나 금호타이어는 정부 소유 국책은행이 최대주주다. 부실기업의 회생에는 대전제가 있다. 부실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고, 부실의 책임을 명확히 추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전제 없이 부실화된 상태에서 신규자금만 지원해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기업을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 과정에서 관련 기업 전체가 동반 부실화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런 일을 IMF 경제위기 이후 숱하게 보아 왔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금호타이어를 제외한 금호그룹의 부채비율은 883%이다.

부실한 기업과 산업의 구조조정은 늘 부담스러운 일이다. 부실한데 희생과 손실 분담 없이 해당 기업이 살아날 도리가 없다. 그래서 고통과 저항,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속하고 과감해야 하며, 지원을 할 때는 충분히 하고, 대신 책임추궁은 엄격히 해야 한다는 IMF 경제위기 이후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배운 기업구조조정의 4대 원칙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 있게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만큼 기업은 골병들고, 국민의 부담은 커진다. 파장이 큰 기업구조조정을 재무적 관점과 금융 논리로만 할 수는 없다. 실패한 한진해운 사태나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서 보듯이 고용과 산업 정책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현실적으로 정치적 고려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대전제는 기업이 살아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부실의 원인과 책임을 그대로 두고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 경제팀은 과거 기업구조조정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지켜보고, 이를 비판해 온 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의 원칙을 지키며 기업을 살리는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